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
우선 뜻 깊은 WCC 총회에 대한 바람을 말하기 전에 이 총회가 이와 같은 주제로 한국에서 열리게 된 의의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WCC 10차 총회 한국개최의 의의
첫째 세계의 거의 모든 개신교회를 아우르는 이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은 그 동안 한국개신교가 WCC운동에서 차지하는 교회적 신학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의미한다. 한국개신교회는 짧은 선교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괄목할만한 양적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한국개신교회는 선교초기에 한국의 역사의 고난의 현장에 동참함으로써 민족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고 또 계몽사업,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 의료사업 등을 통해 한국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국개신교회들은 일본 식민지시대에 전통종교들과 협력하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투쟁함으로써 해방 후 한국의 근대적 민족. 민주국가 형성에 이바지했다. 나아가서 한국개신교회들은 여러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또 한국개신교회는 한국의 민중들과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얻은 경험과 영감을 이론화해서 고유의 민중신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세계 신학계에도 크게 기여했다. 성서의 출애굽전통과 예언자들의 전승 그리고 예수의 갈릴리 복음을 한국의 민중의 현장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서구신학들의 전통을 극복하고 생명력 있는 현장의 신학을 생산해 냈다. 따라서 한국의 민중신학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해방신학, 미국의 흑인신학, 유럽의 혁명신학 및 여성신학과 더불어 20세기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들을 제시했다.
둘째 세계교회협의회 제 10차 총회가 한국에서 열리게 된 것은 이번 총회의 주제와 관련해서 볼 때 매우 적절하고 또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번 총회의 주제 “정의와 평화”는 바로 오늘날 한국이 처한 매우 모순된 현실들을 잘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인들은 지금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동시에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먼저 평화문제, 남북한의 평화문제부터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 핏줄을 나눈 민족이면서도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서로 갈라진 후 60여 년 동안 불안한 휴전상태에서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 38선을 기점으로 13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동족에게 총 뿌리를 겨누고 있다. 동해와 서해 그리고 공중에서도 최신의 전투기와 함정들로 무장을 한 젊은이들이 24시간 감시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고, 호시탐탐 공격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그 뿐인가? 남북한 정부는 지난 60년 동안 정치적으로 적대시하고 외교무대에서 대결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남북대결의 결과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북한은 경제적 파탄에 직면해서 주민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남한은 국민들의 복지에 쓸 돈을 고가의 무기구입에 탕진하고 있다. 남한에서만 매년 30조이상의 군사비를 지출하는 대신 그 돈으로 교육비, 의료비, 복지비 등으로 사용했다면 우리는 대학까지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물론 서민들과 노인들에게 충분한 복지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정의의 문제, 사회경제적 정의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남북한의 대결로 생기는 불평화로 북한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남한사회에서는 사회적 경제적 불의가 판치고 있다. 1990년 소련해체와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 이후 세계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로 재편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개발 도상국가들은 다국적 기업과 국제금융자본의 먹이사슬로 전락했다. 이들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들은 미국의 주도하에 세계무역기구(WTO)를 개편해서 어느 나라에나 들어가 마구잡이로 투자하고 장사하여 이윤을 갈취해 간다. 이들은 약소국가들에게 압력을 넣어 노동법을 개정하여 비정규직을 양산함으로써 다국적 기업의 노동자들의 노임을 착취하고, 투기자본들을 들여보내 돈 장사(놀이)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의 추세에 편승한 한국의 재벌들도 국민경제를 망각하고 노동자들을 임의로 해고하고 저임금으로 부려먹으며 동시에 금융업에 진출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피 같은 이자를 빼앗아간다.
그 결과 1996년 김영삼 정부시절 신한국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비정규직법과 근로자파견법으로 한국의 노동자들은 삶의 한계선상으로 밀려났다. 가난해진 그들은 금융업과 사채업의 그물망에 걸려들어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현재 가계가 진 빚이 1000조에 달하며 그들은 국내외 부자들에게 매년 약 80조원을 이자로 빼앗긴다. 대학생들마저도 빚내야 공부하게 됨으로써 전 국민이 채무자로 전락했다. 한국사회는 양극화되어 부자들은 돈더미에 올라앉고 빈자들은 빚더미에 앉아 신음하고 있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전당으로 잡은 옷 위에 눕고,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신다.”(아모스 2:8). “가난한 사람이 경작한 밭에서는 많은 소출이 날 수도 있으나, 불의가 판을 치면 그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잠언 1:23).
