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본지 편집고문) ⓒ베리타스 DB |
요즘 한 창 장마 때라 사방에서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산사태가 나고 논밭이 침수되어 어수선하다. 이런 때는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또 생각도 잘 집중되지 않는다. 몇일 전 송기득 선생님의 전화로 부탁받은 글이 오늘이야 생각이 나서 서둘러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글을 시작하기 전 우선 신학비평 49호에서 송선생님의 글 “뇌경색을 앓으면서 - 교회의 하느님에 대한 예수론적 대안”과 “뇌일혈을 앓으면서 - 하느님과 함께 노닌다는 것”을 읽었다. 나도 요즘 와서는 나이 탓도 있고 또 그동안 오래 앓아온 신부전증과 몇 차례의 큰 수술들의 후유증으로 계속되는 피로 탓에 신학비평 50호에 대한 축하의 글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송선생님의 글들을 읽고 나니 그동안 수미일관된 체계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좀 벗어나서 생각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일갈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건강도 좋지 않고 또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들에서도 중단 없이 글을 써서 “신학비평”을 출간하신 송기득 선생님의 노고에 축하를 드리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잡지가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주변에서 집필자로서 그리고 후원자와 독자로서 동참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화석화되고 왜곡된 제도적 교회들의 개혁을 외치며 거기에다 산 예수의 혼과 정신인 복음의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애쓴 몇몇 선배 신학자들이 계신다. 그들은 바로 “聖書朝鮮”의 김교신, “씨알의 소리”의 함석헌, “제3일”을 냈던 장공 김재준, “現存”을 냈던 안병무라고 할 것이다. 송기득 선생님은 이 분들의 뒤를 이어서 “神學批評”이란 잡지를 통해서 한국에서 “광야의 외치는 소리”(野聲)가 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신학계의 후학들과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영감을 불어 넣었다.
송선생님은 그의 글에서도 언급하셨지만 당시 많은 젊은이들처럼 지독한 폐결핵을 앓고 그 후 심각한 후유증으로 고열에 시달리다가 얻은 두통과 불면증으로 오늘날까지도 고생하고 있다. 그의 몸에 박혀 괴롭히는 “가시들”로 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처럼 평생 평안한 날과 밤을 맞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서 그는 하느님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맛서 겨뤄보기도 했지만 그는 늘 응답 없이 침묵만 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왔다. 이러한 몸의 가시가 항상 그의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음미하게 만들었고 그의 사상(신학과 신앙)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켰을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몸의 고통과 그로 인해서 수 없이 직면했던 좌절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느님에게 간청도 해보고 반항도 하면서 오늘날까지도 그 하느님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신정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늘 그 하느님과 실존적으로 대결하면서 그를 탐구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그가 씨름하고 탐구하는 하느님은 누구인가?
사족이지만 필자도 꽤 오랜 세월 신학을 해오고 있지만 송선생님처럼 처절하게 이 하느님과 씨름하고 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신학자로서 필자가 생각해온 하느님에 대해서 거칠게나마 언급해 보고 싶다. 결코 신론같은 것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1988년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자마자 필자는 신부전증이란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 한국에 와서 치료하던 중 마침내 1993년 3월부터 신장투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앞이 캄캄해졌다.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일을 시작하려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각치는 것일까? 그 때만해도 투석환자들은 대개 5년 정도 생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때 나는 하느님에게 좀 원망하는 기도를 드린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어려운 일들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성격 탓도 있었으리라.
