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현 교수 ⓒ베리타스 DB |
8일 오전 연세대 신학대학원 채플실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선교훈련원(원장 이근복 목사, 이하 훈련원)이 주최한 제4회 에큐메니칼 신학대학원연합 학술제에 강사로 나선 손 교수는 ‘한류와 춤추는 하나님'이란 제목의 강연을 펼쳤다.
손 교수는 한류, 춤, 종교가 그 뿌리에서 만나는 세 접점을 ‘참여, 비판, 놀이’로 규정했으며,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전개해 나갔다. 먼저 ‘참여’로서의 춤에 “춤은 존재 전체가 참여하는 군무이다”라고 말한 뒤 손 교수는 “종교적 춤을 통해 인간은 삶과 죽음을 흉내 내며 그 결과를 춤에 의존하게 만들고자 한다”며 “춤을 통해 인간은 동물이 되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참여’로서의 춤…"말춤 추는 동안 인간은 대지 뛰는 말돼"
이렇듯 동일화(identification)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의 '춤'은 가면을 뒤집어쓰는 지점에 이르러 그 열망이 고도로 극대화된다. 손 교수는 “학춤을 추는 동안 인간은 자연이 되고 자유로운 하늘의 학이 된다. 말춤을 추는 동안 인간은 대지를 뛰는 말이 된다. 춤은 존재의 변신이다. 그것은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몸짓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포함해 K-pop의 춤과 모든 세속무용에 “충분히 거슬러 올라간다면 원래 종교적 의미에 연관되어진다”고 말한 뒤 “춤은 존재론적으로 종교적이다. 춤은 그 기원에 있어 종교와 관련이 있으며, 그 기능에 신에게 나아가는 걸음이다”라고 손 교수는 주장했다.
특히 싸이가 선보인 ‘말춤’에 “표면적으로 말이라는 동물의 움직임을 모방하는 것일 수 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말의 모방을 통해 하나님의 ‘흥’(興)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라며 다윗이 하나님 앞에 춤을 추게 된 이유가 “하나님이 춤추는 평화라는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 교수는 단지 움직임에 불과하다며 '춤'이 지닌 종교성을 의심하는 이들에 대해 “춤은 하나님의 움직임에서 시작한다”며 “우주의 창조는 하나님의 첫 번째 춤이었다. 창조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그린 춤이다”라고 말했으며, 또 “예수는 이 땅에 춤추는 평화로 오셨다. 그는 인류를 춤추게 하고자 한 하나님의 초대이다. 인류는 신이 나서 춤추며, 자신과 세계를 흥겹게 움직이며, 비로소 춤추는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는 하나님과 듀엣을 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남스타일' 말춤, 예술적 위반과 전복 보여줘”
▲'강남스타일' 뮤직 비디오에서 가수 싸이가 말춤을 추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
‘비판’으로서의 춤에 대한 해석도 이어 나갔다. 한류의 춤이 모두 종교적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을 전제하면서도 손 교수는 최소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선보이는 '말춤'에 있어서 만큼은 “강남으로 상징되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 희생되어진 힘없는 사람들의 인간됨, 인간으로서의 훼손된 자존감과 존엄성, 그리고 그들의 저항적 모방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강남에서 쫓겨난 경제문화적 주변부 사람들이 강남 사람들의 명품백을 짝퉁백으로 교란시키며 그들의 문화적 문법에 암시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라며 “강남 모방에 기초한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이러한 사회적 계층의 구분선을 가상적으로 넘어서고 무너뜨리는 예술적 위반과 전복을 보여주는 비판의 춤”이란 설명도 보탰다.
아울러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하는 제3의 공간, 경계선상의 공간, 이중적 목소리의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음도 밝혔다. 이 공간은 지배자 문화에 대한 피지배자의 의도적 모방이 초래하는 공간으로, 식민 문화의 권위나 순수성이 훼손되는 이른 바 혼종적 공간에 다름 아니다.
“'강남스타일', 유머·자기비하 통해 강남 헤게모니에 저항”
손 교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이러한 혼종적 공간에서의 “유머와 자기 비하를 통해 강남의 헤게모니에 대한 문화적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으며, 이는 봉산탈춤의 말뚝이가 양반의 위선에 대해 풍자와 해학으로 저항한 것과 유사하며. 민중신학자 서남동이 말한 “신의 역사개입”을 연상케 한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손 교수는 “현대 한국의 가장 상류층 문화를 상징하는 강남 스타일을 B급 문화로 조롱하는 싸이의 말춤에서 우리도 동일한 신의 역사 개입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끝으로 재미·놀이로서의 ‘춤’에 대해선 “춤은 고독에 저항하는 생명의 아름다운 예술적 놀이”라고 정의한 뒤 손 교수는 한류가 주는 도전으로서 한국적 신학으로서의 ‘흥의 신학’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림의 벽을 훌쩍 넘어 인류의 대동과 함께 일어섬의 신명남과 흥을 주목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두려움과 방어적 폐쇄성을 벗어난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흥의 신학은 무거움의 정신에 대한 신학적 가벼움의 저항”이라고 했으며, “마치 춤이 물리적인 중력의 힘을 저항하며 상승의 몸짓을 하듯, 흥의 신학도 정신의 무거움에 저항하여 창조적인 놀이를 춤추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손 교수의 발제 후 비평을 맡은 황덕형 교수(서울신대)는 다양한 문화이론을 통해 시대의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신학적인 연관성을 추구한 손 교수에 “바람직한 시도”란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 동시에 뼈아픈 비판도 가했다.
"'춤' 칭찬일색에 문제제기, 자본주의의 세속성 간파해야"
황 교수는 먼저 “춤과 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이 상생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해서 이 일반적이고 지극히 추상적인 문화이론의 한 단면을 현대 한류의 K-Pop에 적용하여 싸이와 기타 다양한 아이돌의 음악적 활동을 해석할 때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분명하게 오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손 교수 자신도 스스로 시인하듯 이 현대적 굿판으로서 세속적 메시야의 역할과 자기 신성화의 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아이돌의 무대에서 인간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자본주의의 세속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너무나도 나이브한 감상에 불과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황 교수는 “춤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심지어 싸이의 성공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려는 작업은 손 교수의 말대로 ‘춤이 위험할 수 있다’는 현대판 공연문화의 실제적이며 철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