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서울주교좌성당]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가족

2012년 6월 10일 주일예배 설교자 주임사제 이경호 신부

성서본문

마르 3:20-35

설교문

교우 여러분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붙여준 꼬리표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는지요?

저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였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어야 했습니다. “경호야! 네가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잘 해야 한다. 엄마는 너를 믿는다.”어린 저는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다른 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지낸 때가 참 많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나 비위에 거슬릴 때 그 사람에게 어떤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붙이는 꼬리표는 ‘못난이’ ‘바보’‘멍청이’‘미련 곰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좀 더 심해지만 ‘미쳤다’거나 ‘정신병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모든 일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잘못된 꼬리표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불편해지고, 공동체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세상 사람들, 특히 몇몇 언론이 성공회에 붙인 꼬리표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고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붙여준 꼬리표가 근거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의 판단과 기준을 그대로 교회 안으로 가지고 와서 서로를 불편하게 여겼고, 그로 인해 아주 작은 견해 차이에도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런 꼬리표는 예수님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가르침이 좋다며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예수님을 모함하고 배척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마르코복음은 예수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 즉 예수가 ‘미쳤다’, 사탄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는 이야기와 예수님이 그런 소문 듣고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그리고 당신을 찾아 온 가족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미쳤다, 혹은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낸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런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요? 아마도 이런 악의적인 소문을 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비위가 상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1장부터 3장을 읽으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이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마귀 들린 사람에게 명령하심으로 악령들이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과 말의 권위를 보고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기면서도 나병환자, 중풍병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고, 사람들은 이런 일은 처음 보는 일이라며 놀라면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행동을 매우 불편해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 당시 정결법에서 접촉을 금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나병환자와 같이 불결한 사람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함께 한 자리에 어울러 음식을 나누면서 식탁공동체를 형성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율법학자들은 아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넷째,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주실 때‘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장이 주관하는 희생 제사를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병을 고쳐주셨으니 제사장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에 대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냈던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추종하는 세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것인가? 고심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소문을 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병 고침의 능력과 복음 선포를 통해서 이루려는 새로운 하느님의 질서, 하느님 나라보다는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질서, 기득권 그리고 물질의 토대를 잃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이 미쳤다.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가장 적대적인 꼬리표를 붙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악의적인 꼬리표를 붙여서 주님이 하시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 한 나라가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제대로 설 수 없다.”

내가 미쳤다고 말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거역하는 너희 율법학자들아!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불성설이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한 가정이 갈라져 서로 싸우면 그 가정도 버티어 나갈 수 없다. ” 이 말씀은 초대 교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물론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모함하여 미쳤다, 정신병자라고 말하더라도 너희는 서로 갈라져 싸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가정이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교회가 서로 갈라져 싸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터 위에 세워진 신앙공동체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처럼 교회는 십자가 아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혈육의 정보다 더 뜨겁고 친밀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극복하기 어려운 가족 중심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해야만 온전한 하느님의 지배와 통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오자 군중들이 소리쳐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이 말씀을 우리의 윤리나 도덕의 눈으로 보면 당신을 낳아주신 어머니와 형제도 몰라보는 무례하고 근본 없는 언사처럼 보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아들이나 딸이 이런 소릴 했다면  어머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요? 아마도 그런 불효막심한 자식을 낳고 미역국을 먹은 것을 후회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형제를 무시하거나 보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너는 하느님의 뜻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너의 참 자아를 찾고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 안에서 네가 누구인지 찾아야만 인간의 약함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요한복음 15장과 16장에 의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아주 분명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와 정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 잡아 주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시고, 그 일을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은 아주 단호하게  “다른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그 뜻을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의식적으로 악마로 왜곡하는 죄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일하려고 할 때 그것을 인간적인 생각이나 이념, 세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방해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으나 이 죄는 용서 못하겠다하십니다.    

우리는 성령강림주일과 성삼위일체 주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어떻게 서로 구별되면서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서로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하나로 결합되는지... 어떻게 자신의 존재로 남아 있으면서도 다른 존재를 향해 열린  사랑의 관계, 사랑의 삶, 사랑의 가능성을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보고 그렇게 사랑하며 살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삼위일체의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그 뜻을 이루며 살아갈 때 성령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정말 새로운 가족으로 서로의 어머니가 되고, 형제자매가 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이 놀라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루려 하셨던 그런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꿈꾸며 매주일 이렇게 성찬 예배를 드리며, 함께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마십니다.
한번 큰 소리로 저를 따라 해보실까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서로에게 정말 좋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가 되어 봅시다.

오늘의 본기도를 다시 바침으로 오늘 저의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희망을 견고히 붙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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