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생각함으로써 사람이 된다. 사람은 생명과 정신을 가진 주체인데 주체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은 지금 생각하는 것뿐이다. 느낌, 지식, 정보는 밖에서 온 것이거나 밖의 자극으로 생겨난 것이다. 밥 먹고 숨 쉬고 피가 돌아가는 것조차도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몸의 기관들이 본능적으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만은 내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가장 주체적이고 참으로 주체적인 일이다. 참된 주체만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함으로써 참된 주체가 된다. 생각하는 것은 주체를 주체로 만드는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거짓 나를 버리고 껍데기 나를 벗기고 참 나, 알맹이 나가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존재와 생명과 정신의 껍데기를 벗기고 알맹이만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내가 나로 되고 존재와 생명과 정신의 알맹이가 드러난다.
생각하는 자리도 생각하는 기관도 마음이다. 누가 생각하는가? 마음이 생각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마음을 생각한다.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이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제가 저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가 저를 생각함으로써 제가 저를 만들어간다. 생각하는 것은 마음이 마음을 갈고 닦고 씻는 것이다. 마음 아닌 것으로 물들고 얼룩진 마음을 갈고 닦고 씻어서 순수한 마음이 되면 마음은 마음대로 마음껏 자유로운 주체가 된다.
생각하는 것은 주체가 주체로 되는 일이다.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생명은 자기와 남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와 남을 느끼는데서 생각이 시작되었다. 자기와 남을 뚜렷이 깊이 사무치게 느끼고 헤아리게 된 것은 포유류다. 포유류에게서 비로소 자기와 남을 주체로 느끼고 헤아리게 되었다. 새끼를 배어 새끼에게 살과 피와 뼈를 나누어주고 새끼를 나면 생명의 알짬인 젖을 먹이고 새끼를 보살피고 길러준다. 포유류의 모성애에서 생명은 자기를 주체로 경험하고 남을 주체로 사랑하게 되었다.
포유류의 모성애에서 생각하는 실마리가 잡혔다. 생각은 사랑에서 나왔다. 사랑은 남을 그리워하고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사랑 속에서 나는 나를 절절하게 느끼고 남을 주체로 사무치게 느낀다. 사랑 속에서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하나로 통한다. 생각은 내가 나로 되고 너를 너로 알고 네가 너로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이 타오를 때 생각이 사무친다. 사랑 병은 서로 생각하는 병(相思病)이다.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나로 되는 것이고 너를 너(주체)로 아는 것이다.
하늘에 머리를 두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섰을 때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먹이를 찾아 땅의 물질세계를 헤맬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물질에 얼굴을 묻고 물질의 단맛과 색깔에 취해 살 뿐이었다. 땅바닥을 기며 먹이와 생존만을 탐하는 뱀은 생존본능에 충실할 뿐 생각하는 존재가 될 수 없었다.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아 땅 바닥을 헤매는 짐승들도 생각하는 존재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하늘에 머리를 두고 하늘을 향해 곧게 일어선 사람은 땅의 물질세계를 넘어서 자유로운 하늘을 보고 하늘에 비추어 자신과 세상을 보게 되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한히 넓고 자유로운 하늘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하늘의 무한한 평면(유클리드 기하학 평면)에 비추어 사물을 보면 개념과 논리, 법칙과 인과관계를 따지며 추리하는 수학과 과학이 나온다. 하늘의 무한한 깊이와 높이, 없음과 빔의 자유에 비추어 보면 존재의 깊이와 뿌리, 초월과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과 종교가 나온다. 사람은 마음에 하늘을 품고 그 하늘에 자기와 세상을 비추어 본 존재다. 하늘의 없음과 빔, 무한한 허공에 비추어 보는 것이 물질을 초월하여 정신이 되는 것이고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주체로 보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매여 있으면 내가 나를 나대로 볼 수 없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욕망과 집착을 끊고 하늘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내가 나로서 온전히 드러나고 사물도 그 본성과 깊이가 제대로 드러난다. 생각한다는 것은 하늘에 비추어 보는 것이다. 하늘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나는 나대로 자유로운 주체가 되고 사물은 사물대로 물성과 이치에 따라 실현되고 완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