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 곳곳에는 불신과 대립, 두려움과 분노가 빚어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노인들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과 절망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대립과 갈등이 때론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죽어갔습니까?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죽어간 이들 모두는 국민의 사랑하는 아들 딸 이요, 아내이자 남편들이기에, 죽음의 행렬을 그들만의 일이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종교인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생명을 던져서라도 벗고자 했던 삶의 무게를 나눠지지 못한 것이 죄스럽고 미안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의지하여 존재하는지,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알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염치없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지난 5월 5대종교 수장들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자고 국민들께 호소한바 있습니다. 이제 그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우리 종교인들부터 이웃들의 고통을 귀 기울여 듣고, 보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있는 곳에 뛰어들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대를 배제하고 이기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건강한 씨앗이 뿌려질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이곳 탑골공원은 1백여년전 33인의 종교계 인사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떨쳐 일어나, 전세계 비폭력 평화운동의 새 장을 열었던 곳입니다. 우리는 그 때만큼이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부터 1백일 동안 함께 걷고, 대화하며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종교계가 함께 마음을 모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스물 두 분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된 쌍용자동차에서 먼저 죽음의 행렬이 멈추어질 수 있도록 온 정성을 기울이겠습니다.
개인적인 성찰과 나눔에만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사회제도와 정책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각계의 당사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호소하고 청하겠습니다. 생명의 존엄이 정파의 이익이나 이념보다 존중되도록 개인 과제와 사회 과제를 잘 가려내고 뽑아내어 공동체와 개인이 함께 노력하는 흐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국민들이 나서 주십시오. 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웃들에게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라고 따뜻이 말 건네며, 손을 붙잡아 주십시오. 우리 모두의 바람인 사회통합의 진정한 길을 삶의 현장에서 열어 주십시오. 갈등과 대립이 없는 세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갈등과 대립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은 만들 수 있습니다. 경쟁이 없는 세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공존의 숲에서 평화롭게 경쟁하는 세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의 뜻만 모아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춥시다!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국민여러분이 희망입니다!
2012년 9월 17일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종교계 33인
이해학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인명진 목사(갈릴리 교회), 도법스님(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법광스님(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황상근 신부(천주교 인천교구 원로사제), 박동호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우원(천도교 한울연대 상임대표), 김용휘(천도교 한울연대 사무총장), 강해윤 교무(원불교 환경연대 상임대표), 김선명 교무(원불교 환경연대 공동대표), 정해숙(前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윤여준(평화재단 교육원 원장) 외 22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