이렇게 평화가 없고 불의가 판치는 오늘날 한국의 모순된 현실에서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열린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고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가르침에 굳게 서서 이 땅에 평화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WCC의 정신과 행동프로그램에 비추어 자신들을 성찰하고 갱신하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교회일치운동으로서 WCC 운동의 방향논쟁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하면 주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의 일치 혹은 협력운동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정의할 때 대체로 분열된 여러 교파들의 일치운동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들은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열된 교회(파)들”과 함께 “분열된 민족(인류)”들 사이의 화해와 일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치운동으로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초기부터 “일치”(Unity)라는 말을 놓고 두 가지 방향에서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한 갈등 징후는 이미 1948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창립총회에서부터 나타났다. 당시 이 창립총회에는 신학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입장의 두 인사가 주제 강사들 참석했다. 한 사람은 당시 미국국무장과 덜레스(Dulles)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위스의 저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였다. 이들은 모두 당시 상황을 “분열된 세계”와 “분열된 교회”로 인식하고 그 일치(통일)를 모색했지만 그 방향과 성격을 놓고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었다. 평신도 강사인 덜레스는 분열된 “교회들의 일치”를 생각한 반면, 칼 바르트는 오히려 분열된 교회들의 친교보다는 “분열된 진리들”의 일치를 염두에 두었다. 덜레스는 “실용주의적 현실주의”(pragmatic realism) 노선에서 교회들의 친교의 입장을 취했고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왕권통치”에 근거해서 복음진리와의 교회의 자기일치의 노선을 택했던 것이다. 칼 바르트는 나치 등과 같은 세상권력이나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기독교가 왜곡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생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분열”과 그로 인해서 생긴 “교회들 사이의 분열”(예를 들면 히틀러를 추종하던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와 본회퍼 중심의 “고백교회” 사이의 분열)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는 교회일치 운동은 결코 “교회들 사이의 무원칙한 타협운동”이 아니고. 교회가 성서에 나타난 진리로 돌아가 그 말씀을 바르게 증언하는 운동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된 WCC는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 총회까지 20여 년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타협적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노선”이 주도해왔다. 이 노선에서 영국 성공회의 평신도 신학자 올담(Ohldam)이 제시한 이른바 "책임사회론"”(Responsible Society)이 에큐메니칼 사회윤리학의 중심적 명제가 되었다. 이 이론은 1930년대 심각한 세계적 상황들. 미국의 경제공항과 독일의 나치의 등장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주의 등의 권력오용과 전체주의가 가져온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회”의 추구를 기독교 정신에 상응하는 책임사회로 상정했었다. 말하자면 책임사회란 인권이 존중되고 시민의 삶이 자유롭고, 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경제적 부의 적절한 분배가 가능한 구조들을 갖추어진 사회로 시민들이 이들을 위해 책임적으로 행동하는 사회가 될 때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냉전체제에서 생겨난 이데올로기 대결, 제1세계와 제3세계 두 양진영 간의 존속하는 경제적 종속관계, 새롭게 발흥한 세계 고등종교들 간의 갈등들을 배경으로 하고 WCC는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 등을 둘러싸고 제3세계국가들의 교회들은 이전의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적” 노선에 강력하게 도전한다. 이 도전에 따라 1966년 세계교회협이 주관한 “교회와 사회” 협의회와 그 이후 제3세계교회들의 성장과 에큐메니칼 운동 내에서 그 대표들의 발언권 강화는 불가피하게 WCC의 프로그램에서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노선보다는 해방신학적 민중 신학적 노선으로 강조점이 이동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에큐메니칼 운동은 “분열된 교회들의 일치, 혹은 친교와 연합운동” 보다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억압, 인권탄압, 제3세계의 빈곤, 경제적 착취와 경제정의, 즉 “분열된 세계의 와 해와 일치”에 더 역점을 두었다. 그렇지만 에큐메니칼 운동 내에서 실용주의적 노선을 택한 사람들이나 교회들은 여전이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노선에 따라서 경제개발, 과학기술, 타종교와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 문제 등을 병행해서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을 배경으로 해서 1970년대에 와서 두 진영 간의 타협안으로 제시된 에큐메니칼 운동의 사회 윤리적 도식은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로 수정되어 정리된다. .이 논제는 1975년 세계교회협의회의 나이로비 총회에서 얻어진 다양한 자극들에 기초해서 1976년 WCC 중앙위원회가 이후에 역점을 두고 실행할 프로그램으로 결정되었다. WCC 총무를 지낸 독일의 신학자 콘라드 라이저는 이 시기에 에큐메니칼 운동은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내지는 타협주의와 해방신학적 비타협주의 사이에서 “우유부단함”의 시기로 규정지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마침내 1980-90년대에 들어와서 에큐메니칼 사회윤리학의 도식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으로 나타났다. 이 도식에서 우선적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으로서 나타나는 불의한(양극화된)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응답으로서 화해되고 일치된 정의로운 세계의 추구가 세계교회협의회의 일차적 책임으로 인식되었다. 그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생기는 동서간의 “냉전체제”에서 생기는 불평화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겨나는 남반구와 북반구간의 “열전체제”로서의 세계적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적 불평화가 세계교회협의회 운동의 두 번째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질서의 보전은 오늘날의 핵시대의 위협과 과도한 경제개발로 인한 자연과 생태계 파괴에 직면하여 발생하는 경제와 환경(economy and ecology) 사이의 대립갈등 문제가 세계교회협의회의 마지막 과제로 상증된 것이다. 이 세 개의 과제들은 사실상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대립되었던 “실용주의적 현실주의 노선”의 타협주의와 해방신학-민중신학적 노선의 급진주의 사이의 온건한 타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론: 한국교회의 자기성찰과 갱신