오늘날까지 필자는 만 20년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가서 매번 4시간씩 투석을 받는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내가 병원에서 투석 받은 시간들을 계산해보니 모두 12.480시간인데 날짜로 계산해보니 520일이나 된다. 내 삶에서 520일 동안을 병원에서 침대에 누워 투석을 받으면서 시간을 보낸 것이다. 1년이 365일이나 1년 반이 넘는 시간을 꼬박 병상에 누어서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2005년 성공회대학교를 은퇴하기 직전 약 45일정도 부천 성모병원에 입원해서 썩어가는 담낭(쓸개)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일반인들은 복강경 수술로 간단히 쓸개를 들어내고 5일이면 퇴원했지만 내 경우는 무경험하고 무책임한 담당 여자의사로 인해 담낭이 다 썩을 때까지 20일이나 지나서 다른 의사에 의해서 수술을 받게 되어 고생을 많이 하게 되었다. 투석환자들은 항상 몸속에 물이 차 있어서 복강경 수술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배를 열고 큰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2년 후인 2007년 총담관 담석증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번에는 내시경 수술을 받았는데 그 때도 몸에 찬 물로 출혈이 멎지 않아서 이틀에 3번이나 재수술을 받았다. 이 때 12봉지의 수혈을 받았었다. 이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3배 이상 오래 병원에서 고생을 해야 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큰 수술은 직장암에 걸려서 성모병원에 입원해서 내시경 수술을 받았는데 이때도 과도한 출혈로 고생을 했다. 고생도 고생이지만 치료비도 몇 배나 들었다. 이 때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러한 장기간의 투석생활과 큰 병들을 앓으면서, 아니 앓았기 때문에 필자는 대외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연구 활동에만 집중했다. 그로 인해 필자는 6권의 저서와 22권의 공동저서, 23권의 번역서들을 합해서 약 50여권의 책을 낼 수 있었고 또 다수의 논문들을 여러 잡지들에 출판할 수 있었다. 필자가 독일에서 늦은 나이(50세)에 돌아와 이 정도라도 한국 신학계에 봉사할 수 있은 데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그 싸움에서 얻은 삶의 경험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하느님께서 금이 가서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나에게 보물을 담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열매들을 거둘 수 있었겠는가!? 작고한 신학자이면서 통일운동가 홍동근 목사는 일본 도쿄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금이 간 항아리를 사람들은 더욱 조심해서 사용하는 법이니 하느님이 손 박사를 조심조심 오래 사용하실 것이요.”라고 격려하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향린교회 홍창의 장로님도 “홍근수, 송기득, 손규태는 오래 살아서 신학계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할 학자들이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필자는 항상 기도해 주시던 돌아가신 장모님 김길례 여사, 성공회성가수녀원의 카타리나 수녀님과 수녀(사제)님들 여러분, 그 밖의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오늘도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남은 위한 기도, 代禱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런데 나는 정작 그 하느님에게 오늘날까지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나는 세 번의 수술로 생사를 헤맬 때도 하느님에게 살려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하느님이 살려주시겠지 하고 믿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직장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아내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고 했다. 아마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듣고 나를 살려준 것 같다. 그 때 성공회 대학교수들도 암 수술은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방문 온 이정구총장은 나에게 “손 박사님 영생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서 놀란 일이 있다. 성공회대학교 전 총장인 이재정총장이 밤늦게 찾아와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을 때 참으로 고마움을 느꼈으며 하느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무덤덤하게 하느님을 만나고 이해하고 믿고 있다. 나는 사실상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학자나 부유한 가정출신도 아니고 더군다나 기독교 가정출신도 아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입문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래서 나는 신학교 입학할 때까지도 목사가 어떻게 양성되는 줄도 몰랐다. 나는 그래서 신학교 입학할 때까지도 기독교적인 것이 전혀 몸에 배이지 않았었다. 선배의 도움으로 한국신학대학에 입학원서를 넣고 시험을 위해서 수유리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주변에서 기독교 가정출신들의 신학후보자들의 행태에 놀랐었다. 그들이 간절한 철야기도로 하느님에게 매달리던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었다. 합격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는 그들이 좀 이상하게까지 느껴졌다. 신학교에 입학해서도 때로는 신학생들의 과도한 경건한 신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그런 것들이 내 체질에 잘 맞지 않았다. 물론 당시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대예배 때마다 드리는 장로들의 상투적인 기도와 통성기도에서 교인들이 어린아이가 보채듯 하는 요구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저렇게 성숙하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이란 분에게 뭔가를 요구만 하는 것일까? 하느님이 아버지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 아닌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다른 것은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도 입학시험 때가 되면 추운 겨울에도 불교신자들이 절이나 대구의 갓바위(박사모자 쓴 부처)같은 데 가서 처절한 마음으로 자식들의 합격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는 행태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내나 나는 자식들을 위해서 한 번도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다.
