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영재 성경칼럼] 에서가 야곱과 헤어진 까닭 세 가지?

이영재·전주화평교회 담임목사

▲이영재 전주화평교회 담임목사 ⓒ베리타스 DB
야곱이 쌍둥이를 낳았다. 형이 에서이고 야곱이 동생이다. 이 형제는 나중에 함께 살지 않고 떨어져 살게 되며 그 후손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적국을 형성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에돔 두 왕국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창세기에는 이 두 형제가 헤어지게 된 일화를 전하고 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다투던 형제였다. 형 에서가 더 힘이 세었기에 동생을 밀치고 먼저 세상에 나왔다. 동생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야곱이란 이름이 붙었다. 
 
에서는 강한 사나이로 성장하여 들판을 누비며 사냥하는 영웅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늘 집안에 유하며 어머니의 가사를 돕는 일을 하였다. 에서는 강하였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지 않고 자력으로 갱생하리라는 굳센 의지로 살았다. 야곱은 연약하였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았다.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은 간절하였다. 야곱은 늘 장자권을 가로 챌 궁리를 하며 생활하였다.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 살 수 있다고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야곱이었다. 강자로 장성한 에서는 배고픈 나머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기고 말았다. 더 나아가 리브가의 강권으로 야곱은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채었고 에서의 살해 위협을 피하여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친다. 장자축복 이야기는 창세기 27장에 있으며 야곱의 도피기는 창세기 28장에 나온다.  
 
장자축복의 문제로 야곱이 형을 피하여 도망을 쳤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 또 다른 동기가 첨가된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만은 본향의 여인과 혼인시키려고 밧단아람으로 파견하였다. 창세기 28장에 의하면 이삭은 야곱을 혼인하라고 밧단아람으로 보내고 있다. 이 두 가지 동기가 야곱으로 하여금 형 에서를 떠나 살게 만들었다고 창세기 27~28장은 보도한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진술이 창세기 36장에 나온다. 에서의 족보에 보면 6절 이하에서 에서가 야곱을 떠나간 것으로 진술되고 있다. 야곱과 에서가 함께 동거하며 살았는데 둘 다 너무나 부유해졌으며 두 형제가 동거하기에 거주지가 너무 좁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넓은 거주처를 찾아서 에서가 야곱을 떠났다는 것이다. 마침내 에서는 세일 지역에 정주하여 이스라엘 통일왕국 시대에 이르러 에돔 왕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유하게 되자 서로 헤어지는 사건은 아브람과 롯의 이야기에도 나온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람과 롯이 점점 부유하게 되자 종들이 서로 목초지 문제로 싸웠다. 아브람의 제안으로 롯은 헤어지기로 하고 소돔 도성 지역을 택하여 이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주제는 에서가 야곱을 떠났다는 창세기 36장 족보 이야기와 동일한 주제다.
 
정리해 보자. 에서와 야곱이 헤어지게 된 까닭은 세 가지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 까닭. 장자의 축복을 야곱이 가로채자 형 에서가 동생을 죽이려 했기 때문. 둘째 까닭. 에서가 헷여인과 혼인하자 부모가 야곱만은 나홀의 딸들과 혼인시키려고 야곱을 본향을 파견했기 때문. 셋째 까닭. 본디 에서는 야곱과 함께 살았는데 재산이 불어나자 땅이 비좁았으며 이에 에서가 야곱을 떠나 세일 지역으로 이주하였던 때문. 이 세 가지 별리의 영문은 서로 모순되는 까닭들이다.  
 
어찌하여 창세기를 위시하여 성경 군데군데에 서로 모순된 진술들이 수록되어 있는가? 노아홍수기도 서로 모순되는 진술들 두 가지가 조밀하게 짜여져 있다. 이처럼 모순된 서로 다른 진술들을 한 문집 속에 그대로 나란히 넣어둔 오경저자의 솜씨에 대하여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경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디아렉틱스(dialectics)’라고 나는 믿는다. 
 
