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 간토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올해 9월 1일로 우리는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 90주년을 맞는다. 1923년에 우리 민족사상의 일대 수난이라고 말해야 할 제노사이드가 자행된 지 꼭 90년이다. 우리 재일 동포는 이 억울하고 가슴 아픈 기억을 이어받아 학살 피해자 추도 행사를 비롯한 여러 활동을 계속해 왔으며, 특히 해방 후는 양심적 일본 사람들과 함께 사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줄기차게 사죄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도 일본 당국은 내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다.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도리어 도쿄도처럼 버젓이 새로운 역사 왜곡에 나서는 공공단체까지 나오게 된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도쿄도는 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조선인이 학살됐다"는 표현을 없앰으로써 뉘우쳐야 할 국가 범죄를 어둠에 매장할 작정인 것이다. 사건 직후부터 일관해서 국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실 은폐와 궤변을 일삼아 온 연장선상의 약은 수작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언제까지나 진실을 숨기지는 못한다.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 지진 발생 직후에 재일 유학생들이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작성한 희생 동포 조사 보고서가 남아 있으며 당시의 일본 인사들의 보고나 논문도 상당수 알려져 있다. 특히 패전 후 일본에서 재일 동포 사학자와 일본의 학자, 지식인들이 많은 연구 성과를 발표해 놓고 있다.90주년인 올 해는 하나의 기회다. 일본 정부는 감추어 놓았던 자료 등, 증거를 고스란히 공개하고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을 하루빨리 내디뎌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에 올라야 한다.
한편, 학살 피해자 유족과 재일 동포의 입장으로는 우리 한국 정부의 도를 넘은 태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에 대하여 해방 후 진상 해명과 사죄 등 제반 조치를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하니 놀라기보다 오직 기가 막힐 뿐이다. 역대 정권이 진실로 이 사건을 민족의 수난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대단히 궁금하다. '재외 교포가 당한 재난이니 나는 모른다'하는 의식이 있었다면 그야말로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끔찍한 사건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뻘인 우리 재일 동포와 학살 피해자 유족이 품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어 격한 분노로 변하기 전에 한국 정부가 스스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한일 양국 정부가 이러한 기만적 태도를 고집하여도 진상규명을 바라는 양국 사람들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높아만 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과거에 착실히 한 걸음씩 전진해 온 실적이 있다. 일본에서 사건 발생 80주년의 해에 [일본변호사연합회]가 고이즈미 총리대신 앞으로 "국가는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유족에 사죄해야 하며 학살의 전모와 진상을 조사하여 원인을 밝혀야 한다."라는 권고서를 보낸 바가 있는데, 이는 바로 80주년이라는 하나의 고비가 되는 해에 거둔 우리의 귀중한 성과물이며 각계각층의 양심적 일본 사람들과 재일 동포들에 의한 장기간에 걸친 추모 활동과 진상 규명 활동의 결실이다.
오늘날 동아시아가 직면해 있는 환경은 점점 더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90주년을 뜻깊은 해로 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전체 재일 동포의 소원을 담아 다음 네 가지 사항을 간절히 당부한다.
* 한국 국회는 [1923 간토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 지금까지 발견된 조선인 학살 관련 자료에 나타난 60여 명의 실명과 원적을 조사하여 학살된 재일 동포들의 유족을 찾을 수 있도록 행정부와 지방정부가 조속히 나서야 한다.
* 외교부는 당시 학살을 자행한 군대의 이동기록, 지역에 세워진 추도비, 지방 역사 및 재판기록 등 간토 학살사건의 증거가 되는 증빙자료들에 대한 증거 보전 신청을 일본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 교육부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간토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해 교과서에 정확히 기술하여야 한다.
2013. 6
[간토대진재 조선인학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재일동포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