필자는 사실상 하느님에 대해서 이렇다 할 간절한 갈망도 이렇다 할 원망도 없이 그저 내 친아버님처럼 생각했고 그를 대하듯이 대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도 그를 그냥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든가!? 하느님 아버지 관념을 나는 나의 친아버지의 상에서 유추해 냈던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어려운 생활 중에서도 나에게 부족하지 않게 해 주었고 나는 재산이 별로 없었던 아버지에게 어떤 유산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전쟁 후에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님에게 제대로 효도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쉽게 생각한다. 아들 된 나는 세상에서 때가 되면 가정을 꾸리고 적당한 직업을 갖고 살아감으로써 늙으신 부모님에게 큰 걱정을 드리지 않고 사는 것이 부모님에 대한 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나 기도원 등에서 하느님 아버지에게 과도하게 뭔가를 바라는 태도는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간절히 원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40이 넘은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우리는 한국의 부모들처럼 그들을 남보다 특별하게 사랑하거나 유별나게 키우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서도 과외나 특별활동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물론 공부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식들을 위해서 하느님에게 한 가지 기도한 것은 필자가 신학자로서 하느님 일을 하고 있으니 그 대신 하느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탈선하지 않도록 잘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무난하게 공부를 마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도 하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며 살아간다. 손자손녀들도 셋씩 두어 우리에게는 여섯 명의 손주들이 있다. 그들은 요즘 와서는 늙고 병든 나와 말년에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늘 걱정하고 가끔 치료비와 용돈도 보내준다. 그들이 제대로 공부도 안하여 제대로 된 직업도 갖지 못하고 아직도 늙은 우리에게 의지하거나 뭔가를 달라고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속이 상할까? 자식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나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회퍼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 같이 성인된 세계(come of age)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성숙해서 독립된 인격으로서 부모(하느님)에게 과도하게 의지하지 않고 제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하느님) 앞에 바로 사는 것이 아닐까? 즉 성숙하고 독립된 인간으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곧 아버지에 대한 아들로서 자세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도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헌신하는 것이 곧 크리스천의 자세라 할 것이다. “하느님에게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이다.”라고 본회퍼는 감옥에서 말했었다. 그렇게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지상에서 제 일을 하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본회퍼는 “하느님 없이 하느님 앞에 사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제 구실을 하면서 살아갈 때 기뻐하듯이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도 그런 자녀들(그리스도인)을 기뻐하실 것이다. 자식들이 세상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돌아가신 부모님들이 얼마나 속상해 하겠는가?
