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Rembrandt), Esau Sells his Birthday to Jacob, c.1640-45 |
▲렘브란트, Esau Sells his Birthday to Jacob, c.1648-50 |
▲렘브란트, Esau asks Jacob for the Red Pottage, c.1650. |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에 이어 삼대 째 이스라엘의 족장(patriarch)이 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 때문에 이삭은 알몸을 번제로 드리는 순종으로, 그런데 야곱은 어찌 이스라엘의 족장이러 칭송되는가? 야곱은 전 민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준 장본인이며, 이스라엘의 12지파가 그의 자손들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사적 관점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야곱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라는 점에서 기록이 남은 듯 한 인상을 줄 정도이다.
야곱의 출생도 이삭의 출생처럼 오랜 기다림(이삭이 40에 리브가와 결혼하여 60에 얻은 자식) 끝에 얻은 결과, 곧 남자와 여자의 자연적 결합의 결과가 아니라 이삭에 이어 야곱도 참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결과임을 반복하여 나타내려 했던 것임을 읽을 수 있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고 태속에서부터 싸움을 감지하고 ‘어찌할꼬’ 탄식하던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신탁을 듣는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뉘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만물 생성의 인자인 둘, 정반(正反)의 대립과 갈등인가, 음양(陰陽)의 어울림과 조화인가? 성경은 대립과 갈등의 현실, 나뉨의 세계, 강자와 약자의 대립에 더 닿아 있다. 하나님 대 아담과 이브의 갈등, 가인과 아벨의 대립, 이스마엘과 이삭의 시기심 그리고 여기 야곱의 장자권, 축복, 권력에의 한없는 의지.
에서와 야곱은 활동과 생김새와 성격에서 확연히 차이가 진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고(들사람) 붉은 머리와 붉은 피부, 에서의 이런 신체적 특징 때문에 붉은 머리와 붉은 피부에 대한 편견이 생겨났다. 중세 미술에서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통상 붉은 머리로 묘사되었다.
에서는 거칠고 급한 성격에 생각이 얕다. 그는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을 별로 귀중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 그에게 상속될, 애초부터 그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성경에서 관습은 왕왕 도전받고 부인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말씀에서처럼.
반면 야곱은 집에 있는 걸 좋아 했고 약삭빠르고 조용한 사람이고 생각이 깊으며 미래에 대한 욕망, 곧 장자권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갈망으로 생각과 판단이 가려 있다. 그런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갈린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
어느 날 에서는 하루 종일 사냥을 하느라고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 쓰러질 듯 장막으로 들어왔다. 맛 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야곱이 붉은 죽(팥죽)을 쑤고 있었다. 에서는 본능에 충실하다.
“그 팥죽 나부터 좀 먹자. 배고파 죽겠다!”
“그렇게 해요”
“그 대신 형의 장자권을 내게 넘기세요”
“그래, 네게 넘기마.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 따위가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건 아니잖아? 네게 넘길테니 그 팥죽은 내가 먹자.”
첫 그림(1640-45)에서 렘브란트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팔을 뻗어 두 형제가 악수를 함으로써 그 거래를 확인한다. 관람자는 곧바로 사냥꾼의 옷을 입고 바람과 햇빛에 그을린 에서의 얼굴을 보게된다. 그러나 야곱은 뒷모습만 보인다. 에서의 한 손은 악수를 하고 다른 한 손은 팥죽을 손에 넣었지만 그의 눈은 동생 야곱을 향한 타오르는 의심으로 가득하다. 두 형제가 손을 잡고 악수를 함으로써 겉으로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의 내면적인 대조가 이 소묘에서처럼 특징적으로 잘 드러난 그림도 없을 것이다.
둘째 그림(1648-50)은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첫 그림과는 반대로 야곱이 식탁에 앉아 있고 형 에서는 옆에 서 있음으로써 악수하는 모습이 눈에 더 확연히 들어온다. 에서의 서 있는 모습에서 자신의 상속권을 너무 성급하게 써버리는 태도가 드러난다. 에서는 바로 사냥 옷을 벗기 전에 상속권과 팥죽을 교환한다. 그는 그것을 허겁지겁 먹고 마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지면서 그의 상속권(birthright)eh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이 그림에서도 에서의 거칠고 성급한 외향적 성격과 집에 머무는 야곱의 내향적 성격이 아름답게 대조된다.
셋째 그림(1650)에서 에서와 야곱 사이의 권력 투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에서는 에돔의 조상이며, 이스라엘의 이웃이지만 영원한 적대국으로서 이스마엘의 처지와 같다. 앞의 두 그림에서와는 달리 두 형제는 악수하면서 야곱과 교환하지 않는다. 에서는 종일 사냥으로 배고프고 지친 모습으로 오직 하나의 대상, 곧 야곱이 손에 들고 오는 팥죽만을 바라본다. 에서는 야곱이 여전히 서 있는 모습이지만 밖으로 달아날 것 같은 오른발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형제간의 헤게모니 투쟁으로 이제 숨이 가빠지고 숨결이 요동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