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 김대중 전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강연회
강연회 :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
주최 :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행사 위원회
일시 : 2008년 12월 16일
장소 : 여의도 63빌딩
발제자 : 이토 나리히코(일본 중앙대 명예교수)
|
먼저 김대중 대통령님께 노벨 평화상 수상 8주년을 기념하는 이 뜻 깊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저는 ‘북일 관계’를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92개 유엔 회원국 중 북한은 유일하게 일본과 국교가 없는 나라입니다. 일본 정부는 대북 송금 금지, 일본 내 북한 자산 동결, 통상 규제, 북한 선박의 일본항 입항 금지 등 여러 금수 조치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북일관계는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관계를 풀어내기 위해서 그 이유와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를 해봐야 합니다. 근본 원인 중 그 첫째는 19세기 말 일본의 한국 침략과 1910년부터 시작된 한반도 식민통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한 이래 일본 정부는 미국과 함께 한반도 분단 정책을 취했고, 1965년 6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과의 국교 수립을 하고도 일본은 식민통치라는 과거를 청산하지 않았습니다. 조약상에 사과의 말이 없었고 일본측에서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히 1972년 중일 공동 선언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일본측은 과거 전쟁에서 중국민의 삶에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안겼다는 데 책임을 통감하며 이에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 1998년 10월 일본 오부치 총리는 “21세기 신한일 동반자 관계 선언”에서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께 과거 식민통치에 대해 공식 사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강제 노동을 위해 한국에서 수십만의 청년들을 징용하고, 특히 전장에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여전히 독도를 러일 전쟁 당시 1905년 1월에 복속했으므로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2년부터 이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포함시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한일 관계에서 조차도 일본은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북일 관계를 보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2년 9월 17일 전쟁 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일 평양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일본 정부는 결의안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관계를 풀 수 있을까요? (1) 이미 ‘평양 선언’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 문제와 납치 문제의 해결 방안이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선언문 서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정상회담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불행한 과거 정리, 오랜 미결 문제의 해결, 양국간의 정치, 경제, 문화 관계 수립 등에 대한공동의 인식은 양측에 근본적인 이익이 될 것이며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임을 확인한다.” 제2조를 보면 일본 측은 과거 식민통치에 대해 사죄를 하고 경제 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내용에 대한 진지한 협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보상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저는 그 경제 협력이라는 말이 실질적인 보상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제3조에는 납치 문제는 “일본인의 삶과 안전에 관련된 미결 문제”로 표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힌 내용을 보면, “북한은 북일 관계가 비정상적일 당시 북한이 자행했던 그러한 유감스러운 사안을 절대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평양 선언은 2002년 10월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의 재개를 약속했습니다. 약속대로 회의가 재개되었다면, 일본 식민통치 문제와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만약 일본 정부가 ‘평양 선언’에 따라 양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도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2)6자 회담에 나와 있는 핵무기 및 에너지 문제는 최종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입니다. 이 과정을 최종 해결안 도출까지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왜 6자 회담이 필요해 졌는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이 애초에 원했던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원자력 에너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부시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국정 연설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6월과 9월 연설을 통해 미국의 핵무기 선제공격을 하겠다며 북한을 위협했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 국무부 켈리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하여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생산했다고 비난 했고 이를 핑계 삼아 94년 10월 합의안에 따라 미국 정부에서 보장했던 중유 제공을 중단해버렸습니다. 북한은 합의안 위반에 반발하여 동결된 원자로를 가동시켰습니다. 미국과 북한간의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중국 정부는 양국의 무력 충돌을 걱정했고 미국과 북한을 불러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3자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무력 공격한 직후였습니다. 북한대표단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보면서 “자주 국방을 위해 핵무기 생산을 자제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 정부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6개국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갈등을 야기했던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곧 취임하게 됩니다. 오바마와 민주당은 선거 활동 당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10월 24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뉴욕 동서 연구소 회의에서 “비핵화는 소망에서 현실로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전세계에서 전체 핵무기가 금지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이에 따라 저는 유엔 총회가 소집되어 모든 핵무기 폐지를 위한 결의안이 채택되기를 바랍니다. 핵무기가 없는 세계가 꿈 그 이상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 평화 정착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6자 회담은 무력 충돌 방지와 한반도 평화 유지에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에 의한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과 한반도 및 아시아의 긴장완화를 위한 한국민들의 많은 노력과 활동은 6자 회담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6자 회담의 역할은 곧 끝날 것입니다. 그 이후 동북아 평화 정착은 분명히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입니다. 국민들의 협력으로 6개국 회의를 구성하는 안을 제안하는 바입니다.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6개국 회의의 의장직을 김대중 대통령님께 요청 드리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