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이하 한복협)가 9일 오전 7시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담임 이수영)에서 ‘WCC 부산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복음주의적 제안’이라는 주제로 월례 발표회를 가졌다. 아래는 이날 발표회 강연자로 나선 김영한 목사(한복협 신학위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의 강연문 전문.
머리말: WCC 부산개최와 한국교회의 교회사적 위상
세계교회협의회(Wo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1948년 8월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44개국 147개 회원 교회로부터 온 351명의 대표들과 다수의 참석자들이 함께 모여 WCC 총회를 개최 했다. 이것이 제1차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WCC총회(1948)(주제: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경륜,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다. 제2차 미국 에반스톤 총회 (주제: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희망, Jesus Christ-the Light of the World), 제3차 인도 뉴델리 총회(1961년)(주제: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빛, 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 제4차 스웨덴 웁살라 총회(1968년)(주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Behold, I will make All Things New), 제5차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총회(1975년)(주제: 자유케 하시며 하나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Jesus Christ Frees and Unites), 제6차 캐나다 밴쿠버 총회(1983년)(주제: 예수 그리스도 – 세상의 생명, Jesus Christ-the Life of the World), 제7차 호주 캔버라 총회(주제: 오소서, 성령이며 –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제8차 아프리카 짐바브웨 하라레 총회(1998년)(주제: 하나님께 돌아오라 - 소망 중에 기뻐하자, Turn to God, Rejoice in Hope), 제9차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 총회(2008)(주제: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God, in your grace, transform the world)를 거쳐 5년 후인 2013년 제10차 부산 WCC 총회(주제;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로 우리를 이끄소서, God of life, lead us to justice and peace)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산 WCC 10차 총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역사적 계기가 된다. 필자는 WCC의 부산 BEXCO 유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지지한다. 130년 전 비기독교적 이방국가요 은둔의 동방나라였던 조선에 복음이 들어와 오늘날 기독교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어 세계각지에 2만3백명의 선교사를 보내며, 오는 2013년에는 세계 기독교인들의 잔치인 WCC 총회를 부산에 개최하게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WCC 운동이 지닌 긍정적 차원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긍정적 측면은 더욱 살려나가고 문제점은 시정하도록 제안하고자 한다. 이번 부산 총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아는 계기가 되어 신앙의 안목을 넓히며, 이들 WCC 지도자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교회의 경건성을 체험하고, WCC 운동이 보다 성경적인 운동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I. 세계 기독교의 연합과 일치 운동
WCC의 저서 『기독교와 타종교 간의 대화 지침』에서 두가지 종류의 공동체를 말한다. 하나는 인류 공동체요,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이다. 두 공동체는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완성된다. 인류 공동체는 이 세상이며,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신약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이며,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이다. WCC는 이 지상의 교회가 다양한 인종과 지역과 국적과 문화와 교리를 가지고 있을찌라도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주로 믿는 신앙 안에서 니케아-콘스탄틴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지향하는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해 나가고자 한다. 10차 총회에 이르기까지 역대 총회의 주제들에서 이러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한국교회도 세계교회의 한 지체로서 여기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오늘날 지상의 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개혁교회, 감리교, 성결교 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연합하고 일치를 이루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서 분열된 세계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WCC는 신앙고백과 교리적 연합과 일치를 도외시하고 너무나 제도적인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II. WCC의 종교다원주의 성격과 종교혼합주의 위험성
2000년대 WCC는 포스트-회심시대(a post-conversion era)에서 종교대화의 방향을 다음 세가지로 특징지우고 있다.
첫째, 모험적인 영성(adventurous spirituality)을 너머서고자 한다. 둘째, 종교대화 테이블을 넓히고자 한다, 셋째, “종교대화의 새로운 질”(a new quality of dialogue)을 추구 한다. 이러한 WCC의 종교대화 프로그램은 긍정적 측면으로는 종교간의 상호대립과 오해와 갈등을 풀어나감으로써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으로는 교회적 연합이 교리적 모호성에 기반함으로써 다음의 비판에 직면한다.
