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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규태 칼럼] 훈장과 상을 탐하는 자들의 심리학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독일에 살 때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Gymnasium)를 졸업한다기에 아내와 같이 학교에 갔다. 졸업식이 열리는 강당으로 들어가니 건물관리인(사찰)의 지시에 따라 식장에 들어오는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같이 앉게 했다. 졸업생과 학부모 좌석이 따로 준비되어 있는 한국에서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옆자리에 같이 앉게 하는 것이 색달랐다. 시간이 되니 학생들이 배우들처럼 분장을 하고 무대에 나와서 짧은 토막극들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장난스런 말투라서 단막극의 내용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예쁜 여학생이 남자선생님에게 애교를 부려서 좋은 점수를 따내는 따위의 이야기를 풍자한 것이란다.

학생들의 연극이 끝나자 그 학교 교장이 연단에 올라와서 연설을 시작했다. 그 보수적인 교장의 장광설을 익히 알고 있던 졸업생들은 그 연설을 그만두거나 짧게 해달라고 휘파람을 불어대며 소리를 친다. 그러자 교장은 이번에 자기가 은퇴를 하니 이번이 자기의 마지막 연설이 될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좀 참아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의 연설주제는 “오늘날 독일에서의 통치의 문제”였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오늘날 민주화된 독일 사회에서 정치가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서 주도되지 못하고 각기 다른 집단들 간의 이해관계들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이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간간히 휘파람을 불어대며 여기저기서 “나치다”, 혹은 “신 나치다”라는 야유의 소리도 들렸다. 보수적 가톨릭신자인 그는 독일 사회가 좀 더 법과 질서가 확립된 사회가 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연설이 끝나고 나서 그는 갑자기 두 학생의 이름을 불러서 자기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첫 아이는 키가 작고 외모가 다소 왜소하며 두꺼운 안경을 쓴 학생이었다. 그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학생들은 또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어대며 “공부벌레”(Streber)라고 소리친다. Streber라는 독일 말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란 뜻인데 부정적으로는 공부벌레로 쓰이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뜻 밖에도 교장은 우리 아들을 호명하고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아들놈은 어리둥절했고 쑥스러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거의 모든 학생들이 휘파람을 불어대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가 앞으로 나가자 학생들은 더욱더 큰 소리로 놀려댄다. 그런데 교장은 공부를 잘한 이 두 학생에게 자기가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할하면서 책을 한권씩 주었다. 키가 큰 우리 아들은 책을 받아 학생들에게 높이 들어 보이면서 콘 소리로 말했다. “요리책이다. 우리 집 오면 요리 해 줄께!” 그 교장은 어디서 얻은 요리책을 그들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이것으로 졸업식은 끝이다. 졸업장이나 상장수여도 없고 교장의 훈시나 학생들의 답사도 없는 매우 간단하고 좀 싱거운 고등학교졸업식이다. 식이 끝나자 다시 건물관리인이 나타나서 큰 소리로 말한다. 헤닝거 비어회사가 비어와 함께 소시지를 선물하려고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으니 학부모들과 졸업생들은 거기에 가서 점심으로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운동장으로 내려오니 화려하게 장식한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비어 통을 실은 마차가 서 있고 그 옆에서 젊은이들이 소시지를 구어서 나누어주고 있었다. 비어 회사는 앞으로 자기들의 고객이 될 졸업생들에게 축하행사로서 비어와 소시지를 대접하는 것이다. 참 그럴듯한 상술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도 배불리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아들에게 “왜 네가 선물(상)을 받을 때 학생들이 그렇게 야유랄까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쑥스러운 듯 독일에서는 공부 잘한다고 상을 주지 않는데, 상을 받았고 그것도 매우 보수적인 교장에게 상을 받으니까 학생들이 놀리느라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부 잘하는 것은 머리가 좋아서 잘하는 것인데 구태여 그런 사람에게 상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서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교무처장, 학생처장이라는 보직을 잠깐 동안씩 맡아서 봉사했다. 그런데 학생처장을 맡은 학기에 장학생선발과 장학금 수여가 나의 소관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관례를 살펴보니 장학금은 성적우수학생 그리고 총학생회 임원들에게 주로 지급되었었다. 나는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로 하고 새로운 방침을 세웠다. 첫째 성적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 그리고 둘째 학생회장과 임원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주로 장학금을 주기로 결정하고 그런 학생들은 그것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게 했다. 생활보호대상자의 자녀들은 그 증명서를 첨부하게 하고 월급이 적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월급명세서를 제출하게 해서 장학생들을 선발했다.

