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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창조와 구원

이장식·한신대 명예교수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인류는 민족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부족이 달라도 크게 보면 다 같은 운명의 하나의 지구 공동체이다. 또 하나의 이 지구 상에서 옛날부터 큰 지배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세력(의지)들이 때로는 충돌하여 싸우거나 혹은 공존의 평화를 도모하거나 혹은 충돌을 피해가면서 인류의 역사나 한 민족국가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바람이 불어오고 가는 것은 바람의 자유이고 사람이 그 바람을 막거나 피하느냐는 것은 사람의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민족이나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각자의 자유의지의 결정이 원인이 된다.

오늘날에 와서 역사의식과 역사인식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것과 인류공생의 필요성을 어느 때보다 강조해야 할만큼 현대 인류세계는 어떤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데 어느 때보다 자연과학 기술과 사회학과 정치공학이 발달된 이 때 어찌해서 인류의 위기를 의식하게 된 것인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또는 군사적 지역공동체 또는 지역동맹, 이를테면 유럽의 EU 공동체, 동남아 국가들의 연맹 그리고 아직 생기지는 않았지만 동북아 연맹과 같은 조직으로 이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는 인류의 역사는 하나라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우주와 인간의 창조를 믿어왔고 그리고 과거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민족국가를 하나님의 세계 역사 경륜의 표본처럼 생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 경륜의 원칙을 하나님의 엄격한 정의의 능동적인 심판이라고 생각하고 반면에 그의 자비(또는 사랑)의 경륜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되는 양 말하고 다른 민족국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정의의 어김없는, 즉 용서가 없는 심판을 말했다. 그리하여 때때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내리신 정의의 심판은 결국 자민족의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경륜 곧 시온주의의 경륜을 말했다. 아무튼 심판이든 용서든 그것은 역사의 경륜자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속하는 것이 되어서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때로 그 민족이 비운에 처했을 때 하나님에게 항변 또는 불평을 했었다.

구약의 기록에 의한 하나님의 역사경륜의 설명은 역사이해의 한 교과서처럼 되어왔으나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구약적인 역사이해는 좀 낡은 것이 되었고 지난 날의 역사교본처럼 되어 세계사 교과서가 바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으로 하여 구원으로 끝날 것이라는 종말론은 여전히 효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종말론에 관한 하나님의 역사경륜의 가르침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중심적인 종말론이나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곧 하나님의 나라(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시작하신) 중심이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세계통치인데 이제는 하나님의 정의가 언제나 능동적으로만 (특히 이스라엘 밖의 타민족에게)행사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인이든 타민족이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사랑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동적이었던 그의 무서운 정의가 용서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비의 죄가 3,4대까지 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정의는 2대까지 안 갈 수도 있고 당대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가 역설적 또는 사랑으로 승화하여 때로는 수동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역사 서술의 혁명인데 제3세기 유세바우스라는 교화사가가 이스라엘 민족사를 포함하여 모든 민족의 연대기를 하나로 정리하여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 때부터 기독교적 역사서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종말론의 혁신이다. 그리스도 이전의 이스라엘인들의 종말론은 이스라엘 민족이 종말에 주인공처럼 되어 있었는데 이제 종말의 주역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리고 종말의 구원도 그가 주관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사관이 역사적으로 입증될만한 일들을 과거 2천년 간의 세계 역사에서 지적할 수 있다.

