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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구소련의 신문들: 프라우다와 이스베챠(진실과 보도)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필자가 1980년대 초반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경험한 일이다.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독일에서도 2월 11일 11시가 되면 사육제(謝肉祭)가 시작된다. 독일말로 퐈싱(Fasching)이라고 하는 이 축제는 기독교에서 예수 수난절 6주간이 시작되기 전 금식을 하던 관습(Fastnacht)에서 온 것이다. 독일의 경우 이 축제는 가톨릭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라인 강변의 도시들, 마인츠, 뒤셀도르프, 쾰른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벌어지는데 각 단체들이 화려한 의상을 차려 입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사탕이나 빵 등을 길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로 진행된다. 이 날은 아직 겨울이 다 지나지 않아서 꽤나 추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사육제 행렬을 구경한다. 필자도 가족들과 친지들과 함께 몇 번 구경나간 적이 있다. 날씨가 매우 춥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파는 적포도주에다 설탕이나 꿀을 타고 계피가루를 넣어 끌인 뜨거운 포도주(Glühwein)를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이 행사는 방송이 거의 하루 종일 라인 강 상류도시인 마인츠로부터 뒤셀도르프 그리고 쾰른 순으로 중계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라인 강의 중간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실내행사가 계속되는데 커다란 홀에 모인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저명한 정치가나 연예인들이 나와 연설도 하고 재담도 하면서 청중들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어느 해인가 기민당의 콜 수상이 집권할 때인데 노동부장관인 불륌(Blüm)이란 키가 작은 사람이 나와서 재담을 늘어놓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당시는 아직도 냉전시대였기 때문에 그는 모순된 소련사회를 풍자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련에는 지금 두 개의 커다란 신문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라는 뜻을 가진 신문 프라우다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도“라는 의미를 가진 이스베챠라는 신문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련의 신문 프라우다에는 이스베챠가 없고 또 이스베챠에는 프라우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청중들은 배를 쥐고 웃어댔다.

필자는 처음에는 왜 그들이 그렇게 웃는지 당장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프라우다에 이스베챠가 없다는 것은 진리라는 신문에는 선전만 있고 보도는 없다는 것이고, 또 이스베챠에는 프라우다가 없다는 것은 보도라는 신문에는 진실 즉 진실보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 특히 구소련의 언론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서구의 자유세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언론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언론이 진실보도를 하지 않고 정부의 선전이나 한다면 그 사회에 사는 국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되는 암흑의 세계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부패하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필자가 이러한 구소련의 언론행태를 회고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언론 상황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 상황의 왜곡은 모두가 다 아는 대로 제도적 모순들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주요언론으로서 공영방송과 상업방송 그리고  몇 개의 주요 신문매체들이 있다. 공영방송으로서는 KBS, MBC 그리고 EBS가 있으며 상업방송으로서는 SBS, OBS 등과 이른바 얼마 전에 인간된 신문사들이 소유한 종편케이블 방송들이 있다. KBS, MBC 등은 공영방송국이라고는 하지만 구조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공영방송이라 함은 소극적으로 정의해서 국영방송이나 상업방송이 아닌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방송을 말한다. 따라서 방송을 국가나 정당이나 기업이 운영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공공단체들, 즉 시민단체들, 예로서 노동조합, 농민조합, 종교단체나 제반 이익단체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을 공영방송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중들의 단체들이 운영하는 것을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공영성 아니 공공성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사전적 의미에서 공공성이란 1.누구나 듣거나 볼 수 있는 것. 2.개인이 아니라 많은 사람 혹은 전체 대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3.국가와 관련된 것 등이다. 이미 18세기 유럽의 법률 문서들에서는 “공공적”이라는 말에 대한 두개의 지배적 의미들이 구별되어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공공의 복리 혹은 국가와 같은 공동체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공공성 철학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임마누엘 칸트는 그 개념의 초월적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관련된 행위들, 공공성과 합치되지 않는 것들의 원리는 부당하다.” 그리고 이 개념을 법과 정치원리와 관련시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공성을 필요로 하는 모든 원리들은(그것들의 목적에 타당하기 위해서) 법과 정치와 합치된다. 왜냐하면 그 원리들이 단지 공공성에 의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대중의 보편적 목적(풍족한 행복)에 합치되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대중을 자기들의 처지에서 만족하게 만드는) 정치의 본래의 과제와 일치한다. 따라서 공적 권리란 그것이 대중의 보편적 목적들, 즉 공적 관심사를 지향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전정한 정치란 “공적 권리의 이념과 일치하는 의미로 제약된다.” 따라서 공공성은 대중과 관련된 것이며 정치가 일반 대중의 복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의 기초가 되는 법과 제도는 이 공공성 원리와 합치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의 공영방송의 운영주체는 이러한 대중들이 주체가 되는 시민들의 단체들이 아니고 대통령이나 국회가 제청하는 인사들로 구성되는 이사회를 통해서 운영된다. 행정부와 입법부(사법부는 제외)가 공영방송의 운영주체를 구성하는 권한을 갖는 것은 물론 삼권분립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행정부나 입법부는 국가기관이지 공공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유럽 선진국들처럼 공영방송의 운영주체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이사회 같은 것들에 의해서 방송국의 사장 등 중요한 인사가 단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공영방송의 운영도 상업방송들과는 달리 시청자들이 낸 시청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제작하는 것도 이들 시민들의 단체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일례를 들면 독일의 경우 공영방송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 종교단체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게 할당되고 그 프로그램은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그 단체들에 의해서 제작된다. 그 제작된 프로그램은 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국을 통해서 송출된다. 공영방송에 참가하는 노동조합이나 농민조합 등 다양한 단체들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배정받고 프로그람을 자체적으로 제작하여 송출한다.

이렇게 시민들의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방송의 운영주체를 결정하고 시간할당을 하고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자기들의 시간에 방송할 때만 진정한 의미에서 방송의 공공성, 즉 공영성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공영방송을 자청하는 지상파 방송이나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종편 케이블 방송들을 시청한 결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상파 공영방송들은 대통령선거에서 거의 보도기능이나 비평기능을 하지 않고, 그런 기능을 했던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징계하는 웃지 못 할 진풍경을 연출했다. 다른 한편 이른바 종편들은 거의 모든 시간과 프로그램을 선거방송에 할당하여 일방적으로 특정 정당과 그 후보를 지원하는 편파적 방송을 감행했다. 특히 종편의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극우적 인사들이 거의 총출동하여 일방적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는 전대미문의 언론왜곡을 일삼았다. 그 대표적 예가 박근혜당선자의 대변인으로 지명된 윤창중이란 사람이다. 그 사람은 거의 히틀러의 선전상이었던 괴벨 수준의 망언과 망발을 일삼았는데 그 사람이 대변인 된 것은 심히 우려스럽고 유감이다. 이런 식의 편파방송이라면 지도자를 무작정 고무하고 찬양하는 북한의 방송매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국의 언론들은 구소련의 언론에서 보았던 것처럼 진실보도는 실종되고 왜곡보도와 일방적 선전을 통해서 혹세무민들 일삼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선거기간동안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이라는 주제에 매달려서 언론의 본래의 모습인 공공성을 망각한 왜곡된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모든 개혁에 앞서서 매일매일 국민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언론을 바로잡아서 그 공공성을 담보하여 국민들의 이익에 종사하는 기구로 만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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