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WCC 놓고 진보·보수 신학자들 간 열띤 토론

서로 다른 전제 탓에 입장차 더욱 분명히 나타나

▲3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WCC를 둘러싼 공개 찬반 토론회가 진행됐다. ⓒ베리타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놓고 진보, 보수 신학자들 간 열띤 토론이 있었다.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이 3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WCC 영성과 한국교회’란 주제로 제19회 영성포럼을 연 것이다.

이날 진보, 보수를 대표한 신학자들은 그간 오해를 사왔던 WCC의 ‘선교 개념’을 포함해 ‘종교간 대화 원칙’ 등을 둘러싸고, 각자의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이견차를 좁히는 성과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오히려 전제가 서로 달랐기 때문인지 입장차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되고 말았다.

앞서 ‘WCC 공동선언문’ 사태에서 핵심 문제로 부각된 ‘개종전도’ 이슈가 이날 포럼에서도 ‘뜨거운 감자’ 구실을 했다. WCC 반대편에서 포문을 연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 소장)는 "개종이라는 단어는 WCC가 1960년대 초반부터 현대까지 WCC 산하 ‘세계선교와전도위원회(CWME)’의 공식선언문들을 통해 시종 결정적으로 거부한 중요한 개념"이라며 "두려운 사실은 WCC와 CWME의 ‘반개종주의’는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또 "WCC가 ‘개종선교를 하는 교회는 자기 자신을 구원의 중재자와 구원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했다"면서 "이는 WCC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박사는 "WCC는 복음적인 개종선교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사실 가톨릭이나 정교회권에서 전도한 결실로 일어난 개종은, 종파나 교회집단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임을 WCC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진정한 회개와 개종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인간의 힘과 수단에 의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WCC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수일 한신대 총장 ⓒ베리타스

이에 WCC 찬성편에서 논평한 채수일 박사(한신대 총장)는 "WCC가 개종강요 선교를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WCC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채 박사는 특히 ‘개종’과 ‘회심’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것을 요구했다. ‘개종’이 종파적 이해 관계에 따른 강제성이 있는 개념이라면 ‘회심’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개인의 회개 경험이라는 것이다. 채 박사는 이러한 개념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WCC 반대편에서 이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해 WCC에 대한 오해를 조장시킨 면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또 몇백년 전 텍스트를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틀에 박힌 사고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그는 수천년 전 텍스트를 오늘날 자기 입맛대로 주물러 아전인수격 적용을 시도하는 어쭙잖은 신학 작업에 "학문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내렸다. 서구가 아닌 한국에서 그리고 서구인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Context)에 기초해 신학 작업을 펴 나가는 것이 ‘학문적’(Academic)이라는 얘기도 꺼냈다.

아울러 채 박사는 "‘오직 믿음으로’라는 명제는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주장이다. 이른바 행위를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이 명제는 오랫동안 교회 분열의 교리적 전거가 되어 왔다"면서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로마가톨릭 교회는 세계루터교연맹, 세계감리교회와 함께 ‘오직 믿음으로’라는 신학적 명제가 더 이상 교회 분열의 교리적 전거가 될 수 없다는 합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16세기 유럽, 그것도 독일의 종교개혁 사상이 수많은 개혁교회들에게 하나의 전통이 될 수는 있어도, 모든 교회들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하거나 강요될 수 있는 교리는 더 이상 아니라는 선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WCC의 ‘종교간 대화’ 문제에 관해선 WCC 찬성편에서 이형기 박사(장신대 명예교수)가 WCC의 공식문건들을 분석하면서 WCC가 "기독교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확신들의 정체성과 고유성, 특수성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문서들은 기독교의 고유하고 특수한 입장에서 타종교들을 본 것이지, 모든 종교들을 동질화시킨 게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를 포함하는 종교들의 ‘다원주의’가 아니라 종교들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다원성’과 ‘다원주의’의 차이를 간과한 채 이들을 동일한 범주 안에 넣고 사고를 편 WCC 반대편 논평자들인 장훈태(백석대 선교학), 김홍만(국제신대 역사신학)는 각각 "적어도 기독교인은 종교 현상을 인정하되, 복음의 유일성은 주장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고, "(WCC가)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서술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교들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 박사의 주장에 선뜻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종교 다원성’ 인정은 ‘종교간 대화’를 가정하며, ‘종교간 대화’는 필시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종교 다원주의’로 흐른다는 전제를 갖고, 대화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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