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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새 교황 프란치스코 선출을 보면서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2013년 3월 19일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의 수장으로서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추기경 베르꼴리오를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하고 그를 프란치스코로 명명했다. 그는 독일 출신이며 오랫동안 교황청 교리청장으로 있다가 교황이 되었던 베네딕트 16세가 건강상(?)의 이유로 조기 은퇴한 후 그의 후임으로 선출된 것이다. 새로운 교황 프란치스코는 유럽의 부유한 지역출신으로서 가톨릭의 낡은 전통과 교리체제의 수호자와 이단들의 심판자로 자처하며 그 체제에서 이탈했다고 생각되던 다수의 진보적이고 해방신학적 성직자들을 추방하고 억압했던 베네딕트 16세와는 달리 남미라고 하는 가난한 세계 출신이어서 그의 사상가 행태에 대해서 뭔가 기대되는 바가 있다. 지난 세기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군사 독재자들이 정치적 억압과 인권을 유린하고 있을 때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는 민중들을 위해서 투쟁하다 군부에 의해서 암살을 당했고 또 니카라과의 독재자 소모사의 학정에 저항하여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 어네스토 까르디날레(Ernesto Cardinale) 신부는 총을 들고 반군의 편이 되어 투쟁한바 있다. 새로 선출된 교황 베르꼴리오 추기경은 아르헨티나의 군사독재체제 하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고통당하던 시절 그들을 위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아시시의 성인 프랜시스의 삶과 행동을 본받아 칭호를 프란치스코로 정한 것을 보면 가난하고 고통 받던 사람들을 외면했던 전임자 라징거(Razinger) 추기경, 즉 베네딕트 II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의 신문들은 교황 취임식 이전부터 그가 보여준 일상적 삶에서의 평민적이고 소탈함을 여러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대주교 생활을 하면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든지 또는 식사도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고 한다. 교황선출행사(Conclave) 참석을 위해서 로마에 와서도 고급 호텔에 들지 않았고, 숙박비도 교황청에 떠넘기지 않았으며 교황청에서 제공하는 자동차 등 일체의 특권을 포기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교황 취임식에서도 전임교황처럼 자신을 교황이라고 부르지 않고 로마의 주교라고 칭함으로써 겸손을 표시했다. 사실상 5세기경 교황이라는 칭호가 나오기 전 초대교회 시절에는 4개 내지 5개의 대교구가 있어서 그 교구장들을 대주교로 불리었다. 서(방)로마에서는 로마의 대주교 그리고 동(방)로마에서는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등의 대주교들이 그들이다. 이들 가운데 동로마와 아프리카에 있던 3-4개의 대교구들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점령당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사실상 가톨릭교회는 로마대교구만 남게 되어서 그 후부터는 기독교하면 “로마 가톨릭교회”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따라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자신을 로마의 대주교로 칭한 것은 이 같은 올바른 역사인식에 근거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교황이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동방정교회의 대주교를 가톨릭교회가 1045년 파문하고 역사적 결별을 한지 1천년이 넘어서 자기의 취임식에 초청해서 만나고 화해 한 것도 잘한 일이다.
 
교황(papa, πἀππας)이라는 명칭은 사실상 동방교회에서 주교들과 같은 고위직 성직자들을 부르는 이름이었으나 6세기말부터는 로마의 주교들만이 배타적으로 사용했었다. 이 교황이라는 칭호는 레오(Leo) I세(440-461)에게 처음 주어졌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의 영주로서 위대한 정치적 수완과 함께 교회의 교사와 설교가로서 당시 로마교회의 수장의 위치를 확고하게 한 인물이다. 그는 신학적으로 자기가 그리스도의 대변자(vicarius Christi)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처했고 로마 교회의 수장이며 나아가서 교황 무오설까지를 제창한다. 로마의 주교가 교황이라는 칭호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당시 세계의 수도로서 로마의 특수한 위상과 함께 로마교회의 제단과 여타 다른 교회들을 앞장서서 이끌고 지원한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취임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로마의 특수한 지위와 위상을 포기하고 다른 많은 주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기를 원했고 따라서 이전의 교황들과는 달리 붉은 색으로 특별히 제작한 의상을 입지 않고 평범한 천으로 만든 희색의 예복을 입었고 또 요란한 교황의 관도 쓰지 않았고 금반지나 금 십자가 대신 은반지를 끼고 철 십자가를 목에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교황은 이전 교황들이 암살을 두려워해서 타던 방탄유리로 무장된 전용차를 타지 않고 평범한 무개차를 타고 군중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했고 아이들에게도 입을 맞추며 축복했다고 한다. 성서에 나타난 나사렛 촌구석의 목수의 아들 예수나 그의 대선배였던 갈릴리 어부 베드로의 모습을 생각할 때 새로운 교황의 행태는 지극히 당연한 갓이 아닐까?