필자가 존경하던 목사님은 은퇴하신 다음엔 교회에 나가지 않으셨다. 자녀들이 왜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동안 오랫동안 하느님을 모시고 늘 그분과 가까이 함께 지냈으니 이제는 너희들이나 교회에 다녀라.”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상 힘에 부쳐서 매 주일 교회에 나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늙어서까지 하느님 아버지에게 매 주일 나가서 뭔가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쑥스럽다. 오히려 늙으신 하느님을 찾아 뵐 때는 그 분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준비해 가지고 가끔 찾아뵙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에 나가서 하느님을 만나지 않아도(하느님 없이도) 하느님과 같이 지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경지가 곧 송 선생님이 말하는 하느님과 노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나이 들어서도 하느님에게 보채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제구실을 못하는 성인된 아들이 얼마 남지 않는 부모님의 재산을 탐내거나 그것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들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하느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한 참 다른 데로 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 아버지를 다루는 신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하지 않았다. 특히 하느님이론에서 주로 다루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상상력의 산물인 창조론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신론이나 그것과 관련된 그리스 철학의 형이상학에 근거한 초대교회의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과 같은 것에서는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본회퍼도 옥중에서 유럽신학을 그리스의 형이상학(Metaphysik)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커다란 과제로 보았다.(Widerstand und Ergebung, S. 405. 500).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서인 사도신경도 그렇지만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초대교회의 5개의 대교구 대표들이 니케아에 모여서 통과시킨 공의회문서인 “니케아 신조”에서 주장하는 “신이시고 인간이신 그리스도”라는 예수에 대한 형이상학적 칭호를 필자는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 이잘 모른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을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왜 니케아신조는 그를 신이며 동시에 인간이라고 하는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근거한 그리스도 이해 즉 신이며 인간이라는 이해는 카파도기아 신학자들에 의해서 더욱더 확고한 교리로 굳어졌고 우리도 예배에서 성만찬을 받을 때는 성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에 기초한 이 니케아신조로 신앙을 고백한다. 그래서 본회퍼는 형이상학적 기독론을 부정하고 예수를 이해하기 쉽게 “타자를 위한 존재”(Dasein für andere), 교회를 가톨릭 식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나 “신도들의 모임”이라고 하지 않고 “타자를 위한 공동체”라고 쉬운 말로 정의하고 있다.
하느님이이 창조주라고 해서 뭔가 위대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하느님의 위대성은 오히려 출애굽 사건에서 인간들의 고통에 동참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느님은 존경스러워보였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출 3:7-10).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의 신들처럼 왕들이나 귀족들의 신으로서 어마어마한 성전에 농성하지 않고 고통 받고 천대받는 노예들을 돌아보시고, 광야의 떨기나무 위에 나타나 모세를 불러 구원자로 삼는 하느님을 나는 믿고 따르고 싶다. 그 희브리 민족의 해방자이신 하느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천대받는 힘없고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의 하느님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아니 하느님 이론이다. 이러한 자비로운 하느님을 우리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 하느님은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 신론이 말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하느님,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형이상학적 하느님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우리들의 “아빠”(Abba)이시다.