서로 상충되는 다른 의견이나 전승들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여 나란히 수록해 둔다. 서로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한 탁자에 앉아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고 있다. 오경을 저술하면서 오경저자는 서로 다른 전승권에서 오래 동안 떨어져 살던 사람들의 원탁회의를 주최한 듯하다. 전승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나 전승들을 수집하되 그대로 수록한 것이다. 그가 노리는 것은 서로 다른 A 전승과 B 전승이 독자의 삶 속에서 서로 융합하고 조화되어 또 다른 합(合, synthesis)의 과정을 밟아 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성서를 읽는 독자들은 성서독서를 통하여 다른 전통들과 다른 문화들을 수용하고 대화하면서 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유연성의 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다.  
 
아래는 본문을 주석한 것으로 꼼꼼히 읽어 보면서 스스로의 유연한 영성을 훈련해 보자.  
 
창36: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한개역] ...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새번역] 에서는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집짐승과 또 다른 짐승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산을 이끌고, 아우 야곱과는 좀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갔다.
[공동역] 그 후 에사오는 아내와 아들 딸과 자기 집에 딸린 모든 식구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가축과 모든 재물을 포함한 그의 재산을 싣고 아우 야곱을 떠나 세일 땅으로 갔다. 
[카톨역] 그 뒤에 에사우는 아내들과 아들딸들, 자기 집에 딸린 모든 식구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 떼와 모든 짐승들과 재산을 거두어, 자기의 아우 야곱에게서 좀 떨어진 땅으로 갔다.  
èAtyBe tAvåp.n:-lK'-ta,w> éwyt'nOB.-ta,w> wyn"åB'-ta,w> wyv'n"û-ta, wf'‡[e xQ:åYIw:
![;n"+K. #rqi-lK' taew> ATªm.h,B.-lK'-ta,w> WhnEåq.mi-ta,w>
`wyxi(a' bqoï[]y: ynEßP.mi #r
 
이 문장에 동사가 세 가지 나오는데 전반절에 ‘취하다/택하다’란 동사 <라칵흐xQ:YIw:>와 ‘수집하다/모으다’란 동사 <라카쉬vk;r">, 후반절에 ‘걷다/가다/살다’란 동사 <할라크%l,YEw:>가 나온다. 라칵흐의 목적어로는 ‘그의 아내들’이란 뜻의 <나사으wyv'n">, ‘그의 아들들’이란 뜻의 <바나으wyn"B'>, ‘그의 딸들’이란 뜻의 <버노타으wyt'nOB.>, ‘그의 집의 모든 생명들’이란 뜻의 <콜-나프쇼트 베이토AtyBe tAvp.n:-lK'>, ‘재산/가축’이란 뜻의 <미크네후WhnEq.mi>, ‘그의 모든 소들/짐승들’이란 뜻의 <콜-버헴토ATm.h,B.-lK'>, 그리고 ‘모든 재산’이란 뜻의 <콜-킨야노Any"n>qi-lK'>, 모두 일곱 가지이다. 여기에 <아쉘 라카쉬 버에레츠 커나안>란 관계절이 붙어 있다. 동사 <라카쉬vk;r">는 <킨야노>를 목적어로 받는다. 여기까지 전반절이다. 
 
후반절의 동사 <할라크>의 주어는 에서인데 그는 그의 동생<악히으wyxia'> 앞을 떠나서 어떤 땅으로 나아갔다. 땅을 가리키는 명사 <에레츠#r에 관사가 없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에서가 야곱과 함께 살다가 야곱을 떠나서 이주했다는 보도는 앞에 나온 이야기의 내용과 상치된다. 
 
