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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칼럼] 선과 악의 뿌리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 목사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좋은 사람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먼저 좋은 사회제도와 체제를 만들어야 할까? 사회가 온통 이기심과 불의한 관행으로 가득 차 있는데 개인에게 사랑과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허망해 보인다. 거대한 사회의 불의와 탐욕 앞에서 개인은 너무 무력해 보인다. 그렇다고 개인은 그대로 두고 사회제도와 체제를 잘 바꾸면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도 않다. 아무리 좋은 사회이론과 법, 제도와 기관을 잘 만들어도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 그 좋은 이론과 법, 좋은 제도와 기관을 나쁘게 만들고 나쁘게 운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하고 못난 사람도 남에게 상처를 줄 기회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아무리 모자란 사람도 남을 모욕하고 미워할 수 있다. 서로 미워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법과 제도만을 바꾸어서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

개인과 사회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개인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사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사회의 불의와 탐욕이 개인들의 심성과 생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바꾸기 시작해야 할까? 변화의 주체는 사람이니까 사람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도 법과 제도를 옳게 바꾸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고 법과 제도와 체제를 바꾸는 일이 선순환을 이루며 되풀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사회를 바꿀 때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끊임없는 시행착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간의 악의 뿌리가 선의 뿌리보다 깊다고 보면 인간의 생각과 삶을 바꾸는 일은 헛수고가 되기 쉽고 사회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도 희망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생명과 인간의 본성에는 악의 뿌리도 매우 깊이 박혀 있지만 선의 뿌리는 훨씬 더 깊이 박혀 있다. 악의 뿌리가 깊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회개혁만 하면 낙원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박한 낙관주의다. 생명과 인간의 본성에 깊이 박힌 선의 뿌리를 보지 못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오만한 비관주의에 빠져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교조주의자와 독단주의자가 된다. 물질에서 생명이 나온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 일이며 생명에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나온 것은 얼마나 놀랍고 거룩한 일인가! 사람도 바뀔 수 있고 사회도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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