첫째, WCC는 오늘의 시대를 “종교적 회심 이후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이 기록하는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에 모순된다.“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둘째, 종교대화와 그리스도의 유일성 주장은 상호모순 된다.
셋째, 선교개념의 변경이 초래된다. 개종(전도나 복음화)아닌 “공동적인 인간됨 추구”이다.
넷째, 종교대화의 목표인 공동인간성 추구는 개종으로서 선교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공동인간성 추구는 교회연합체보다는 지구촌 NGO가 할 일이다.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다면 더 이상 복음전파를 위해서 헌신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인도의 신학자 토마스(M.M. Thomas)나 니터(Paul Knitter)는 기독교 복음의 선포란 불교인을 더 좋은 불교인들이 되도록 하며, 힌두교인들을 더 좋은 힌두교인으로 만드는 데 선교의 목적이 성취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유일한 진리는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무너지는 것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견해는 WCC 소속의 신학자들의 견해일 뿐 WCC 본부의 견해는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III. 한국 일부 보수교회의 분리주의 태도
필자는 선교 130년 된 이제는 한국교회가 보다 성숙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이제는 교리적 순수성을 빙자하여 이단이 아닌 형제를 이단 내지 사이비로 간주하고 정죄하고 이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분리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요청된다.
고대교회의 대표적인 분리주의파는 도나투스주의(Donatism)였다. 어거스틴(Augustine) 당시에 도나투스파는 ‘교회는 성결한 자들의 집단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주류교회에서 스스로 분리하였다. 도나투스파는 주장하기를, 4세기 초의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박해시 기독교문서를 내어준 배교자(背敎者)들이 안수하여 임명한 성직자는 무자격자이며, 따라서 그는 성례전을 집행할 권리를 상실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인정하고 사귀는 모든 교회는 죄에 감염된 교회로서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도나투스파 교회만이 성별(聖別)된 참 교회라고 파당적인 주장을 했다.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가 가톨릭교회를 벗어났으며, 교회의 일치성을 깨뜨렸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표식은 통일성과 보편성인데, 세계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이 도나투스파의 분파성(分派性)을 정죄한다고 하였다. 교회는 첫째로 신앙의 통일성을 가지며 또 사랑의 통일성을 가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 비록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의 통일을 위반하면 역시 분열주의자나 이단이 된다고 하였다. 어거스틴은 비록 순교자라 할지라도 이 신앙과 사랑의 통일성을 깨뜨리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분파(分派)의 죄는 배반의 죄보다 더 무서운 죄라고 주장하였다. 일치 곧 하나됨은 교회의 가장 필연적인 속성인데, 도나투스파들은 교만과 사랑의 결핍으로 이와 같은 교회의 일치성을 깨뜨렸다고 비판하였다. 이후 교회사에서 도나투스파를 닮은 극단적 분리주의 운동들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집단들의 활동은 그동안 기독교에 필요 이상의 분열과 상처를 가져오게 하였다. 한국교회사에서도 이러한 분리주의적 태도가 교회를 사분오열(四分五裂)시킴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깨뜨리고 있다. 오늘날 WCC 부산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자들이 이러한 분리주의적 태도에 있지 않는가 성찰해보아야 한다.
교회의 분열은 그것이 적어도 16세기 종교개혁(宗敎改革)의 저 위대한 ‘구원의 참 신앙’을 향한 불가피한 과정(루터는 교황주의교회로부터 파문당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분열주의자들은 분열을 정당화하는 이유와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독선과 편협적 신념과 자파 이기주의(自派 利己主義)일 뿐이며, 결국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파괴하는 것이다.
도나투스파의 분리주의 신념을 대항한 어거스틴의 교회론은 바로 이 점에서 오늘날 WCC 부산대회를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교회관 반성에 큰 가치를 지닌다.
