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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본회퍼 68주기를 맞이하여: 그가 생각한 교회상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1. 옥중에서 본회퍼를 사로잡던 생각

2013년 4월 9일은 히틀러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처형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하다가 살해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남미의 아르헨티나에서 군부독재폭정에 저항하다가 교회 안에서 살해당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와 더불어 영국의 성공회에 의해서 현대의 순교자와 성인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이들 세 사람의 성직자들은 20세기라고 하는 끔찍한 전쟁과 더불어 야만적인 인권탄압의 시대를 몸소 성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고 죽어간 순교자며 동시에 성인이었다. 오늘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여 동서냉전체제는 붕괴되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제체제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남북열전이 전개됨으로써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더욱더 고통에 신음하는 때에 우리는 다시금 불의에 저항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한 본회퍼를 회상하게 된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독일 정보국에 고위 장교로 근무하던 자기 여동생의 남편인 매부 한스 도나니(Hans Dohnanyi) 등과 결부된 히틀러 암살단에가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1943년 4월 5일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처형되기까지 24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는 전쟁 말기인 1945년 2월 7일 연합군의 공습이 심한 베를린의 제국형무소로부터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시골 마을 플뢰센뷔르르크 수용소로 이송되어 다수의 러시아 등 동구라파 전쟁포로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는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날자가 같은 해 5월 8일이었으므로 한 달만 옥중에서 살아남았으면 석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신실한 신앙인이며 천재적인 신학자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가 만일 감옥에서 석방되었다면 그는 그가 옥중에서 제시했던 많은 교회적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명쾌하고도 깊은 해답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곧 석방되리라는 희망 가운데 전쟁이 끝나면 독일교회가 걸어 가야할 길들을 모색하는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면 옥중에서 본회퍼를 사로잡고 있었던 문제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독일 교회는 제도와 관습에 사로잡혀서 자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상항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우선 본회퍼가 고민한 문제는 종교개혁 이후 신앙 고백적 그리스도인들 즉 정통주의 교리체계에만 매달려있던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의 안이한 생각, 즉 전통적 교회의 제도와 교리만을 유지 보전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새롭게 일깨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른바 “독일적 그리스도인들”(Deutschen Christen)로서 권력을 불법적으로 탈취한 독재자 히틀러를 독일을 구원할 미시야로 추앙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쳤던 사람들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당시의 계몽주의적 사조에 물들어서 기독교신앙을 심리학적 종교성(Schleiermacher)으로 해석하거나 기독교를 도덕적 정신의 함양(Ritschl)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생각했던 과학주의(Rohde)로 해석했던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인본주의적 사고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들을 가리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적 신앙인들이라고 칭했다.

마지막으로는 당시 새롭게 발흥하던 부르주아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고통당하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들고 일어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운동을 동터오는 하나님 나라의 여명으로 받아들였던 종교사회주의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이 본회퍼의 관심사였다.

2. 기도하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

이러한 독일 교회의 왜곡된 현실에서 본회퍼목사는 그리스도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1944년 4월 30일 그러니까 본회퍼가 1945년 4월 9일 처형당하기 약 1년 전에 감옥 속에서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였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라고 한다면 본회퍼목사가 고백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그리스도와 그의 정신에서 이탈된 당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향해서 그의 잘못들을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히틀러를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고 그리고 경제세력인 자본주의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않고 우리가 오직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고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물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출발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자신들을 뒤돌아보는데서 출발한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에 대한 죄책고백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세월 중, 마치 그것이 자기목적인 것처럼 오직 자기보존을 위해서만 싸워왔던 우리들의 교회는 모든 사람과 세계를 위한 화해와 구원의 말씀의 담지자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오늘날 오직 두 가지에서만 성립될 것이다. 즉 기도하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기독교적 사안들에서 생각하는 것, 말하고 행동하는 것, 교회를 조직 운영하는 것 모두에서 이러한 기도하는 것, 정의를 행하는 것에서 새롭게 생겨나야 한다.”(WEN S.435).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기도하는 것과 사람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회퍼의 이 말은 1944년 5월 옥중에 있었던 본회퍼가 친구 베트게 부부에게 주어진 그들의 아들의 유아세례의 날을 기하여 써 보냈던 편지중의 한 구절입니다. 