창36: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한개역]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새번역] 두 사람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들은 특히 집짐승이 많아서 거기에서 그대로 살 수 없었다.
[공동역] 그들이 모은 재산이 너무 불어나 함께 살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가축이 너무 많아져서 그들이 머물러 사는 땅에서 나는 것으로는 둘이 다 살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톨역] 함께 살기에는 그들의 가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머물던 땅이 그들을 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h,(ynEq.mi ynEßP.mi ~t'êao tafeäl' ~h,yrEWg*m. #r wD"_x.y: tb,V,ämi br"Þ ~v'²Wkr> hy"ôh'-yKi( 
 
에서가 야곱을 떠나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키>절이 진술하고 있다. <하야hy"h'>는 존재동사이며 주어는 ‘그들의 재산’이란 뜻의 <러쿠샴~v'Wkr>>이고 보어는 ‘많다’란 뜻의 <라브br">다. <러쿠샴~v'Wkr>>은 ‘재산’을 가리키는 단수명사 <러쿠쉬>에 삼인칭남성복수 속격이 어미로 붙어 있는 꼴이다. 여기에 <미>전치사구가 이어지는데 이 때 <미>는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된 사연을 밝히는 전치사다. 여기에 ‘거주하다’란 동사 <야샤브>의 원형 연계형 <쉐베트>가 이어지므로 <미쉐베트tb,V,mi>는 거주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약흐다으wD"x.y:>는 ‘함께’란 부사다. 여기까지 전반절이다.  
 
<월로al{w>>는 접속사에 부정어 <로>가 합성한 꼴이며 동사 <야클라hl'k.y">는 ‘할 수 있다’란 동사 <야콜lkoy">의 삼인칭단수 여성형이다. 주어는 ‘땅’을 가리키는 <에레츠#r이며 정관사가 없다. <머구레이헴~h,yrEWgm.>은 ‘거처’란 명사 <마고르rAgm'>에 복수속격이 어미로 붙어 ‘그들의 거주처’란 뜻으로 에레츠와 동격이다. <라세트tafel'>는 ‘싣다/나르다/지다/견디다/용납하다’란 뜻의 동사 <나사af'n">의 <러>부정법인데 앞의 <야콜>에 걸리어 ‘용납할 수 없다’란 뜻이 된다. <오탐~t'ao>은 삼인칭복수 목적어다. <미퍼네이ynEP.mi>는 ‘~때문에’란 전치사구이며 <미커네이헴~h,ynEq.mi>은 ‘소득/재산/부동산’이란 뜻의 명사 <미커네hn에 삼인칭복수속격이 붙은 꼴이다. NRS는 because of their livestock 라고 옮겼다.
 
가축이 너무 많아서 땅이 그들의 동거를 수용하지 못하였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축복을 증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을 동일하게 축복하시니 이 쌍둥이 형제가 크게 부유해졌다. 그러나 이 촌평은 실제로 26~35장에서 펼쳐진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진술이다. 에서와 야곱이 동거할 수 없었던 까닭은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며 에서가 이방여인들과 혼인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에서의 족보에 있는 평가는 앞에 펼쳐진 이야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전승에 의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창36: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한개역]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하니라
[새번역] 그래서 에서 곧 에돔은 세일 산에 자리를 잡았다.
[공동역] 이렇게 해서 에사오는 세일 산악지대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에사오를 에돔이라고도 한다. 
[카톨역] 그래서 에사우는 세이르의 산악 지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 에사우가 곧 에돔이다.  
`~Ad)a/ aWhï wf'Þ[e ry[iêfe rh:åB. wf'[e bv,YEÜw:
 
<와예쉐브bv,YEw:>는 ‘거주하다’란 동사 <야샤브bv;y">의 미완료 와우접속법으로 시제는 완료다. 주어는 <에사으wf'[e>다. <버하르 rh:B.>는 ‘산에서’란 뜻이며 정관사가 없다. 공동번역은 ‘산악지대’, 카톨릭역은 ‘산악지방’이라 옮겼다. 이 산의 이름은 <세이르ry[ife>다. <에사으>는 곧 <에돔~Ada/>인데 <후aWh>는 남성삼인칭대명사다. 
 
이 진술은 창33:3의 진술과 어긋난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에서에게 전령을 보내는데 그 때 에서는 ‘세일 땅 에돔 들’에 살고 있었고 진술하고 있다. 에돔 들과 세일 산은 엄연히 다른 진술이다. 들이나 밭은 <사데hd,f'>이고 산이나 산간지방은 <하르rh;>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만인·만유구원론 보다는 천국, 지옥 복음 선포해야"

칼뱅의 이중예정론의 결과인 이중심판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되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성서 신학적으로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