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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공중의 새와 들의 꽃

역사적 예수(36)

▲박태식 박사 ⓒ베리타스 DB
마태 6,25: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의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또 여러분의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시오. 목숨은 양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강의를 하다보면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예수님 시대는 비디오나 녹음기도 없었을 텐데 그분의 말씀을 어찌 그렇게 상세히 성서에 담을 수 있었을까?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와 복음서가 기록된 때 사이는 짧게는 40년, 길게는 80년이라는 데 그런 기록들이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거기다가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세리, 창녀, 어부들로 기본적인 교육도 못 받은 하류층인데, 어떻게 멋진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성령이 복음서 한자 한자를 대신 써주었다는 축자영감설을 따르지 않을 바에야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들이다. 한 가지 말씀을 예로 들어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서까지의 과정을 추적해보자.

예수님과 함께 다녔던 제자들은 소신감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뽐내기도 하고(마르 9,33-37⋅38-41) 나중에 예수님이 출세하면 한자리하려고 벼르는 사람들이었다(마르 10,35-45). 그런 사람들이었으니만치 예수님 앞에서 밥걱정, 옷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예수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는데, 제자들을 뽑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이 단체를 이끄는 장은 구성원들을 돌보아 줄 책임을 갖는다. 장군은 부하 군인들에게 군복과 무기와 세끼 밥을 주어야 하고, 기업인은 회사원과 그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가게 주인은 종업원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해주어야 하고, 가장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심지어 조폭의 보스도 죄지은 부하의 뒷수습을 한다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들의 스승인 예수님만은 천하태평이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또 한 번 음식과 의복 걱정을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두를 데리고 광야로 나가더니 뜬금없이 하늘 나는 새를 가리키며 한 말씀 던졌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시오.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하지도 않을 뿐더러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십니다. 여러분은 그것들 보다 귀하지 않습니까?”(마태 6,26) 그러더니 이번에는 갑자기 들꽃을 가리키며 “여러분은 왜 옷 걱정을 합니까? 들의 백합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해 보시오. 그것들은 수고하지 않고 물레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했습니다.”(마태 6,28)

새나 들꽃 같은 미물도 그렇게 정성스레 가꾸시는 하느님인데 어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박대하시겠냐는 뜻이다. 이런 식의 논법을 두고 그레코-로망 세계에서는 ‘대비논법’(a minori ad majus)라 했는데, 우리 식으로는 ‘하물며’를 넣어 “미물도 그렇게 잘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들을 헐벗게 하고 굶기시겠느냐?”로 풀어쓸 수 있겠다. 특히, 성서에는 ‘백합꽃’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인 ‘크리나’는 불쏘시개 감으로나 쓰이는 잡꽃을 뜻한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인간이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한층 더 잘 살아났을 것이다.

이 말씀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하느님에게 다가서는 방법이다. 하느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보통의 경우 책을 먼저 펼쳐든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다. 그분은 자연으로 나아가 그 곳에 넘쳐흐르는 하느님의 기운을 흠뻑 쐬었다. 그분의 눈에는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 시냇가의 돌맹이 하나에서도 하느님을 보았는데, 자연은 그만큼 하느님을 알아채기에 더없이 적절한 도구였다. 예수님이 오늘 다시 오시면 환경운동가의 모습을 띠실 지도 모를 일이다.

예수님의 꾸짖음에 아마 제자들은 쥐구멍이라도 찾아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스승을 좇았건만 결국 자신들은 그 정도 그릇밖에 안되는 졸장부들이었던 것이다. 그분의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되기에 적합한 상황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부활ᐧ승천 하신 후에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입에 널리 올려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원후 80-90년경에 마태오가 교회에 교회에서 널리 떠돌던 이 말씀을 수집해 복음서에 싣기에 이른다.

대비논법이라는 문학적인 양식에 알찬 내용을 잘 담아 넣고, 거기에 적절한 상황이 옷 입혀지면 말씀은 놀라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바로 자연을 통해 전달되는 하느님의 생명력이다.


글/박태식 박사(서강대, 가톨릭대, 성공회대 신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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