그렇다면 본회퍼가 한편에서는 기도라는 명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종교적으로’ 영혼의 구원의 구원만을 중시하고 다른 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사회)정의를 위한 정치적 사회적 행동과 함여의 문제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본회퍼의 ‘기도하는 것과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1944년4월30일 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쓴 편지의 내용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자기 자신을 종교적으로 특권을 가진 자로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전적으로 이 세상에 속한 자로서 어떻게 우리는 교회, 즉 소명 받은 자로 살 수 있는가?”(WEN 404면).

본회퍼에게서 기도하는 것을 단지 ‘종교적’이라는 말로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한편에서는 형이상학적으로, 다른 편에서는 개인주의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한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여 종교적 인간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단지 영혼의 구원만을 얻기 위해서 하는 은밀한 종교행위로 생각했다. 그것을 본회퍼는 비성서적인 것으로서 이해하고 부인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영혼의 구원에 대한 말씀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도 지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와 그것의 실현인 정의야말로 모든 것의 중심점이다. 성서에 마태복음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중심적 사명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 성서에 보면 개인주의적 영혼구원이나 천당에 가는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정의로운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고백은 개인이 죽어서 역사 저편에 있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세우시고자 하는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본회퍼가 쓴 일련의 편지들 가운데 베트게에게 “잠언 24:11-12절을 읽어보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너는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 주고, 살해될 사람을 돕는 데 인색하지 말라. 너는 그것이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겠지만,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께서 어찌 너의 마음을 모르시겠느냐?”(잠언 24:11-12). 본회퍼는 이 말씀으로 폴란드 등 동구라파의 강제수용소에로 유대인들이 강제로 이송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기도한다는 것은 본회퍼에게 있어서 경건한 도피가 되는 형이상학적 개인주의적 종교행위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기도하는 것은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대응하여 ‘사람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과 불가분리의 것인 것이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상의 생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이것이 회개(메타노이아)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곤궁이나 궁핍의 문제, 개인적 죄나 불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이사야서 53장에 나타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메시아 사건이 오늘날 성취된다고 하는 메시아적 사건에 자기가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본회퍼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1932년의 강연에서는 이미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요청하는 기도는 불안한 영혼이 스스로의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난을 지고 투쟁하는 이 세상 안의 교회의 기도이다....... 하나님이 내 영혼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서(=지상에서) 자신의 왕국을 세워주시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기도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과 사람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의 콘텍스트로서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생각해야 할, 1944년 6월에 옥중에서 기록하고(비밀리에 약혼자 마리아의 손에 전해진) “십계명의 첫째 판”의 끝이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로 마감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초고는 미완으로 끝났으나 십계명의 하나하나의 계명에 ‘주의 기도’의 하나하나의 기도가 대응하는 구상 아래 씌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련에서 ‘기도하는 것과 사람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놓는다면 주의 기도를 기도하는 교회는 사람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문제가 본회퍼가 쓴 ‘어느 책의 초안’에서도 나타나 있고, 그 제2장에서 전개될 테마는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란 “타자를 위한 존재”라는 것이고, 그 제3장에서 전개될 테마는 “교회는 타자를 위해서 존재할 때만이 교회이다”라는 명제가 제시되어 있다.

결론

우리는 당시의 이러한 본회퍼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의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살펴보자.

한편에서는 한국에서 정통주의자들, 혹은 근본주의자들로 자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교리체제와 제도의 수호에만 몰두하면서 그것들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불의한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들에 눈을 감거나 아니면 그들과 결탁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성직자들과 거기에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사독재자들이나 오늘날도 현재의 정치적 세력들에게 충성을 하면서 자기의 교회세력을 유지확장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예를 들면 한국기독교총연맹에 속한 교회들이나 성직자들의 사고나 행태가 여기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과거에는 군사독재세력들을 지지하고 오늘날에는 보수적 정치세력에게 투표하고 지지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조찬기도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는 예배와 설교를 통해서 자기들의 종교적 권력을 강화하고 그리스도교정신과는 배립되는 특권세력으로 등장하려고 한다.

