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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돈에 대한 단상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들어가는 말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돈은 둥근 것, 따라서 순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의 정치학자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돈은 피와 같은 것이어서 순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적절한 말인 것 같다. 사람의 몸에서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 피가 머리로 올라가지 않으면 뇌가 손상을 입어서 병신이 되거나 사망한다. 그 반대로 피가 머리로 과도하게 올라가면 뇌출혈이 발생해서 병신이 되거나 죽게 된다. 피가 다리로 제대로 내려가지 않으면 발가락이 괴사하거나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피를 순환시켜주는 통로인 혈관이 튼튼해야 피를 몸의 구석구석까지 공급해 주어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거나 하면 여러 가지 질병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렇게 피는 우리 몸 전체로 골고루 순환할 때 우리는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혈액순환이 잘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이러한 혈액을 온 몸에 공급해 주는 곳이 심장이다. 그런데 심장이 약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몸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아니 이 심장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사람은 죽는다. 그래서 위기라는 개념은 원래 의학적 용어에서 왔다. 즉 생명이 죽게 되었을 때 우리는 위기라고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살수 없고 또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되려면 돈이 잘 돌아야 한다. 피가 돌지 않으면 생명이 위기에 처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역시 위기가 오는 것이다. 요즘 시장이나 적은 기업체에 가보면 사람들은 돈이 잘 돌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장사가 잘 안 된다는 것이고 기업에서는 공장이 잘 안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돈의 씨가 말랐다고도 한다.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많은 수출을 해서 무역흑자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그렇게 벌어들인 돈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부자들의 주머니에 쌓여 있는가 아니면 은행에만 틀어박혀 있는가? 아니면 국고에만 저장되어 있는가?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에 가 있는가? 대기업들이 그렇게 많이 벌어들이는 돈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렸는가? 서민들은 왜 그렇게도 돈 버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가? 청년들은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힘들다고 말하고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난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집 없는 사람들도 집 가진 가진 사람들도 빚을 지고 산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미국사람들이 많은 빚을 지고 산 집들을 빚을 갚지 못해서 빼앗기고 거리의 노숙자로 내몰렸었다. 근래에 와서는 유럽의 남쪽지역에 있는 나라 사람들이 국가채무로 어려움을 격고 있다. 얼마 전까지 잘 살아가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나라들이 재정위기를 격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해고되고 연금이 줄어든 노인들과 서민들이 고통을 격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구라파의 나라들도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유럽공동체를 지탱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등 비교적 재정적으로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도 실업자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튼실한 나라들로서는 북유럽 국가들인 스칸디나비아 제국들인 것 같다. 그 나라들은 벌써부터 가진 자들이 많은 세금을 내서 사회보장제도를 튼튼하게 만들어 놓아서 오늘날 경제위기에도 잘 대처하는 것 같다.

성서에 나타난 돈

필자는 신학자로서 돈에 대해서 늘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서에 보면 돈에 대한 부정적 표현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구약성서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보면 돈은 일반적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되어 별로 부정적 평가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욥기, 시편, 잠언 등 지혜문학작품들을 읽어보면 돈에 대한 윤리적 판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돈에 대해 부정적 의미에서 사용된 구절들은 이렇다.“격언에도 이르기를 '돈에 눈이 멀어 친구를 버리면, 자식이 눈이 먼다' 하였다.”(욥기 17:5) “재산이 많다고 하여 속죄 받을 수 없고, 돈과 권력으로도 속죄를 받지 못합니다.”(욥기36:19). 그리고 돈에 대한 긍정적 표현들도 많이 나타난다. “돈을 셀 수도 없이 긁어모으고,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도, 엉뚱하게도 의로운 사람이 그 옷을 입으며, 정직한 사람이 그 돈더미를 차지할 것이다.”(욥기 26:16-17). 한 마디로 말해서 구약성서에서는 악인들은 돈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형벌을 받게 되지만 정직한 사람은 결국은 돈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예언서들에게서는 메시아를 통해서“돈이 없는 사람들도 배불리 먹고 사는 세상”을 예언하고(이사야 55:1) 동시에 세상에서 삶을 돈벌이 하는 데만 바칠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기도 한다(이사야 55:2).그리고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돈놀이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에스겔 18:9). 특히 돈을 받고 불의한 재판을 하거나 죄를 짓는 것을 철저히 금한다(아모스2:6).