이제는 WCC 한국총회에서 필자가 바라는 바들을 것을 결론삼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한국교회는 이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출발정신을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앞으로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초기 에큐메니칼 운동은 갈라진 교회들, 분열된 인류의 화해와 통합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이 운동은 앞서 칼 바르트가 지적한대로 갈라진 교회들의 “무원칙한 타협운동”만이 아니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일치운동은 교회들이나 교회지도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운동도 아니며 특히 한국 NCC 교회지도자들의 친교운동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순히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개하는 어떤 사회봉사사업도 아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교회의 일치운동이라고 할 때 무엇보다도 교회들이 그동안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이탈되었던 것에 대해 참회하고 다시 그리스도와 하나 됨 즉 그리스도의 진리와 일치되는 길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갱신운동이고 20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이 되어야 한다.
둘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역사적으로 교회가 세상의 정치적 권력들, 경제적 힘들, 권세 있는 인간들, 거대한 사건들, 이데올로기들의 노예가 되거나 그것들과 하나 되어 온 것에 대한 회개로부터 시작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하나가 되려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 점을 히틀러 정권에 굴복한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에 반대해서 들고 일어난 “고백교회” 총회에서 채택된바 있는 칼 바르트가 초안을 작성한 “바르멘 신학선언” 1항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경청해야 하고, 목숨을 걸고 신뢰하고 복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 복음 선포의 근원으로서 다른 사건들, 권력들, 인물들, 이론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한다는 왜곡되고 잘못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셋째 그동안 한국의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문제되던 무원칙한 회원교회들 사이의 “타협주의”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한국의 에큐메니칼운동이 그동안의 세계교회들의 재정적 지원의 중단으로 생기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원칙 없이 순복음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인 일이다. 당시 KNCC 회장직을 맡은 순복음교회 목사는 금란교회 김홍도의 개인비리에 대한 정부의 수사를 어처구니없게도 “종교탄압”이라고 KNCC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이러한 희비극을 연출함으로써 한국기독교회협의회는 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또 신뢰성을 상실했었다.
최근에는 부산총회를 앞두고 기독교적 신념과 신학적 소양이 부족한 KNCC 대표들이 한기총 대표들과 결탁해서 발표한 소위 공동선언문도 이러한 무원칙한 타협주의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는 1990년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 대회에서도 나타났었다. 이 모든 것들은 KNCC의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자들이 대교회들의 재정적 지원을 얻기 위한 잘못된 악습이다. KNCC는 보수적 한기총과 거기 속한 교회들이나 특정 대기업들 혹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얻기 위해서 원칙 없는 타협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위는 창세기에 나오는 배고픈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파는 것과 같은 몰지각한 행위다.(창세기 25:34). KNCC가 이러한 무원칙한 타협주의를 계속되다가는 결국 마귀와도 타협하게 될 것이다.(칼 바르트)
마지막으로 이번 부산 총회를 통해서 총회의 주제에서 설정한 정의와 평화의 길을 찾는데 우리 대표들이 총력을 다 해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불의와 함께 남북 분단으로 인한 불평화에 많은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에 진력함으로써 한국대표들이 “정의와 평화에 이르는 길”을 찾게 될 때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분열된 국민”의 통합과 함께 남북으로 “분열된 민족”의 통일을 가져오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그동안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성을 회복하고 그 기초 위에서 새로운 선교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사 32:7).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춘다.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본다. 주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이 산물을 낸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시편 85편).
이 글은 본지 편집고문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기독교사상 3월호에 실은 칼럼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