세계 인류의 역사는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행위로 얽혀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의지로 될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학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이)자유의지와 하나님 자신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하는 어려운 질문을 일삼아 왔다. 성 어거스틴은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자유의지의 양립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가 말한 양립은 그가 한 때 믿었던 미니교가 말하는 이원론, 즉 선악의 두 다른 의지가 세상 끝날까지 어느 쪽도 지지않고 간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여 자유롭게 해두지만 인간의 자유의지가 저지른 여러가지 악행을 그의 능동적인 정의로서써만 처발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보시고, 악이 선으로 돌이키는 길을 허용하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이 단순히 신학적 이론으로 운운될 것이 아니고 과거 2천년 간의 기독교 역사와 세계사에서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치적으로 말로나 행동으로 막강한 로마제국에 맞서지 않았지만 그의 교훈 가운데는 로마 제국의 정치와 그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많다. 우리는 여기서 그 교훈을 찾을 것이 아니고 그가 세운 교회의 역사에서 그의 교훈의 진리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서양 또는 세계사에서 실증주의 역사관처럼 온갖 역사 현실에 일치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서양과 세계역사의 큰 변동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찾아 볼 수 있다. 교만의 폭군 네로 황제 때 로마시의 방화의 누명을 사고 미움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적』으로 낙인찍고 그 박해를 점점 혹독하게 해갔다. 많은 교회 교부들과 감독들과 신도들이 죽고 갇히고 유배당하고 매맞으며 죽어갔으나 제3세기 중엽에 교부 터툴리안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왕성하여 이제는 로마 제국의 모든 도시와 촌락과 섬에 교회가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은 없다. 로마의 기독교인 박해 장소엔 콜로세움이 언젠가는 무너질 것인데 로마제국도 그 건물과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데키우스 황제로 로마 공화국 수립 천년이 되던 때 기독교 세력을 끊고 옛 로마 공화국의 회복을 기대하며 대대적으로 기독교 박해를 가했고, 또 이어서 최후적으로 극심하게 박해하던 황제 갈레리우스가 311년에 자기가 기독교에 졌다고 고백하고 교회의 박해를 종식시킨 것도 하나님의 통치의지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로마제국을 아주 멸망시키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드리게 해 개혁하여 새롭게 로마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100년후 로마가 북방야만국의 침입으로 410년 이후로 결정적으로 멸망하고 서방 로마의 자랑과 세력이 종식을 보게 되었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북방의 소위 야만족 코트족, 게르만족들인데 이 야만족들의 세력을 동방의 비잔틴 황제들도 막지 못하고 결국 그 넓었던 제국의 영토가 이테리 본토까지 야만족의 지배에 들어갔다. 이 때를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유럽대륙이 로마의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그 문명을 개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통치의지는 야만족들의 남침을 가로막지 않으시고 그들을 기독교 민족으로 만드시고 옛 로마의 문명이 그동안 기독교 복음으로 변화된채 중세 문명을 받고 더 발전시켜서 유럽의 기독교 문명이 꽃을 피우게 하셨다.

이러한 큰 역사변동에서 하나님의 통치의지가 나타나서 인류의 문명이 복음으로 보다 낫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 문명에도 교권을 행사한 사람들의 권력의지가 하나님의 지배의지에 맞지 않은 것이 많았다.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신도 본위의 교회로 즉 로마제국이 신정정치와 귀족주의(봉건제도)의 재연과 같이되어 갔으므로, 이를 되돌리는 종교개혁 역사를 이룩하셨다.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를 잘못 행사하여 하나님의 통치의지에 거슬리는 경우가 언제나 있었다. 그리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나라의 불가시성을 말하기도 하였다.

제16세기 개혁한 기독교는 이때 인간 양심의 자유와 만민 평등을 구가하던 옛 헬라의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의 인간행복추구의 여러가지 방편들과 과학의 발전을 경계해 왔는데 오늘날 인류와 그 역사의 운명의 위기를 공론화하고 있고 일종의 생태학적 종말론을 지구의 종말을 예언처럼 운운하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 기독교는 역사의 종말을 논할 때 비관론에 편들지 말아야 한다. 네로 황제 때 인류의 적이라고 불리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선군인 무력정치와 귀족주의 사회의 문명을 변화시켜서 만민평등과 자유의 문명을 유럽 세계에서 탄생시켰다. 또 북방 야만족들은 결국 기독교 국가들로 변하게 되었다. 또 16세기 종교개혁을 계기로 신앙 사상의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서양세계가 되게 하시고,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인류의 벗으로 동양과 기타 대륙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통치를 돕게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 경륜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과거 교회사에서 간혹 나타났던 성급한 세계 종말사상으로 교회와 사회를 미혹시키는 일을 해도 안되겠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능동적 경륜만을 부르짖고 이 세계와 이 지구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다 파괴되거나 멸절할 것이라는 과격한 종말사상으로 기독교인이 인류의 적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피조물인 이 세계를 아주 멸망시키시지 않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믿는다. 어떻게 이 세계가 종말을 본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호기심일 수도 있다. 제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결국은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을 것이라는 말을 했으나 그 때 교계는 그의 이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추상적인 이론이나 추리적인 방법은 접어두고 성서의 교훈을 따라야 할 것이다.

노아 홍수 때도 하나님의 정의가 무섭게 역사했지만 지구가 다시 살아나게 섭리하셨다. 사도 요한이 극심한 박해 아래서도 박해로 인한 죽음과 애통과 눈물이 다시 없는 새 하늘 새 땅(하나님의 새 지배)이 하늘에서 이 땅 위에 내려와서 그리스도가 다스릴 것이라는 묵시를 보았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만물이 그리스도 앞에 다 굴복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말은 비극적이고 전멸적인 지구와 세계종말을 말하지 않고 인류역사와 세계의 미래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가 그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사회변동이나 박해나 자연계의 변동이나 또는 전쟁이나 파괴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가장 확실한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지배의 현존을 의미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세계창조와 그의 구원을 믿는다. 그의 사랑과 그의 지혜로 창조하시고 보기 좋다고 하신 하나님의 창조인 이 세계를 인류의 벗으로서 사랑하고 돕고 같이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면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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