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루셔니스트>의 아이젠하임은 특별한 마술사다. 세계를 돌며 각종 마술지식을 습득한 그는, 자신의 고향인 비엔나로 돌아와 자신을 마술사(magician)가 아닌 환영술사(illusionist)라고 소개한다. 그의 마술들은 과연 새롭고 기발한 것들이었다. 그는 관객 모두의 열띤 갈채를 받으며 한순간에 비엔나의 유명인사가 된다. 마술은 어디까지나 트릭을 내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차 그가 초능력이나 여타의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에 이른다.
그의 유명세는 이내 그를 어릴 적 연인이었던 소피 공녀와 만나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레오폴드 황태자와 정략적으로 약혼한 사이였다. 밀회를 거듭하던 그들은 레오폴드 황태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트릭을 만든다. 의문의 살인을 당한 소피 공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아이젠하임은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마술을 선보인다. 소피 공녀를 불러냈을 때, 관객들은 앞다투어 그녀에게 소리쳐 묻는다. “누가 당신을 죽였나요?”
우리가 보는 것은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꾸며진 허구인가? 아이젠하임은 자신의 마술을 “분명한 속임수”라며 못박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고, 대중에게 아이젠하임의 마술은 이미 진실이었다. 그들은 공녀의 환영을 진실로 믿고, 또 다른 미스테리였던 공녀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확인하려 한다.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한 장면 ⓒ<일루셔니스트> 스틸컷. |
오늘날이었다면, 우리는 영화의 대중들처럼 마술에 쉽게 현혹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환상의 힘은, 그것이 허구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진다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보는 세계를 취향껏 짜맞추는 오류를 범한다. 그들에게 아이젠하임은 신비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반면, 황태자는 권력욕과 여성편력이 심한 부정적인 인물이었다. 여론은 황태자를 살인자로 몰아갔고, 황태자는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오, 그러나 우리는 아이젠하임을 욕할 수만은 없다. 그는 정략적 결혼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의 연인을 구해낸 로맨티스트였으며, 훌륭한 엔터테이너였고, 제도권의 권력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자였다. 마지막까지 아이젠하임을 의심했었던 울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들(황태자)은 권모술수의 달인이오. 이 세상에 저들을 속여넘길 트릭은 없소.” 어쩌면, 대중들은 아이젠하임의 마술을 통해 황태자에게 저항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 있었던 ‘타진요’ 사건과 같이 우리 사회 내 각종 진실 요구의 여론은 가히 광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먼저 진실 요구의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살펴보는 지혜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트릭 속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 트릭을 이용할지, 트릭에 넘어갈지는 우리의 몫인 것이다.
글/ 이요셉(연세대 신과대 4학년)·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