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박사가 소설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토대로 ‘소설로 찾는 영성 순례’ 첫 강연에 나섰다. ⓒ양화진 문화원 제공 |
<레미제라블>이 기독교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면 무엇일까? 시대의 지성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의 '바리케이트' 그리고 그 너머 이야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28일 오후 양화진 문화원의 목요강좌 ‘소설로 찾는 영성 순례’ 첫 강연에서 이 박사는 소설 <레미제라블>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 광적인 열풍을 불러온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한 평론으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갔다.
특히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한 이 박사는 ‘바리케이트’가 주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곱씹었다. 이 박사는 "(영화 속에 나오는)가난한 사람들의 가구로 만들어진 바리케이트는 가진 자들이 아닌, 빈자들의 성을 말해주고 있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서진 집기를 던져 바리케이트를 만드는 이 자체가 그 당시의 민중들, 그 당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으나 자기 가재도구, 집기 등을 내던짐으로써 (권력에)투쟁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장면 앞에 사람들이 광적인 갈채를 보내는 심리에 대해서는 "예술이란 마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권력에 항거하는 장면에)거기에 완전히 도취되어서 박수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도 그 갈채를 뒷받침하는 주요 요소로 꼽힌 당대 지식인(볼테르, 루소 등)들이 외친 ‘자유’ ‘평등’ ‘박애’라는 구호는 "모두 엉터리"라는 비평을 이어갔다.
이 박사에 따르면, 당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가 보편화 되어 있었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작품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거지들, 양아치들이 전멸하던 당시 벌써 루소, 볼테르와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알리고 싶어했고, 이 폭동이 지식인들의 혁명이 아닌 학생들, 거지들, 양아치들 즉, 사회 내 인간 취급을 못받는 하류 중의 하류인 빈자들이 사회를 개혁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의 시점에서 영화를 폭넓게 이해해야 하나 각자 "자신을 투영시켜 영화를 보기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위고가 ‘혁명’의 상징인 바리케이트 보다 ‘사랑’의 상징인 은촛대를 클로즈업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발장이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때 코제트가 찾아와 ‘신부를 부를까요?’라 묻지만 장발장이 필요없다며 자신이 가석방된 죄수였을 당시 신부가 내준 촛대를 가리켜 ‘저 빛이 나를 구제해 줬다’고 말한 부분을 재확인하며 이 박사는 "이것이 명명백백한 기독교적 메시지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항거하는 거리의 학생들 ⓒ<레미제라블> 스틸컷 |
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두가 혁명만을 인정할 뿐 이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해석해낸 사람을 보지 못했다"며 "장발장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해 살았던 인물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혁명 이상의 사랑이 없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 그는 또 "오늘날 교회는 빵을 만들어주겠다거나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해주겠다는 등 엉뚱한 걸 믿는 경우가 많다"며 "인간이 혁명을 해서 낙원을 만들 수 있다면, 예수께서 사탄이 이 모든 땅을 주겠다고 했을 때 왜 받지 않으셨겠냐"고 반문했다.
‘혁명’이 불러오는 복수극에 대한 문제점도 드러냈다. 루이 16세에 대한 재판이 진행될 당시 루이 16세는 변론의 자리에 서서 "내 죄가 무엇이오"라고 물으니 재판장을 둘러싼 혁명가들은 그를 향해 "왕이기에 죄"라는 죄목 아닌 죄목을 달아 사형을 집행한 바 있다. 이 박사는 "어떤 사람의 실존을 놓고 볼 때 완전히 악하기만한가"라고 물으며 "만약 예수님이라면 간음한 여인을 용서했듯이 그도 용서했을 것"이란 견해를 내놓았다. 세상에는 순수선도 순수악도 없고, 단 ‘용서’하고, ‘사랑’할 책임만 있는 인간들만 있다는 얘기였다.
이 박사는 "마지막 장면의 바리케이트 노래를 들으면 실제로 피가 끓는다"며 "이처럼 예술의 힘은 잘못하면 이성을 잃게 만드는데 믿는 사람들이 항상 그런 힘이 좋은 쪽으로 가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광신자들이라는 말을 듣거나 마귀가 유혹하기 딱 좋은 이가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기독교도 감성적으로 영성이나 힐링만 강조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이성적으로만 접근할 경우에는 NGO처럼 변질돼 소금의 맛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바리케이트’라는 혁명의 상징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현존 스타일에 대한 분석과 함께 기독교적 ‘사랑’의 메시지를 끄집어 냈다. 이 박사는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자유·평등·박애(사랑)였는데, 자유와 평등의 모순과 대립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융합시켜야 한다"면서 "유럽은 이 ‘박애’를 잘못 해석해 갈라서고 죽이고 냉전을 일으켰지만, 기독교의 메시지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자유와 평등을 통합시켜 두 세력을 하나가 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우리나라 현실에 접목시킨 그는 "자유경쟁 세력(산업화)과 평등 세력(민주화)가 어딜 가든 충돌하고 있는데, 이를 통합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며, 이를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28일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선교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강좌는 ‘<레미제라블>, 혁명이냐 사랑이냐’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이 박사는 올해 4차례에 걸쳐 ‘소설로 찾는 영성 순례’의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