정통주의적 장로교회에 속하는 김영삼 대통령은 장로로서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군사반란수괴들을 처단함으로써 정치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한 몫을 했지만 동시에 그는 1996년 12월 26일 당시 한나라당과 재벌들의 사주를 받아 성탄절 다음날 비정규직법과 노동자파견법을 날치기 통과시킴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인 노동자들을 배반하고 재벌들을 지원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해고 하고 그들의 노임을 마음대로 깎아버리는 불의에 동참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재벌들에게는 엄청난 폭리를 챙겨주고 가난한 노동자들을 빚더미에 앉게 했다. 그렇게 하자 가톨릭 신자인 김대중 대통령은 노동자들에게 카드를 나누어주어 그로 인해서 다수의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친재벌주의자인 이명박 장로에게 와서는 서민들의 가계 빚이 1천조에 달했고 가난해서 빚진 자들이 1년에 부자들에게 갚아야 할 이자만 70-80조원에 달했다. 지금은 대학생들마저 빚을 지고 그들은 연이자 7%씩을 부자들의 주머니에 넣어주고 있다. 한국은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을 지원하는 세계에서도 가장 불의한 경제체제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그들은 나아가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인 노동자들을 수탈하여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오만한 경제인들 즉 대재벌들을 감싸고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얻어먹으려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다른 한편 신앙의 경건주의를 앞세우면서 온갖 형태의 샤머니즘적 방법을 동원하여 무지한 대중들을 현혹하여 교세를 확장하려고 하는 부흥회적 형태의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자신들의 인간적 탐욕을 채우려고 하는 성령파 집단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 예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그 교회를 닮아가려는 교회성장론자들이 그 같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성경진리와는 동떨어진 온갖 감언과 이설로 신도들을 현혹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해서는 자기 부부와 자녀들에게 물려주려하여 교회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조용기 같은 목사는 부정과 부패로 인해서 장로들로부터 여러 차례 고발을 당하고 그 장로들을 여러 차례 교회에서 추방하였지만 지금도 그 싸움은 그치지 않고 있다. 그 큰 아들은 횡령혐의로 여러 차례감옥살이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요즘 사랑의 교회인가 하는 강남의 거대교회에 시무하는 오목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가서 남의 논문을 통째로 베껴서 가짜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드러나서 곤욕을 치르는데 가짜박사학위를 가장 많이 받은 집단이 바로 보수파 정통주의를 내세우는 교단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리하여 종교집단들 가운데 한국의 개신교회처럼 저질의 성직자들과 이기적인 신도들이 많은 집단도 없어서 사회적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고소영인사를 한 이명박 정부에서나 지금의 박근혜정부에서 장관청문회를 보면 그 중에서 개신교회 신자들이 가장 많은데 그들의 대부분은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뇌물수수, 심지어는 성상납을 받은 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본회퍼 목사는 당시의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할까를 고심했다. 오늘날 부정과 부패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타락하고 신뢰를 상실한 성직자들과 교회로서는 참회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이 땅에 정의가 평화가 지배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고 불의가 점점 더 판치는 살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다. 성공회의 대선배이며 신학자인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 대주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학사상은 대륙(주로 독일)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교정되고 미국에서 타락한다.”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한국의 타락한 그리스도교와 부패한 자본주는 한국에 와서 더욱 공고한 세력으로 뭉쳐서 한국을 더욱 타락하고 변질시키고 있다. 불의에 저항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철저히 복종한 본회퍼목사 처형 68주년을 맞이하여 한국기독교가 “기도하며 사람들 가운데서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가 됨으로써 한국교회가 참회하고 갱신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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