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은곡 김소영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2일 오후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렸다. 박상증 목사(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가 예배 중 설교하고 있다. ⓒ베리타스 |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은총입니다.”
2일 고 은곡(恩谷) 김소영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열렸다. ‘부활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이날 추모예배 설교를 맡은 박상증 목사(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는 "죽음을 외면하지 말자"며 이 같이 말했다.
박 목사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면서 "이제 하나님의 원수인 죽음을 우리는 더이상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과 맞서 싸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소영 목사는 죽었으나 그의 고결한 정신과 뜻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며 "이제 먼저 가신 고 은곡을 기억하며 영원한 세상에서 그를 받아주실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자. 또 (우리가)분명히 다시 만난다는 희망을 기억하며 살자"고 덧붙였다.
이어지는 추모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김영주 총무는 고 김 목사의 약력 중 NCCK 총무 재직 시절에 주목한다며 서슬퍼런 독재정권 아래서 공교회의 역할과 기능을 다한 고 은곡의 존경과 감사의 표시를 했다.
김 총무는 특히 고 김 목사의 재임시절 있었던 도잔소 회의(1984년)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하 88선언) 발표를 회고하며 암흑 시기에 통일문제를 화두로 던진 것은 "목숨을 내놓은 일과도 같았다"고 평했다.
통일문제와 관련해 김 총무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완성된 시대인 지금도 통일문제 얘기하면 다들 종북 좌파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조금만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선 빨갱이라고 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통일문제 얘기하는 것이 매우 버거운 일인데 1980년대 군부의 억압 속에 통일문제를 얘기했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어쩌면 자칫 잘못하다간 온 가족이, 온 집안이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찍혀 이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렵게 될 수도 있는 결정이고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김 총무는 이어 "그 때 한국교회가 통일문제를 언급했기에 차츰 차츰 우리사회에 (이것이)회자되어 통일문제를 얘기하지 않으면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상황까지 끌고 왔는데 이것은 NCCK의 큰 공헌이라고 생각하고, 그 공헌의 한복판에 김 목사가 있었다"고 역설했다.
한국교회가 통일문제를 언급하고, 회자되게 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 고 김 목사에 존경의 뜻을 내비친 김 총무는 끝으로 생전에 김소영 목사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김 총무는 "김소영 목사님은 넉넉한 분이셨고, 뛰어난 통찰력과 예언자적 예지력을 가지신 분이셨다"고 했고, 또 "유연한 분이셨다. 당시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한국교회를 아우르면서 에큐메니칼 진영이 본연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해 진보, 보수를 잘 아우르는 넉넉한 지도력을 발휘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한편, 고 은곡(恩谷) 김소영 목사는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신학사)와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신학석사) 그리고 미국 매나해스신학대학교 대학원(신학박사)을 나왔다. 김 목사는 실천신학회 회장, 기독교교육협회 회장, 찬송가공회 회장,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기독교출판협회 회장, 영남신학대학교 총장, 마닐라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으며 특히 1980년대 암울한 시절 NCCK 총무직을 맡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많은 후배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