필자가 알기에는 WCC 운동에 참여한 교단들의 대부분이 성경적이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들이다. 국제적으로는 보수적 성향의 희랍정교회,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보수적 통합장로교, 하나님의 성회가 이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 보수교회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로 한반도 안에 갇혀있지 말고 그 문호를 세계를 향하여 개방해야 한다. 한국 복음주의 교회는 복음적 신앙의 등불을 세계교회를 향하여 밝히 켜야 한다.
IV. WCC 부산총회를 계기로 해서 WCC에 대한 두가지 요구
1. WCC 운동의 사도적 교부적 성경적 신앙 정체성 확인: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요청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들이 지켜온 순교적 신앙, 경건한 영성,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재확인하고 복음주의 교회가 우려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개진해 주기 바란다. WCC부산총회를 계기로 보수적 복음주의 교회들은 그동안 관심 갖지 못한 인권, 정의, 사회 참여 등의 사역을 WCC로부터 배우는 한편, WCC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지켜온 순교적 신앙, 경건한 영성,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앙을 재확인함으로써 오늘날의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새로운 열정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복음주의 교회는 WCC가 부정하는 것(“종교다원성은 인정하지만 종교다원주의는 추구 안한다”이형기, 기독교연합신문, 2012.10.14. 23면)을 억지로 뒤집어 씌우려는 것은 기독교적 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 경색된 남북 관계 중재 및 북한 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 상황 개선 촉구
WCC는 부산총회를 계기로 긴장 속에 있는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영향을 끼치고 북한주민의 인권과 중국에 있는 탈북자의 인권개선을 위한 선언을 해 주기 바란다. WCC는 한국이 군사독재 치하에서 신음할 때 민주화운동을 끝까지 돕고 재정 지원을 해준 단체다. 당시 한국 민주화운동에게는 WCC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외의 동맹세력이었다. WCC는 80년대에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할 때 글리온 회의를 주선해서 남과 북의 기독교인들을 만나게 하는 등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대화에 공헌했다. 탈북주민이 2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들에 의해 북의 모든 인권유린 참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북한의 봉수교회, 칠골교회는 남한의 방문자가 있을 때에만 문을 여는 가짜 교회라는 점도 확인되었다. 더구나 북한에서는 기독교인임이 드러나면 주동자는 사형당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다. WCC는 중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도 내지 못했다. 지금 중국은 천안문사태, 티베트사태, 위그르사태, 몽골사태, 탈북난민의 강제 북한송환, 파룬궁 사태 등 말할 수 없는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들의 인권을 말하면 이들의 처지가 더 어려울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이나 현지에 있는 분들에 의하면 인권 상황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언급되는 만큼 이들의 처지는 실제적으로 나아진다고 말한다.
맺음말
필자는 WCC 부산 총회가 하나의 기구적 회무만 마치고 끝내고 마치는 모임이 아니라 여태까지 늘 따라 다녔던 WCC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한반도 평화로운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조성에 이바지 하는 모임이 되기를 기대한다. WCC 총무 울라프 드베이트 말처럼 “개최되는 지역 교회와 상호교류하고 배우는 마당”을 이루기를 바란다. 이러한 모임이 되도록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교회 모두 힘을 모아서 이 총회 개최를 한국국민으로서 환영하고 국제적인 대표들이 한국애 와서 한국교회의 경건을 배우고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체험하고 돌아가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황혼에 접어든 서구 기독교인들이 한국교회의 생동성을 배우고 가라는 식의 오만한 태도를 접고 “자기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교회의 경험을 수용하는”겸허한 태도로 이 대회를 준비하고 손님들을 받았으면 한다.
반세기전 한국교회는 WCC 참여 때문에 분열되었던 미성숙한 시기에 비교하면 오늘날 한국은 국력으로도 선진국 대열의 20-50 그룹에 들고 한국교회는 2만 3천명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교회이다. 한국교회는 이번 부산 대회를 계기로 CC운동을 포용하여 교리적으로 미흡한 부분은 보충하고 세계교회와 호흡하여 전 인류를 복음화하는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