그랬더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과 학생회 임원들이 찾아와서 항의를 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득을 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태어날 때 우수한 두뇌를 부모님에게 물려받았으니 축복을 받았고 그런 학생들은 대개는 집안형편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 축복을 받은 학생들은 가정형편도 어렵고 머리도 나빠서 공부도 못하는 학생들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많은 학생들의 지지와 성원 가운데 학생회장 등 임원으로 활동하는 학생들은 명예를 차지했는데 거기에다 돈(장학금)까지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것이니까 장학금은 포기해야 마땅하다는 설득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잘 이해해 주었고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내가 근무하던 대학에서는 사회적 약자중심으로 장학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졸업식 때 성적우수학생들에게 주는 상도 폐지하려고 했으나 교수들의 반대로 실패했고 그 대신 사회봉사상을 신설하여 시상하고 있다.

필자도 학교 다닐 때 가끔 성적우수상과 같은 상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집안 어른들에게 내놓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상을 받는다는 자랑스럽기 보다는 좀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머리가 좋아서 성적을 잘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기분 좋은 일인데 왜 상이나 돈까지 받아야 하는가? 머리 나쁜 학생은 공부 잘 못하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상까지 받지 못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그리고 장학금은 어디까지나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이 받아서 공부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고 나아가서 사회적으로 보다 낳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초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성적우수상 같은 것을 주지 않는다. 머리가 좋아서 성적을 잘 내는 학생들에게 우수상을 주는 것은 후진적 사고의 산물이다.

내가 알던 사람들 가운데 꽤나 유명한 인사들 가운데는 상이나 훈장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아마 이런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은 이런 저런 상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대중씨는 상들 가운데 최고로 알려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으니 아마도 가장 만족해했을 것이다. 또 여성법률가로서 많은 활동을 해왔던 분도 상을 그렇게도 좋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분은 독일의 어느 적은 도시에 있는 적은 교회가 주는 상을 어떻게 알고 그 상을 받으러 독일까지 온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유학생 시절 나의 작고 낡은 차로 그 분을 모시고 억수같이 비가 오는 가운데 무려 200킬로나 달려 시상식장을 찾아갔던 일이 기억난다. 그러나 이런 상이나 훈장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상이나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들도 많다. 왜 그런지 나는 상을 타려는 사람보다 상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더 존경이 간다. 왜냐하면 상을 받을만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그와 같은 재능을 타고 났거나 그런 조건을 물려받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재능을 타고났거나 그런 능력을 가졌던 사람이 훌륭한 일을 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왜 우리는 그들에게 상까지 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노벨상을 거절했고 이화여대 사회학과교수였고 여성운동가였던 이효재씨는 한국정부가 수여하겠다고 하는 훈장을 사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상이나 명예를 가장 좋아하는 집단들 가운데는 종교의 성직자들도 속해 있는 것 같다. 한국이나 세계교회 발전에 기여했던 강원용목사나 한경직 목사는 큰 상들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그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만한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70-90년대 한국의 개신교회들 가운데서 소위 가짜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들로 인해서 큰 소동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미국에는 다수의 엉터리 신학교들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손쉽게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어떤 신학교들은 일정한 몇 백 불만 지불하면 원하는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짜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들은 자기 교회에서 많은 친지들과 교인들을 초청해 놓고 학위취득 축하예배를 드리고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는 설교할 때는 목사의 가운이 아니라 박사가운을 자랑스럽게 입고 강단에 서서 설교한다. 최근에 와서 강남에 있는 크고 유명한 사랑의 교회 오목사란 사람이 남아프리카에서 받은 박사논문이 남의 것을 표절했다고 해서 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왜 목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목사칭호를 하찮게 여기고 실력도 없으면서 가짜 박사 혹은 표절박사 학위를 얻으려고 하는가? 학자가 아닌 성직자로서 목사의 타이틀이면 족하지 왜 박사학위를 얻으려고 하는가? 정말 웃기는 일은 7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온 이름 없는 대학의 총장이 세종호텔에 묵으면서 300-500망원만 내면 한의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1주일 동안에 약 5억 원을 벌어가지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왜 미국에 있는 엉터리 한의과대학 총장이 한의학의 본산지에 와서 거액을 받고 엉터리 박사학위증을 팔고 다니는가? 가끔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금과 은으로 장식한 학위증명서나 연수증명서 같은 것들을 환자들이 대기하는 방에 가득히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그 의사에게 별로 신뢰를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웬일인가?

