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재천 칼럼] 종교와 파시즘

이재천·기장신학연구소 소장

▲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베리타스 DB
종교적 파시즘, 전체주의적 성향의 종교는 정치적 파시즘의 모태가 된다. 지난 세기 인류사회가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은 역사적인 교훈이요, 종교개혁 정신에 토대를 둔 교회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세속 권력의 정치적 파시즘을 막기 위해서 먼저 종교적 파시즘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점에서 파시즘과 대결하고 극복하는 일은 신학과 기독교윤리학의 기본 과제에 속한다.
 
실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타이타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면서 그렇게 큰 희생이 나게 된 주된 이유는 배가 침몰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 안에는 호화로운 특실에서부터 갑판 아래 삼등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침몰하는 순간, 그들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운명을 거슬러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고 몸부림치던 한 젊은 영혼의 모습이 비극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현실을 보면,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세상을 구원할 거대한 방주가 건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일어날 큰 홍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지, 기독교를 우리 사회의 희망이요 도덕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한 분위기이다. 교회의 행태에 대한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평가는 이미 사회 저변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회의 한 집단으로서 역사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기독교 앞에, 몸집을 수면 아래 감추고 있는 빙산이 등장한 것이다.
 
다른 한편, 목회현장을 지켜내기 위해서 몸부림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무한경쟁의 궤도에 들어서 있는 목회현실에서 목회자는 목회의 본질을 묻고 확인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갖기 어렵다. 그 보다는 눈앞의 목표와 생존이 급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확실한 수단과 방법이 있다면, 천만금을 주고라도 구해야 할 텐데….’ 목회의 ‘비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불 섶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현장 목회자들의 마음고생을 어느 누가 이해하랴?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고 했던가? 목회자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비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다양한 비법들이 공유하는 가장 분명한 목적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공적인 목회’이다. 물론 여기에는 ‘성공적인 목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될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인 목회관, 즉 종교 파시즘의 유혹에 걸려들기 쉽다. 아니, 이미 빠져있는 경우가 목격된다.
 
소위 성공적인 목회를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는 교회의 행태를 종교 현상의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비법’들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를 세 가지 범주로 구별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범주는 가능하면 종교의 본질적인 문제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본질에 집착하면 발이 느려져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1)기독교의 본질을 묻는 것 같은 신학적인 과제는 명확한 ‘공식(교리)’으로 대체해야 한다. 단순한 믿음이 복잡한 신학보다 낫다. 2)교회의 역사성과 시대적 사명도 묻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교회의 복음적 사명, 선교적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3)신학적 훈련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훈련은 오히려 분명해야 하는 메시지의 초점을 흐리게 한다. 4)종교의 윤리적인 규범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 규범보다 정신이 앞서는 것이고, 삶의 능력은 규범이 아니라 은총과 성령의 역사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범주는 현상에 주목하고 실용적인 방편을 확실하게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대중의 종교성을 이해해야 한다. 대중의 욕구와 기호를 모르면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목회는 대중을 상대로 하므로 대중적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2)대중을 교화시키는 교육과정(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내용보다는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문화적인 수단은 그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있다. 3)보상적인 축복의 신앙을 가시적인 자본의 논리와 결합시켜야 한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련사의 손에서 던져지는 먹이가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 범주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1)지도자는 확고한 신념을 갖추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해야 한다. 대중이 종교에 기대하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초월성이다. 2)종교적인 지도자는 민주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카리스마적 지도자이다. 흔들리는 토대 위에 서있는 무기력한 대중은 확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리더십과 권위는 믿음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확신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3)지도자는 집단이 공유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반복하여, 습득하게 해야 한다. 지도자의 이념이 집단의 이념이 되어야 한다.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의식을 집단의식에 통합시켜야 시너지효과(synergy effect)가 나타난다. 4)집단 속에서 지도자의 존재 가치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집단 조직의 명분은 민주적으로 하지만, 조직의 구조는 실제적으로 지도자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5)목표를 이루려면 지도자 자신이 먼저 믿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따라온다.
 
모든 종교 현상은 역사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조건을 전제로 할 때, 종교 현상은 사회적인 현상으로 파악되고, 상대적인 비교가 가능해진다. 사회적인 현상들의 유형적인 비교연구는 객관성을 검증하기 힘든 이론적인 작업에 불과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현상의 주체가 되는 집단이 역사의 지평에서 거쳐나갈 전개과정을 전망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오늘의 교회현실을 분석해보기 위해서, 지난 세기 초반의 세계사적 경험인 ‘파시즘’을 유형적인 비교 대상으로 삼아보려고 한다. 파시즘은 그 원래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의 행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적대자를 모욕하고 비방하는 행위가 된다. 사람들은 파시즘이란 용어를 적대자를 묘사할 때 사용할 뿐이며, 결코 자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을 언급하게 되는 것은) 파시즘이란 용어가 지목하고 있는 내용과 분리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20세기의 전반기는 파시즘의 시대였다. 파시즘의 등장 배경에는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과 미국 경제의 몰락으로부터 촉발된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위기상황이 있다. 혼돈과 위기의 시대에 파시즘은 놀라운 속도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 나갔다. 그리고 나치(독일 국가사회주의) 최초의 전당대회에서 히틀러가 “악마라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고 외쳤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유럽사회의 권력을 장악해 나갔다. 그러나 파시즘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희망의 빛줄기로 빛나기 시작할 때, P. 틸리히 같은 신학자는 파시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종교적인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예상되는 결과에 전율했다.
 
