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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칼럼] ‘생명’을 발견하기까지

이재천·기장신학연구소 소장

▲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베리타스 DB
‘생명’이 기독교 선교와 신학의 중심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랜 일이 아니다. 서구 중심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근간으로 등장한 제국주의와 현대산업사회가 지난 한 세기 동안에 초래해 놓은 지구적 현상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낙관적인 것 만 같았던 인류역사의 발전은 불과 한 세기 남짓 만에 온 지구 위에 파멸에 그림자를 드리워 놓았다.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회의 관심 또한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복음주의와 생명

기독교 안에 ‘생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복음전도를 선교와 동일시하는 복음주의적 선교관은 ‘예수는 구원’이라는 등식을 내세우고, 선교지 또는 피선교자의 개종을 목표로 삼는다. 선교지에 필요한 학교, 병원 등의 복지시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최종적인 목적은 교회의 설립이다. 한국교회 일반은 이미 19세기 말에 정착된 복음주의적 선교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복음주의 선교관은 기독교 우월주의에 기초하며, 서구문명을 기독교와 동일시한다.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생명’이란 ‘영혼의 구원을 통한 영생’을 의미하므로, 생명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인의 영적인 영역에 속한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생명

19세기 세계적인 복음전도 운동은 일종의 부메랑 효과를 초래했다. 선교자들은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적 토양을 가진 사회가 존재하며, 그러한 토양에 뿌리 내린 복음의 모습이 자기들이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세상 교회 사이의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 서구 교회는 교회의 공통분모(교회의 일치)를 확인하고자 했다.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문명에 대한 책임의식을 전제로 하는 서구 교회는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다른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20세기 초반 서구 사회의 역사적 경험(특히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태동한 1948년 암스텔담 대회의 보고서의 마지막 장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그로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용어 중에 하나가 ‘변화,’ 즉 ‘사회적 변화’이다. 세계 교회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관심은 제3세계 영역의 신학적 각성과 연계되어 더욱 고조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말에서 비롯해서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교회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영역이 대두되었다. 환경문제, 생태계 위기의 문제이다. 교회는 인간 사회의 변화만이 아니라 삶의 토대가 되는 지구 자체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자행되는 환경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정신사적 배후에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생명’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영역에서 ‘생명’은 주로 지구적 차원의 생태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서구 신학과 생명

20세기 서구 신학계에서 ‘생명’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인물로 알버트 슈바이처를 꼽을 수 있다. 1900년 이후 세계 전쟁을 거치면서 슈바이처는 ‘기독교 문명의 문제’에 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는데, 그 산물이 바로 ‘생명에의 경외’ 사상이다. 그는 인간의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윤리의식에 기초한 서구 사회의 낙관적인 세계관이 초래한 비극을 지적하면서, 그 대안으로 ‘생명에의 경외’를 촉구한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생명에의 경외’는 사랑의 윤리를 포괄하여 모든 윤리의 근본을 이루는 원리가 된다. 그는 ‘생명에의 경외’로 인해서 인간과 모든 창조세계가,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서로 화합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생명’은 인간이 알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그 ‘생명’을 나누어 누리고 지속시키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한다. 슈바이처의 ‘생명에의 경애’ 사상은 무한한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애에 기초하여 이웃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윤리사상이라고 하겠다.

서구 신학자들 중에서 ‘생명’에 대한 주목한 이들로는 잠정적인 이 세상을 자기 완결성을 지닌 창조 활동의 결과로 이해했던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사상에 기초한 과정신학자들과,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태학적 생명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킨 데이아르 샤르뎅 등을 꼽을 수 있다. 진화에 대한 낙관적 관점을 갖고 있었던 샤르뎅에 의하면 ‘생명은 운동이고, 인간은 생명의 운동이 성공적으로 움직여 빚어낸 최신작품’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 사상은 서구 신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여성신학의 공헌

여성신학은 서구 신학계에서 ‘생명’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예를 들어, 에코페니니즘을 주창한 로즈마리 류터는 남성중심의 서구문화, 서구신학 전통이 간과해왔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고하게 하는 새로운 생태학적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류터는 지구를 인간이 불가분의 부분을 이루고 있는 유기적인 생명체로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에코페미니즘 신학과 계약 전통과 성례전적 삶의 전통이 서로 보완을 이루어 ‘거룩한 몸’인 이 세상을 치유하게 되기를 전망한다.
 
해방신학과 서구신학의 만남

세계적으로 1960년대는 ‘혁명의 시기’로 불린다. ‘혁명의 시기’ 이래로 20세기 세계 신학계를 주도한 것은 해방신학이었다. 해방신학은 곧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신학의 대명사로 불려졌다. 그런데 1980년대를 넘어서면서 해방신학 내에서 ‘영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점차 남미 사회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해방신학 내의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서구신학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게 해주었다. 지구적 차원에서의 생태학적 위기의 문제를 공통의 신학적 관심사로 삼게 된 것이다. 21세기 세계 신학계에서는 ‘생명’을 매개로 해서 동서와 남북의 만남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국 기독교의 공헌

서구 기독교는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생명’에 관한 신학적 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서구적 인식의 근거를 형성하는 존재론적 사유방식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서구 신학자들은 ‘생명’을 자연의 현상으로 이해할 뿐, 그 기운의 우주적 통전성과 운동의 역동성을 실감나게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기독교계의 ‘생명’ 이해는 동양적 사유방식에 근거한다. ‘生命’을 단순하게 ‘life'로 번역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신학자들이 제기하는 ‘생명신학’은 근본적으로 사유방식의 전환을 전제로 한다.

‘생명’은 살아있는 운동이다.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의 힘이다. 한국 기독교는 사회변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생명현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한국 기독교의 경험은 21세기를 맞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정적인 세계화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고 있는 세계 신학계에 귀중한 신앙적 유산이 된다.

상처받은 영혼의 회복을 기원하는 생명살림 운동, 생명을 살리는 대안적 공동체 운동으로써 농촌교회의 생명운동, 생명을 살려내는 운동을 일상생활 속에서 전개하는 여신도회원들의 생명 살리기 운동,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이루어 보려는 생명 나눔 활동,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생명이 꽃피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희망하는 생명선교 운동, 등등. 생명을 살리는 이 모든 경험은 하나님께서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21세기 세계사회를 위해서 한국 기독교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된다.

이번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이기를 천명한다. 우리의 교회는 ‘생명선교,’ ‘생명목회,’ ‘생명신학,’ 즉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운동의 모체가 되고자 한다. ‘생명을 살려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부르셔서 맡겨주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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