 
60년대 장준하선생이 발행하던 잡지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과 한국가톨릭교회 저명한 윤형중 주교 사이에 기독교의 본질, 참된 모습을 놓고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 때 함석헌 선생은 가톨릭교회, 특히 로마의 교황과 교황청이야말로 기독교 이단들 중에서 가장 큰 이단이라고 공격을 퍼부은 일이 있었다. 필자도 가톨릭 예전에서 교황이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금실 등으로 장식한 이상한 모자에다가 화려하게 장식한 예복을 차려 입고, 손에는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지팡이를 들고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성서에서 본 예수나 그의 제자였던 베드로의 모습과는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도 로마를 구경하고 바티칸 성당에 들려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이전 교황들이 들고 다니다가 모아둔 온갖 귀금속으로 장식한 지팡이들을 보고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낀 적이 있다. 오늘날 예수가 갑자기 재림해서 지금의 교황청이 있는 베드로 성당과 교황 및 고위 성직자들인 추기경들을 만나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재자면 전쟁범죄자인 아돌프 히틀러와 당시 교황이 비밀협약을 맺고 나서 그의 폭정과 만행에 침묵함으로써 동조했던 가톨릭교회는 여기에 대한 공식적인 죄책 없이 지내왔었다. 이후 1960년대 교황 요한 23세가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여 가톨릭교회에 대한 자기성찰과 개혁의 방향을 논의한 바 있다. 이 문서에서 가톨릭교회는 당시 동서 이데올로기적 냉전체제 하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이 갈라서서 싸울 때 명백하게 자본주의를 편들기로 했다. 비록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선언하고 동시에 “사회정의”를 사회선교의 모토로 내세웠지만 사회윤리에서는 이른바 “보완성원리”(subsidiary theory) 아니 “强者獨食의 원리”를 내세워서 성과나 업적을 좀 더 많이 낼 수 있는 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는 자본주의 원리를 받아들인다. 이는 마태복음 20장 1-16절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원리”(Principle of the Kingdom of God), 먼저 와서 오래 일한 사람이나 나중에 와서 한 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노임을 받는 세상, 포도밭 주인이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의 원리 즉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 20:16)라는 원리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1970-80년대 동서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세력들의 적극적 지원으로 구 사회주의권인 폴란드 출신의 보수적 교황이 바오로 II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까지 교황청은 권력투쟁과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불리기까지 했었다. 바오로 II세 이전의 교황들이 거의 매년 선출되었는데 이와 함께 교황암살설에다 공금유용설이 끊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교황 바오로 II세는 1981년 그의 반대자에게 피격당하기까지 했고 그 결과 그 후 그는 성직자답지 않게 방탄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는 실추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으며 그가 가는 곳에는 많은 환영객들이 모여들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집회들도 많았다. 이것은 그동안 로마 가톨릭교회가 교회의 본래의 사명인 그리스도의 제자의 직무를 외면하고 세속적 권력과 돈과 명예의 족쇄에 갇혀서 자기만족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취임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의 취임연설에서 “모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로마의 주교인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성직자들의 사목(司牧)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 특히 성직자들이 일차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이며 특별한 것이 아니다. 로마 교황이 뭔가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데 신문들이 대서특필하는 것은 그동안 실추된 가톨릭교회에서도 사람들은 뭔가 희망적인 것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특히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자본주의 경제체제, 금융자본주의 체제, 1/99%의 체제 하에서 가톨릭교회나 개신교회 모두가 목회(사목)활동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의 1%의 사람들이 모든 재산의 90%이상을 차지하고 그들에게 빚진 사람들은 막대한 이자를 갚아야 함으로써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거지 나사로가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사로들이 부유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고 - 심지어 유럽의 부유하고 문명화된 국가들인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지중해의 적은 섬나라인 키프로스까지 - 그 나라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새로운 교황이 존경하는 이탈리아의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으나 그는 마태복음 19:16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와 부자청년의 대담기사를 읽고 나서 참회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청빈하게 예수의 길을 따르기 시작했었다. 새로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나 가톨릭교회나 그리고 예수를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고백하는 개신교회들 모두가 우상숭배와 물질만능주의로 타락한 오늘날의 교회들을 갱신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을 새롭게 걸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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