특히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돈 혹은 재물이 인간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부정적으로는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마태 6:21; 13:22;마가 4;19; 가 8:14) 예수는 돈 혹은 재물이 갖는 악마적 성격(魔性)에 매우 주목하는데 이는 하나님과도 필적할만한 힘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당시 농경사회에서와는 달리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통해서 돈이 가진 악마적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경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크게는 지난 세기에 금융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국가 간의 전쟁을 부추기거나 고도로 발달된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상을 당하기도 했다. 적게는 관리들이 돈을 받고 그릇된 재판을 하거나 불의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이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은 인간의 악한 심성을 발동하게 해서 생명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산업사회에서는 자연환경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동안 인류가 이 돈과 그것의 증식을 위해서 저지른 죄악들은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돈 혹은 재물이나 자본(맘몬)은 때로는 매우 악마적이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과 같이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분명히 했었다. “하나님과 맘몬은 같이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누가 16:13)

사도들의 서신들에도 돈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표현들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 6:10; 희브리서 13:5)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제자들, 성도들은 돈을 사랑하거나 거기에 얽매어 살거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딤전 3:3 딤후 3:2).

따라서 성서에서 예수와 사도들은 돈이 가진 매력 혹은 악마적 힘을 분명하게 파악했었다. 그래서 돈은 상거래의 수단 그 이상으로 섬기거나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사람은 그 돈을 받고 타인을 해치거나 불의하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재산을 탈취해서는 안 된다. 특히 돈을 증식수단으로 삼는 이자놀이나 투기자본으로 이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성서는 분명히 하고 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편 15:5).

돈에 대한 단상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아가는데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돈과 관계를 맺게 된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들 밑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며 인생을 준비할 때 부모님들의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지불하거나 산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부모님들에게서 독립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게 된다.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성인이 되면 그 때부터 젊은이들은 심리적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의 양육의무에서 벗어나며 자녀들은 양육 받을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인이 된 자녀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18세가 되어 성인이 되면 대학에 들어가는데 대학 등록금은 없으나 그래도 생활비는 마련해야 한다. 만일 부모님 집을 떠나서 다른 도시의 대학에서 공부할 경우(대개의 경우 그렇게들 한다) 그들은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 때 형편이 여의치 못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국가가 주는 대여금(Bafög)으로 충당하면서 공부한다. 그리고 만일 학생이 부님 집에서 거처하며 식생활을 해결하면서 학교에 다닌다면 그는 일정한 생활비를 부모님에게 지불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법적으로 이미 성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그것도 대여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부모들이 성인이 된 자녀들의 생활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라마다 성인이 되는 나이를 법률로 정한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처럼 형식적 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부모님의 경제적 후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에서 받은 대여금은 졸업 후 직장을 가진 다음부터 무이자로 상환하며 직장을 갖지 못하거나 여성들의 경우 가정을 가지고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 경우 대부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유예되거나 탕감된다.

이렇게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자녀들의 삶을 위해서 부모들이 돈을 지원해주는데 그것도 물론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부모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녀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부모들은 자녀부양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인이 된 자녀가 직장도 갖지 못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는 경우 그는 국가에다 실업자로 등록하고 실업보험을 받아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실업보험을 받는 사람들은 노동청에서 소개해 주는 직장(대부분은 좋은 직장이 아니다)에 다녀야 하고 3회 이상 거부하면 실업보험에서부터 사회보험으로 넘어가는데 그 때는 보험금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 사회보험이 액수는 “죽기에는 너무 많고 살기에는 너무 적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유럽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사회제도와 돈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현직에서 은퇴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돈과 관계 맺고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몇 가지 체험한 것들을 여기서 말해보려고 한다.

첫째 돈이라는 것은 스스로 생산한다고 할까 아니면 증식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돈은 은행에 예치를 통해서나 타인에게 대여를 통해서 이자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돈은 그것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로 모여드는 성향을 갖는다. 돈은 땅속에 묻혀 있지 않고(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나아와서 '주인님, 나는, 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마태복음 25:24-25) 은행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순환하는 경우 이자나 이익을 낳는다. 사람들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이 되면 휴식을 취하지만 돈은 노는 날이 없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 있어서 절대적으로 쉬어야 하지만 그들의 은행의 돈은 안식일을 모른다. 따라서 안식일이나 일요일이나 공유일이라고 해서 이자를 깎아주는 은행은 없다. 따라서 결국 돈은 적게 가진 사람으로부터 많이 가진 사람에게로 모여든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점점 더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생겨났다.