한국 성직자들 가운데는 쓸데없는 허위의식이랄까 명예욕이랄까 하는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성직자도 배우들만큼은 아니지만 인기직업군에 들어간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늘 자기의 인기관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차를 타도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차를 몰고 다니려고 한다. 그런 큰 차를 타고 다니면 뭔가 성공한 목회자로 생각하는 풍토가 한국에는 존재한다.

허영심으로 말하면 여성들은 더하다. 그들은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이른바 명품 옷을 입거나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고 싶어 한다. 그 허영심이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부도덕한 일까지 한다. 또 그런 허영심을 이용하여 중국 등지에서 가짜 명품들을 만들어다 그들에게 비싸게 판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명품회사를 살찌운 것은 1970-90년대는 일본여성들의 허영심이 그리고 80-2000년대까지는 한국여성들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국여성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매년 50-100%의 제품들을 더 생산해야만 아시아 여성들의 수요에 응할 수 있다고 했다.

몇 일전 이명박 대통령과 그 부인은 무궁화훈장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자기가 자기에게 훈장을 수여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 뿐만 아니라 그 훈장을 황금으로 제작하는 데만 개당 4천 5백만 원이 든다고 하니 그의 부인 것까지 합하면 거의 1억 원이나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대통령은 최고의 직위에 올라서 권력과 금력 그리고 명예욕을 다 누린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비싼 훈장을 만들어서 자기가 스스로에게 수여해야 했는가? 그리고 그의 아내는 지난 5년 동안 무엇을 했다고 대통령이 받는 것과 동일한 훈장을 받았는가? 부유한 나라 독일 수상 메르켈이 받는 월급 2400만원보다 거의 8배나 되는 1억9천만 원을 받는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무엇이 부족해서 그 비싼 훈장을 받아야 하는가? 어려운 처지에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그나 그의 아내 그리고 형님과 가족의 탐욕은 너무나 지나치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는 남에게 자선을 베풀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할 때 위선자들(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사람들 앞에서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유대교의 세 가지 경건행위; 토비토 12:9).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네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마태 6:2). 그래서 예수는 자선을 베풀 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고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서 남의 눈에 띠지 않게 조용히 하고 또 금식할 때도 남들 앞에서 금식한 티를 내지 말 것을 권했다. 성서에 보면 그렇게 남들 앞에서 자기 업적을 과시하는 행위들, 즉 훈장이나 상을 통해서 자기 공로를 과시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상을 다 받았기 때문에 종말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받을 상이 없다고 했다.

이러한 상이나 훈장은 세상에서는 업적주의나 성과주의를 가지고 대결하던 동서냉전체제 시절에 소련이나 미국 등에서 남발되었었다. 미국이나 소련은 국가적으로 노력영웅들을 만들어 상이나 훈장을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특히 군인들에게 애국심과 충성을 강요했었다. 소련 군인들이나 미국 군인들은 전쟁과 살상과 파괴의 공로로 가슴에 훈장들을 가득 달고 영웅처럼 거리를 행진했고 바보 같은 국민들은 거기에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었다. 지금도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북한에서는 가슴에 무거운 훈장들을 가득 단 노병들이 사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와는 다르지만 요즘 남한에서도 자본주의적 업적사회가 되어 강요된 공로를 향한 훈장과 상장이 점차 범람해 간다. 업적주의와 성과주의가 판치지 않고 상이나 훈장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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