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유일신 종교의 요람이었고, 온 인류의 평화와 우애, 개방과 사랑의 요람으로 여겨졌던 중동지역이 이제는 전쟁과 증오, 파괴와 반계몽적 행위의 무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최창모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인터넷커뮤니티 |
한국YMCA 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가 주최하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를 위한 대안 성지순례 심포지엄의 주제 발제자 최창모 교수(건국대)는 사람과 사람 간 ‘같음’과 ‘다름’을 싸안은 ‘동일성의 비동일성’이 간과된 ‘배타적 근본주의’가 갖는 폭력성을 고발하며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름’이 허용되지 않는 ‘같음의 논리’에 철저히 기초한 이러한 근본주의가 남아있는 한, 중동의 평화란 ‘유토피아’적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했다.
본지가 미리 입수한 강연문에 따르면, 최 교수는 이팔분쟁의 핵심을 ‘근본주의’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하나의 입장과 관점만을 허용하는 배타적 근본주의는, 그것이 이슬람 근본주의이든, 기독교 근본주의이든, 유대교 근본주의이든지 간에 일부 서구정치 때문에 어느 정도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손 치더라도,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현대적이다"라고 비판했다. 반개방적이고 반자유적이고 반탐구적이라는 점에서 근본주의는 반현대적이라는 것이다.
‘근본주의’가 모순으로 둘러싸인 삶의 현실을 뒤로한 채 흑/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는 메카니즘도 적절히 기술했다. 최 교수는 "(근본주의는)미리 정해진 하나의 견해만을 절대적으로 추종함으로써 그 밖의 가능성과 여지를 헤아리지 않는다"며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서 상대의 어떤 차이나 뉘앙스도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 아닌 모든 것을 적이나 악으로 간주할 때 스스로도 적과 악이 된다. 그래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제약하는 모순적 민주주의를 낳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근본주의’가 삶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최 교수는 "근본주의적 성향은 주체의 자유와 자율 능력에 대한 근대 이후의 모든 계몽적 사고를 흔들어버린다"며 "근본주의는 삶과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그것은 합리적 현실참여와 정치적 개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한 판단을 쉼 없이 왜곡하고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최 교수는 인간의 조건을 ‘같고도 다른’이란 모순된 표현으로 기술, 자타(자아와 타자)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즉 관계망에서 벗어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이 생겨 먹은 것 자체가 ‘근본주의’에서의 이해와는 달리 ‘같음’으로만 쪼개낼 수 없는 ‘다름’을 싸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주장을 최초 전개해 감에 있어서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주장을 빌렸다. “인간이 동등하지 않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며, 차이가 없다면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이나 행위가 필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