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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시베리아 횡단 ‘평화열차’의 꿈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 ⓒ베리타스 DB
박근혜 대통령의 꿈
 
지난 주(6일)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하고 푸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피력한 꿈 이야기. “한국의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철도가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꿔 왔다.” [한국일보] 9월 9일자 19면 ‘경제 면’에 보도된 말이다.
 
나는 소년시절 만주 벌판에 살면서 북한 고향 땅, 강계에 계신 외할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서 여러 번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부터 경의선을 타고 평양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다시 압록강 근처까지 왕래하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기차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평양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북쪽으로 가지 말고, 그대로 앉은 채로 서울로 대전으로 대구로 해서 부산까지 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6.25 한국전쟁 때, 유엔군과 국군이 평양에서부터 남쪽으로 후퇴하는 피난민 대열에 끼어 평양에서 화물차 꼭대기에 올라타 38선을 넘어, 서울로 해서 며칠 후 다시 화물차에 올라 타, 부산으로 내려 온 것으로 나의 평양-부산 기차 여행의 꿈이 겨우 이루어진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망명한 목사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살면서 나의 소년 시절의 꿈은 북쪽으로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만주에는 “백계 러시아인”이라고 하는 반혁명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기독교의 정교회 교인들 아니면 침례교도들이었는데, 겨울에도 얼어붙은 강 한 복판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그 차디찬 물에 담그는 침례 (세례식)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러시아 사람들의 신앙심을 존경하기도 하였다. 가끔 거리에서 만나는 백계 러시아 소녀들의 이국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사춘기 소년의 꿈을 꾸기도 하였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설원과 툰드라 어름을 헤치고 수도 모스크바로 그리고 독일과 스위스를 지나 프랑스까지 여행해 보고 싶은 것은 만주에 사는 나만의 꿈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세상에서 바깥세상을 보는 유일한 수단은 기차 여행이었다. 자동차를 몰고 시베리아를 넘는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이 소년의 나이 80이 넘은지 몇 년이 지났는데, 내 소년시절의 꿈 이야기를 환갑나이 박근혜 대통령이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푸틴 대통령 앞에서 진솔하게 털어 놓았다니,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다.
 
WCC 부산총회와 ‘평화 열차’의 꿈
 
이 꿈은 어린 소년의 꿈만이 아니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필생의 꿈이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위와 같은 면) [한국일보]에서 그려 낸 상상도에 의하면,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 TKR는 북한 동해안을 거쳐 나진까지 가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 도착, 계속 러시아 기차 TSR를 타고 북으로 달리면 하바로스크로해서 시베리아 철도를 횡단, 모스크바와 바르샤바를 거쳐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는 “꿈”의 여정이다.
 
그런데 이 꿈을 거꾸로 꿔 본 것이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WCC 총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꿈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과 러시아에서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 총회에 오는 참가자들이 독일 베를린에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서 러시아 참석자들을 태우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만주 심양에 도착한 뒤 다시 중국 교회 대표들을 태우고 압록강을 건너 평양에 도착한다. 이어 평양 봉수교회와 찰골교회 교인들과 합류해서 WCC 예배를 드리고, 북한교회 대표들과 다시 기차에 올라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그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의 이름을 “평화열차”라고 하자는 것이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부산총회를 보지 못하고 올해 1월에 작고한 오재식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부총무였다.
 
WCC 부산총회 준비위원회는 지난 몇 달 동안 WCC 총회를 세계에 알리는 목적으로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 준비 홍보대회를 열어 왔다. 그 이름을 “빛의 순례”라고 한다. 이 “빛의 순례”가 “평화열차”와 만났으면 한다. “빛의 순례”의 마지막 순례를 평양에서 하도록 하고, “평화열차”를 함께 타고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부산으로 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꿈이 우리 WCC 부산총회의 “평화열차”로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남북 관계가 개성공단 재가동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금강산 관광 재개 등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마당에, 우리 대통령의 “꿈의 열차”와 “평화열차”가 하나로 연결되고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부산 WCC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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