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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천 칼럼] 교회를 살리는 열정과 신학

이재천 목사·기장신학연구소 소장

▲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베리타스 DB
누구나 역사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 보다 나은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적인 역사관이 형성된 배경에는 근대정신, 즉 합리적인 (자연)과학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막스 베버가 근대정신의 특성이라고 지목했던 합리성은 인간의 사유 능력, 이성의 기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과학적 탐구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진보의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과학적인 연구 성과를 인간 사회에 적용한 진화론적 역사관에 의하면,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 또한 진보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의 방향을 예시하게 된 근대사회의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미래 사회의 현상에 대한 합리적 추론 작업이 일종의 유행처럼 널리 행해졌다. 그들이 내어 놓았던 미래적 예견 중에서 가장 공통된 내용은 ‘종교의 쇠퇴’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종교는 전근대 사회의식의 산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에서 종교의 소멸은 역사적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근대적인 종교관을 대표하는 인물이 어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89-1857)이다. 콩트는 프랑스 혁명 이후 무질서 상태에 처해있던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정신에 기초하여 사회를 재조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콩트는 당시의 기독교에게서 사회적 변혁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산물인 종교가 근대적인 인간 정신을 통합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 정신이 세 단계를 거쳐 진보해 왔다고 생각했다. 종교(신학)의 단계로부터, 과도기로써 철학(형이상학)의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실증주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보의 과정에서 종교(기독교)는 점차 소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콩트는 기독교의 소멸로 공백이 된 자리를 합리적인 종교인 ‘인류교’가 대체하게 되기를 희망했다.
 
칼 맑스(Karl Marx)는 종교를 소멸되어야 할 지배계급의 관념으로 이해했다. 역사적으로 각 시대의 지배 관념은 언제나 그 시대의 지배계급의 관념이었는데, 낡은 관념은 언제나 낡은 사회 체제와 조건이 붕괴하면서 더불어 해체되었다고 보았다. 공산사회의 등장은 전통적인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통적 관념에 대한 철저한 파괴를 의미한다. 맑스의 관점에서, 근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의 지배 관념은 기독교였으므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기독교의 소멸을 수반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로이트는 새로운 관점에서 종교의 점차적인 소멸을 주장했다. 그는 종교를 보편적인 강박 신경증적 증상으로 파악했다. 신경증적 강박 행위와 종교적인 의례 행위 사이에 공통점이 있으며, 종교의 형성 과정도 억압, 즉 본능적 충동의 단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리의 형태로 주어지는 종교적 관념들은 유아기의 원망에 기초한 환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 관념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며 절박한 원망의 실현인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종교는 인간을 심리적 유아 상태에 묶어 놓고, 집단 망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많은 사람을 신경증에서 구제하는데 성공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제한적인 현상일 뿐이다. 종교적 관념들은 이성이나 경험과 모순되기 때문에 결국 소멸될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종교적 환상의 위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종교적 교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세대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서구 문명사회가 종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한 ‘지성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정신을 통합해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사유방식,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구시대의 낡은 관념, 그리고 유아기의 억압과 의존감정에 근거한 신경증적 강박 현상 등, 종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일관하는 공통점이 있다. 종교는 인류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역사의 진보 과정에서 점차 소멸될 것이라는 예견이다.

오늘날 세계적인 지평에서 종교 현상을 살펴보면, 역사는 근대정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의 소멸이라는 방향과는 반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해 전에,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그동안 자신이 학문적인 오류를 범해왔다고 털어 놓았다. 버거는 자신도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처럼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필연적으로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에 공감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원주의의 확산이 전통적으로 당연시되던 종교적인 믿음과 가치를 점차 약화시킬 것이고, 세속주의와의 결합 또한 종교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의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어느 곳을 보아도, 오히려 과거보다 더 ‘종교적인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버거의 말처럼, 역사는 어느 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종교 현상의 측면에서 역사의 전개 방향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동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탈종교(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를 선언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탈세속화 사회(post-secular society)와 더불어 종교의 재흥기를 논하는 곳이 있다.
 
기독교의 영역에서 보면, 쇠퇴하는 교회가 있고, 반면에 성장하는 교회가 있다. 쇠퇴하는 교회로는 먼저 유럽 사회의 국가교회를 지목할 수 있다. 국가교회 체제에서 개체 교회의 생동력은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의 경우에 제도적인 틀을 잘 갖추고, 성서 해석과 신학의 전문성을 앞세우는 메인라인 교회는 오히려 쇠퇴하고 있다. 반면에 성장하는 교회는 대부분 제도적인 틀과 신학적 체계를 잘 갖추지 못한 빈약한 교회들이다.
 
틸리히의 분석에 의하면, ‘살아있는 생명력,’ 생동하는 기운이 신학적 체계에 사로잡히지 않은 교회는 성장한다. 틸리히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개신교 정신의 근저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회의 생동력은 개신교 전통의 역사적 구현이나, 심지어는 종교개혁 자체에로도 환원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정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상적으로 보면, 교회의 생동력은 개신교 신학이 발달한 주류 교회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자신을 신학자이기 이전에 교회의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존 캅(John B. Cobb, Jr.)는 최근의 책 『교회 다시 살리기』(Reclaiming the Church)에서 교회가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회적 열정의 소멸에 있다고 진단한다. 다른 한편, 캅은 21세기 미국 교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한 세기 전의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busch)를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라우센부쉬는 사회복음운동의 주창자이다. 그의 사회복음의 핵심에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자.’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에 대한 열정이 놓여있다. 라우센부쉬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진 교회는 죽어가는 교회이다. 캅은 라우센부쉬의 ‘신앙적 열정과 신학이 조화를 이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에서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낼 수 있는 근원적인 생명력을 발견하고자 했다.
 
열정이 없는 신학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지 못한다. 반면에 신학이 없는 열정은 교회를 병들게 한다. 오늘의 목회 현실은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에 기초한 신학을 요청하고 있다. 더글러스 오타티(Douglas F. Ottati)는 그의 책 『개혁적인 교회』 (Reforming Protestantism: Christian Commitment in Today's World)에서, 지구화 시대에 교회가 실현해야 할 우선적인 과제를 ‘일상에서의 거룩함의 실현’이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큰 문제와 씨름하다보면 일상의 문제를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윤리성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진정한 개혁을 가로막는 나태일 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거룩함을 실현하는 것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지구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파국적 현실을 살리려는 교회의 방식이다. 다른 한편, 영국의 기독교 윤리학자 던컨 포리스터 (Duncan B. Forrester)는 『기독교와 복지제도의 미래』 (Christianity and the Future of Welfare)에서 교회와 사회복지의 관계를 논하면서, 탈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하려면 교회만의 고유한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리스터는 국가 주도형 복지 체계는 몰락하고, 지역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복지 체계가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고 예견한다. 그러한 전환을 주도해 낼 수 있는 결정적인 가능성을 지닌 집단은 교회이다. 하지만 교회가 한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책임적인 비전’을 상실하지 않은 경우이다. 캅, 오타티, 그리고 포리스터,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들의 글은 한 결 같이 교회를 살리려면 교회다움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교회다움의 회복은 원래 교회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적인 생명력의 회복에서부터 비롯된다. 상대적 현실에 머물지만 절대적 비전을 상실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열정적인 책임 의식이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한다. 교회가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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