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아우슈비츠 이후 서구 신학은 어떻게 재편되었나

김진호 목사 “홀로코스트 신학, 이스라엘 침공 정당화해”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을 재개한 가운데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피해가 또 눈덩이 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같은 가자지구 사태에 얼마전 진보 교계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전쟁 중단을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사회에 호소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보수, 특히 근본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침공을 ‘정당방위’라며 유대사회 비판을 꺼리고 침묵만 하고있다. 왜 그럴까?

5일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소장 김창락) 주최로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심포지엄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교회 내 보수, 근본주의 신학자들 및 성직자 그리고 기독인들에게 형성된 유대사회를 바라보는 사상적 기조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홀로코스트 신학과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이란 주제로 발표한 김진호 목사(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는 나치스 독일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 당한 홀로코스트 사건 전후에 생긴 ‘홀로코스트 신학’을 들어, 홀로코스트를 전후해 변화된 서구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를 설명했다.

▲ 5일 한백교회 안병무 홀에서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베리타스

홀로코스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유럽 전역에 걸쳐 서구 기독교에 의해 유대인들은 핍박과 압제를 받아야 했다. 서구 기독교가 유대인들을 핍박하게 된 계기는 유대교로부터 나온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자신들이 선민이라며 유대교의 공동체적 결집을 강조하는 그들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듯 유럽 전역에 만연한 서구 기독교의 반유대적 정서는 홀로코스트 사건 이후 180도로 바뀐다. 반인륜적인 행위에 신앙적 양심이 발동한 서구 기독교는 유대교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했으며 유대인들 역시 그런 화해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이런 당시 분위기는 서구 기독교와 유대교가 손을 잡는 홀로코스트 신학의 배경이 됐다. 김진호 목사에 따르면 이 홀로코스트 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가설들이 있는데 ‘정복가설’과 ‘이주가설’이 그것이다. 다윗-솔로몬 등의 제국 설화를 이용해 이스라엘 국가가 혹은 기독교 제국들이 팔레스티나에 진보와 풍요를 선사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성서 이해는 이스라엘 이외의 팔레스티나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김 목사는 전했다.

다윗-솔로몬의 황금시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티나에 유입됨으로써 가능했다고 설명하는 정복가설은 팔레스티나의 대량학살을 정당화 했다고도 한다. 그래야만 이 지역에 대한 신의 촉복은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여기서 신의 축복과 세속적 성공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게 된다.

▲ 북쩍이는 사람들 ⓒ베리타스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은 이런 성공주의 신앙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려 했지만 그러한 자기성찰을 유대교에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김 목사는 지적했다. 김진호 목사는 “반유대주의가 결과적으로 대량학살이라는 최악의 범죄로 이어졌다는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압도된 나머지, 그들의 신학논리에서 서구의 유대교 엘리트나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수행하는 타자에 대한 배타적 행태에 문제제기 하는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또 “실은 유대인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에서 금기시된 것이었기에 그런 문제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낫겠다”고도 했다.

노만 팡켈슈타인은 이러한 서구인들과 유대인들의 논리가 제도화되는 양상을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나는 현대 서구신학 역시 이러한 홀로코스트 산업에 포섭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면서 “그러한 신학을 ‘홀로코스트 신학’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김 목사는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된 이후 유대인은 더 이상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라고 말한 김 목사는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이 자신의 고통을 특화시키는 순간 더 이상 희생자의 담론이 아니며, 또 다른 희생자를 부르는 제국의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며 “하여 이제는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가자를 침공한 순간 유대인들에 의해 아우슈비츠는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고, 대신 ‘가자 이후’를 묻는 일만의 신학의 과제로 남게 될 것이란 말이다.

끝으로 한국 개신교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였다. 김진호 목사는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교 지도자들과 많은 신자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네들의 행위를 해석하고자 했고,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이슬람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선험적으로 갖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그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서구 중심주의적 성공에 예속된 식민화된 자의식이 깔려 있다”면서 “그것을 성찰할 지적 준비도 신앙적 의지도 없다면 한국 그리스도교가 팔레스티나 사람들이나 전 지구의 고난 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정당하게 판단할 신학적 신앙적 사유의 가능성은 없다”며 발제를 마쳤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충간문화연구소 장석만 소장은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을 임지현 교수(한양대)와 바우만의 대담에서 찾았다.   

“이것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게임의 법칙, 같은 논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하는 꼴이 됩니다. 더 단적으로 말한다면, 기존의 대립구도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입장을 뒤바꾸어서 내가 가해자가 되겠다는 발상입니다. 어제의 희생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가 무엇보다도 그 점을 잘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바우만)

아시아가톨릭뉴스 박준영 한국지국장은 한국교회가 배타적 근본주의에 저항할 면역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0년에 걸쳐 성쇠를 몇 차례 거듭한 그리스도교는 내부의 배타적 근본주의를 극복한 경험이 가장 많은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그런 면에서 내부의 긍정적 요소를 최대한 발굴, 성장시켜 스스로 내면의 비인도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아울러 타 종교가 근본주의에 저항할 면역력을 키우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화계사 사회국장인 종명 스님은 “‘홀로코스트 신학’에 중독된 한국 개신교 다수에 대한 걱정을 해주셨는데 종교편향을 겪은 우리로서는 그 걱정에 대해 동감했다”며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이 이-팔 분쟁을 넘어 한국의 종교화합에 그리고 인류평화에 지남철이 되길 고대해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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