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베리타스 DB |
농촌 교회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농촌 교회 목회자일 것이다. 우리 교단의 농촌 교회 목회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농촌 교회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 안팎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렇지만 교단적으로 농촌 목회자들의 수고가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농촌 교회 목회자들의 활동을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기는 인식이 팽배하다.
오늘의 농촌 현실이 농촌 사회가 스스로 초래한 결과가 아닌 것처럼, 농촌 교회의 문제도 단지 농촌 교회 목회자들만의 몫으로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농촌 교회의 미래는 교단의 구성원 모두가 목회적, 신학적, 선교적, 정책적인 제 분야에 걸쳐 함께 씨름해야 할 공동의 과제이다. 농촌 교회가 처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목회적으로는 다양한 활동과 경험이 축적되어 왔다. 반면에 신학적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책적인 연구 또한 부재하다.
농촌 교회는 한국 교회의 모판이다. 秏畈이며 母畈이다. 생명의 터이다. 모판(秏畈)이 부실하면 농사를 지어도 제대로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모판(秏畈)이 병들면 생명이 자랄 수 없다. 농촌 교회의 문제가 한국 교회의 문제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농촌 교회가 생명력을 얻게 됨은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1. 한국 사회와 농촌 교회
한국의 도시 집중화 비율(싱가포르, 홍콩 등 제외)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91%(1960년 28%, 1980년 60%)를 넘어섰다. 농촌의 거주 인구는 9% 정도이지만, 실제 농민의 비율은 6% 미만이다. 전체 인구의 6% 미만을 차지하는 농민의 절대 다수는 노인 계층이다. 농촌의 고령화는 농촌의 미래상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농촌 지역은 인구의 자연 감소율에 따라서 계속 축소될 것이다.
교회의 존립은 사회적 조건과 상관성이 있다. 농촌의 소멸과 더불어 농촌 교회는 사라지게 될 것인가? 앞으로 전체 교회에서 농촌 교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농촌 교회의 소멸을 사회적 변동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지켜보아야만 하겠는가?
교회의 사회적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과연 어떠한 변화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너무 많이 내포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온갖 사회적인 문제가 파생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제시되고 있다. 병리적인 사회 현상의 발생 원인을 파악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교회는 사회적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집단’이다. 사회적 집단으로써 교회는 사회적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회적 비전을 갖추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려면 사회적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촌을 살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교회는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생명을 살리는 일은 교회가 부여받은 본령이다. 농촌 교회는 농촌을 살리는 모판이 되어야 한다. 농촌 교회가 소생함으로써 건강한 세상을 향한 희망의 싹이 튼다.
우리 교단의 현황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농촌 교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전체 1,600여 교회 중에서 약 670개의 교회가 농촌 교회로 분류되고 있다. 농촌 교회가 전체 교회의 약 42%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농촌 교회를 마치 계륵처럼 여기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촌 교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운동의 모판으로 인식해야 한다.
2. 도시 교회의 성장과 농촌 교회
한국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도시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인구의 도시 집중화는 농촌의 위축을 배경으로 한다. 급격한 산업화는 그에 상응하는 이농현상을 초래했다. 막대한 이농민의 유입은 도시 교회가 양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이 되었다. 이농으로 인해서 도시 교회가 성장의 조건을 갖게 된 반면에, 농촌 교회의 대부분은 절대 주민의 감소와 더불어 교세가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농촌교회, 살 수 없어 교회를 떠납니다.”라는 신문기사의 제목은 한 해에 50만 명씩 농촌을 떠나야했던 1980년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농과 함께 진행된 신도들의 이동은 농촌 교회에서 도시 교회로의 일방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농촌 교회에서 양육된 신도들은 도시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마치 모를 쪄내고 채우지 않은 모판처럼 농촌 교회는 비어가고, 그 수확은 도시 교회가 얻게 된 것이다. 교회에서는 ‘은혜는 받은 만큼 나누기 마련이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과연 도시 교회는 농촌 교회로부터 받은 만큼의 ‘은혜’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3. 양적 성장의 정체 극복
개신교는 한국 사회의 주요 종교 중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전도활동을 전개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신자는 감소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지난 10년간 한국의 전체 종교 인구는 237만3천명이 늘었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가 219만 5천명 늘었고, 불교 신자도 40만 5천명 늘었다. 반면에 개신교 신자는 14만 4천명 줄었다.
개신교 세력이 전반적으로 정체 또는 쇠퇴하면서, 양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예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일부 도시 교회의 성장도 그 실상을 보면, 대부분 도시의 확장 또는 신도시 건설 등으로 인해서 새로운 대단위 거주지역이 생겨남으로써 비롯된 도시 내에서의 인구 유동이나, 교회 사이에 신도들의 수평이동의 결과이다. 서울에서도 소위 장안이라 일컫는 구도심 지역에서는 양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에 일산, 분당, 중동, 수지, 김포, 의정부 등, 서울 외곽지역에서는 양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다.
농촌 문제와 관련지어 보면, 교회 성장이 정체를 이루게 된 사회적인 요인 중에 하나가 이농현상의 정체이다. 교회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된 시기는 사회적으로 이농현상이 정체되기 시작한 시기와 겹쳐진다. 이제 대부분의 농촌에는 더 이상 거주지를 떠날 주민이 남아있지 않다. 이농으로 인해서 농촌 교회로부터의 신도 유입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에 처한 도시 교회의 미래 또한 밝지 않다.
교회의 성장이 자기의 공로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도시 교회의 목회관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도시 교회의 성장이 농촌 교회로부터의 일방적 수혜에 의존했던 실상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양행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도시 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이 일방적인 성장 모드에서 양행적인 살림 모드로 전환될 때, 한국 교회는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적 집단이 사회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변동 요인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우선 사회적 집단으로써 기본 질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본 덩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인 의식의 유무이다. 집단적인 역사성과 공동의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집단의식 등이다.
사회적 집단의 관점에서 교단 현 상태를 분석해야 한다. 사회 변동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유형의 사회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역량에 대한 분석을 구성원 전체적가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데올로기적인 당위론이나 신학적 명분이 계속해서 주도하게 된다면 교회의 미래는 밝지 않다. 교단적으로 정신과 몸, 신학과 교회 현실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 사회적 변화를 추동할 내적 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교단적인 역량의 장단점을 인식함으로써, 한국 교회, 나아가 한국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다.
4. 농촌 목회의 비전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이루어진 근대화가 빚어낸 부작용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는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문화적으로는 서구화, 사회적으로는 도시화, 종교적으로는 기독교화 등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뿌리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에 놓여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가장 믿고 싶지 않은 종교’로 꼽히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가장 힘이 있는 종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독교가 사회적 변화의 수혜자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기독교가 사회적 고통을 초래한 원인 세력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개별 교회 차원의 선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해외선교 열풍이 한국 교회를 휩쓸고 있다. 그런데 국내선교가 정체된 해외선교가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해외선교에 전폭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들은 대부분 선교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들이 해외선교를 지원하는 만큼 국내선교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한국 교회는 해외선교를 보다 장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를 갖추게 될 것이다. 선교 정신을 함께하는 선교의 모체 교회들이 그 만큼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힘을 쓰기 시작하면, 교회의 행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더불어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가 더불어 사는 것은 곧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지역 주민들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도시와 농촌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농촌 교회의 회복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변화를 선교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농촌 교회를 살림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변화 과정에서 소외되어온 농촌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생명을 살리는 터전의 회복은 농촌 교회가 지향하는 목회적 비전이다. 농촌 목회가 꿈꾸며 이루어가는 농촌의 변화 속에 한국 교회의 미래가, 한국 사회의 희망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