둘째 돈의 속성은 물과 같이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고 위로만 올라가려 한다. 돈은 낮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와서 높은 사람의 주머니로만 들어가려고 한다. 그것은 돈이 부자들, 돈이 많이 있는 곳으로 모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예를 들어서 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 비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꾸어야 하고 그들에게 꾸어준 부자나 높은 사람에게 이자를 갚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돈은 권력 있는 높은 사람에게로 모여든다. 권력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돈을 주어야 인허가를 얻어낼 수도 있고 때로는 처벌을 면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래 사람이 윗사람에게 돈을 주게 마련이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꾸거나 이자를 갚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권력이나 명예가 없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인허가를 부탁하거나 어떤 청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돈을 부자나 명에나 권력이 있는 높은 사람들에게로만 모여들게 마련이다.

이것이 필자가 일생동안 살면서 돈과 관련해서 보고 경험한 것들이다. 따라서 결국 이 원리가 맞는다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아담 스미스가 말하는“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원리인가? 이것이 자본주의적 고전경제학의 이론인가?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법칙에다 인공적 법률들을 가미해서 생겨난 자본주의 사회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인공적인 인간의 손이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 속에 흐르는 피처럼 자율신경계통에 의해서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 조작에 의해서 순환되는 것이다.

성서에서 적시된 대로 돈은 교환의 수단인 동시에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악마적 힘을 가진 맘몬이다. 따라서 성서에 의하면 인간은 이 맘몬을 섬길 대상이 아니라 통제해야 할 대상이며, 사랑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싸워야 할 것이기도 하다. 돈은 숭배 받아야 할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억제해야 할 상대적 존재이다. 이 돈이 많은 곳으로 집중되는 것이나 상위자에게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자기 본래의 성격인 교환수단을 넘어서서 지배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위자나 부자에게 돈이 과도하게 집중된 사회는 돈이 악마화, 맘몬화되어 인간들을 지배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돈이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에게 집중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유통되면서 상품들의 교환수단이 될 때 돈은 본래의 기능으로 돌아오며 그 때 사람들은 물건들의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때 사람들은 돈이 잘 돌아간다고 말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사코 가운데로 모이려고만 하고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는 돈을 흩트리고 아래로 내려 보내는 일이다. 특히 정치가 할 일은 돈을 높은 사람들과 부자들의 주머니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낮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머니가 차게 되면 그들은 돈을 쓰지 않고 못 배긴다. 그들은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는 즉시 시장으로 달려가서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들을 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이 없어서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기 시작하면 시장의 물건들은 동이 날 것이고, 식당들은 손님들로 꽉 들어 찰 것이다. 그러면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공장으로 주문할 것이다. 물건주문이 많이 들어오면 공장은 더 많은 물건들을 생산해서 시장의 수요에 응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기계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공장은 더 많은 기계와 인력을 확충하고 더 많은 원자재를 사들여서 생산을 늘려야 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고용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고용되면 실업자가 줄게 되고 지급된 노임들은 노동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그들은 다시 그 돈으로 시장으로 달려가서 또 물건들을 사게 된다. 그러면 시장과 공장은 돌아가고 노동자는 더 많이 채용된다. 따라서 이렇게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려면 돈은 어느 한 사람이나 기업에 집중되지 말고 돌아야 하며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보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자본주의 특히 금융(돈)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은 이렇게 돈이 위로 집중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토머스 홉스가 말한 우리 몸의 피(돈)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고 모든 피(돈)가 머리로 올라간 것과 같아서 자본주의가 뇌출혈에 걸린 것이다. 이러한 돈의 속성을 고치겠다고 나선 것이 사회주의였다. 역사적 사회주의의 실패는 돈을 통제해야 할 국가체제, 관료체제의 타락해서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지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타협안으로서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한 나라들, 예를 들면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독일이나 프랑스 등이 비교적 돈(화폐)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돈의 속성 즉 마성을 통제할 국가체제가 준비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지금 경제민주화가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의 화두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금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그 집중화를 막는 데서부터 경제민주화는 시작된다. 정치민주화가 권력의 분산이라면 경제민주화는 금력의 분산이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서 정치가들이 특권을 내려놓는다면서 돈을 차지하려해서는 안 된다. 자본가들이나 기업가들이 부를 나누지 않으면서 권력까지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여 그들이 기업들이 생산하는 상품들을 마음대로 살 고객이 되도록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수시장이 살아나서 기업의 항구적인 시장이 보장된다. 뇌로만 올라와서 과도하게 집중된 피가 몸 전체로 순환하도록 혈관을 열어주어 대한민국이라는 몸(국민) 전체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이 일이 오늘날 세계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나라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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