하여튼, 파시즘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대중의 ‘길이요, 진리요, 희망’이 되었는가? 어떻게 대중으로 하여금 광란에 빠지듯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믿게 해주었는가? 어떻게 대중을 마치 진흙을 반죽하듯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는가?

파시즘의 특징을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대중의 위기감을 분명하게 파악했다. 그러므로 대중은 파시즘의 주장 속에서 자신들의 불만과 욕구를 이해하고, 해소시켜 줄 수 있는 힘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2)강력한 부정을 통해서 더 강력한 긍정을 만들어 내었다. 파시스트의 행동은 당시 사회의 민주적인 절차를 거부했다. 대중을 억압하는 세상적인 질서를 무시함으로써, 억압된 대중의식의 카타르시스를 가져왔으며, 더불어 새로운 질서에 대한 희망이 되었다. 3)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반지성적 반동을 강행했다. 행동주의를 찬양하고, 물리적인 힘의 행사를 미덕으로 삼음으로써, 새로운 추종세력을 확보했다. 4)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했다. 개인주의적 자유를 자유방임주의로 규탄하고, 대안으로 강력한 집단주의를 내세웠다. 집단을 위한 최고의 가치는 복종이었고, 복종을 통해서 집단의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국가)집단은 지고한 최상의 존재가 되었다. 5)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성을 입증했다. 집단의 이상은 지도자를 통해서 구현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권력은 지도자 일인에게 집중되었고, 집단 내의 수평적인 채널은 수직적인 채널로 대체되었다. 6)적대적인 세력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집단의 분열을 초래하는 세력을 악으로 규정했다. 그러므로 내부적인 갈등을 생산적으로 해소하게 되었다. 7)대중의식은 조작이 가능하며, 조작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대중의식의 조작을 위해서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매스 미디어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파시즘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구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유일한 가능성임을 선전하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 대중의 조직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무솔리니 치하에서 로마 시민들은 어느 곳에서든지 “무솔리니가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는 문구를 볼 수 있었다. 8)대중 집회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기획했다. 대중 집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공통의 경험, 느낌, 반응을 경험하게 함으로서 개인의 소외를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집회의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해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개인은 집단의 일원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고, 공동의 목적을 향해서 결집하게 된다. 9)대중이 지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영토 확장의 꿈을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프로그램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했다. 10)강함을 숭상했다. 파시즘은 연약함과 여성을 멸시했다. 용기, 규율정신, 동지의식 등, 남성적인 자질을 갖춘 인물을 이상형으로 설정했다.

라인홀드 니버는 파시즘은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할 때 생겨나는 혼돈에 대한 대중의 광적인 두려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면서, 혼돈에 대한 견제의 관점에서 파시즘을 “비관적인 기독교의 불행한 결실”이라고 표현했다. 니버는 혼돈에서 출현한 파시즘이 세계를 더 큰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던 시기에, 대중의 열광주의에 기초한 정치 이데올로기는 ‘정치적인 종교’라고 갈파했다. 정치 이데올로기는 종교의 옷을 입어야 대중적이 된다. 파시즘은 대중적인 종교였다. 대중은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신앙으로 숭상했다.
 
그런데 대중의 지지를 받은 파시즘은 어떻게 되었는가? 대중적 열정에 기초한 파시즘의 강력한 국가우선주의는 막대한 공격성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절제할 수 없는 세력 확장의 욕망은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고, 무제한 전쟁의 화로 속에서 대중의 열정은 소멸되어갔다. 파시즘의 역사적 실험, 수단과 방법으로 본질을 대체했던 정치․종교적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다. 심각한 문제는 이 모든 정치적 파시즘은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적 파시즘에서 연유된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자유와 독립성을 침해하고 혼란과 부패를 조장하는 나치즘의 개입에 맞서다가 독일 대학 강단에서 추방당한 K. 바르트는, 파시즘의 몰락 이후에 스위스 교회를 향한 강연에서, “교회는 계속 교회로 있어야 한다.”고 외쳤다. 교회는 왜 계속 교회로 있어야 하는가? 그 누구보다도 바르트는 바른 교회가 바른 정치, 바른 역사와 직결된다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갈파했던 것이다. 종교적 전체주의는 어김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전체주의로 전개된다. 종교적 파시즘의 비극적 성격이 여기에 있다.

윤리적 판단은 복음의 절대적 요청과 현실의 상황적 요구 사이의 ‘긴장’을 전제로 한다. 이 필연적인 긴장과 갈등의 자리가 바로 목회자가 부름 받은 자리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분명히 개별 교파나 개체 교회의 성장과 쇠퇴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신앙의 근본,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추구하는 자세가 변함없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종교적 파시즘의 마성을 바로 보아야 한다. 참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는 ‘교회의 현실적 필요성이라는 미명아래 너무 오래 동안 묵인해온 종교적 파시즘, 전체주의적 목회의 뿌리 깊은 잔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목회적 긴장감에 바탕을 둔 (실종된) 목회윤리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땅의 목회자들이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 기쁘고 보람 있게, 신바람 나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교회가 계속 그리스도의 거룩한 공교회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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