이제까지 송 선생님이 늘 생각했던 하느님 이론에 대해서 나는 생각가는대로 써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송 선생님은 늘 전통적 교회의 그리스도 이론을 거부하시고 “역사적 예수”에 집중하셨다. 그 결과물이 2009년에 출간된 “역사의 예수 - 그는 누구이며 우리에게 무엇인가?”이다. 이 책은 그동안 그의 예수탐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사의 예수탐구의 여정은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당시 폴 틸리히 신학에 심취해 있던 송 선생은 “역사의 예수는 인간의 참다운 실존의 표상”으로 이해하고 거기서부터 인간화의 신학의 단초를 발견한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민중신학과 접하고 여기에 참여하면서 그의 역사의 예수 탐구에서 사람다운 삶이란 단초는 더욱 심화된다. 그는 예수의 성육신(즉 인간됨)을 해석학적 틀로 삼아서 일종의 유물론적 신학을 한다. 왜냐하면 유물론적 방법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절실한 생활 상태나 조건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역사의 예수탐구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는 전통적 교회의 그리스도론을 비판하는데 말하자면 사도 바울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는 그리스철학의 영향으로 시작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Hellenisierung), 즉 형이상학화를 비판한다. 즉 신학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추상으로부터 구체로, 영의 세계로부터 육신의 세계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지상에서의 인간의 삶, 곧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관계들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특히 한국의 전통적이고 보수적 교회들이 되뇌는 제반 교리체제들, 신인-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 그리스도의 속죄론 등은 폐기되거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송선생의 성육신(유물론)신학은 20세기 초 영국의 성공회 거대신학자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의 정치신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공회대주교 대주교로서 영국의 진보정당인 노동당에 입당해서 영국의 사회정책수립에 크게 기여했고 또 초기 에큐메니칼운동에서 진보적 신학의 방향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사실상 템플의 사상은 당시 영국 노동당의 사회정책에서 나타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송선생의 인간화 개념에 연결된다고 보인다. 그리고 1900년대 말 그리스 정교회가 예수의 성만찬을 가톨릭의 형이상학적 변용(화체설) 으로 이해는 것을 거부하고 사회적으로 해석하여 인간들 사이의 물질(식사)의 나눔 사건으로 해석한 것에서도 송기득 선생의 신학적 맥락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만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일치를 경험하려는 형이상학적 신학을 벗어나서 그리스도가 그의 몸과 피를 나눈 상징을 오늘날 개인주의적 탐욕적 자본주의 사회를 공동체적 나눔의 사회주의 사회로 변화시킬 것을 지향하는 변화시키는 정교회의 해석은 바로 역사의 예수의 정신에 상응하는 것이 아닐까? 성만찬은 원래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서 음식을 나누는 단순한 식탁공동체(애찬)였으며 이것은 초대교회형성과정에서 신격화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종교적 제의(성만찬)로 변용된 것이다. 따라서 송기득선생의 역사의 예수는 천상의 신격화되고 탈역사화된 그리스도의 재역사화를 지향한다고 보인다.
그의 생각의 논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난에 찬 팔레스타인 땅에 태어난 예수는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다. “때가 찼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마가 1:15). 그런데 프랑스의 신학자 로이세(Loisey)가 주장하듯이 예수는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 했는데 제자들이 그 대신 교회를 건설한 것이다. 예수의 직제자들인 베드로 야곱 요한이 예루살렘에 설립한 유대적 기독교는 역사에서 소멸되고 사도 바울이 헬레니즘 사상(형이상학적 그리스 철학)이 지배하는 땅 소위 이방 땅에 건설한 바울의 교회가 오늘날의 교회의 원조가 되었다. 그들은 헬레니즘 사상에 물든 이방인들(주로 그리스인들)에게 선교(辨證)를 하다 보니 그리스사상을 통해서 예수를 설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유대의 역사의 예수는 사라지고 그리스적 신앙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물들이 말하는 초대교회의 공의회 문서들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도론을 다룬 니케아신조(325년)이며 삼위일체론을 다룬 콘스탄티노플신조(481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의회의 문서들을 해석하고 신학화한 것들이 소위 초대교회의 그리스 교부들의 신학이다. 이 과정에서 지상의 역사의 예수는 증발되고 천상의 형이상학적 그리스도만 남게 되었다.
중세에 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의 기초는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철학이며 중세교회의 표준적 신학자인 아퀴나스 출신의 토마스의 신학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그 기초로 삼고 보편논쟁에서 실재론에 기초해서 가톨릭교회의 통일성과 교황 무오설을 옹호하는 기괴한 이단(칼 마르크스)을 산출해낸 것이다. 여기서도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던 역사의 예수는 실종되고 그 대신 수제자로 구형된 베드로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우스꽝스럽고 스승을 배반한 수제자 베드로의 후예들이 교황이라는 이름으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금과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기괴하게 디자인한 모자와 옷을 입고 각가지 금은보화로 장식한 값비싼 지팡이를 짚고 독일 벤츠회사에서 만든 방탄차를 타고 순례랍시고 쏴 돌아다닌다. 오늘날 벌판에서 허름한 모자와 초라한 옷을 입고 나무지팡이를 집고 다니는 가난한 목자의 상징을 탈취해서 이 교황이 어찌하여 사용한단 말인가! 요즘 가난한 민중들에게 높은 이자를 받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부자들과 닮은 상이 아닌가? 민중을 위해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던 역사의 예수는 간데 없고 배반자 베드로가 교회의 대표를 자처하며 교황으로 나선 것은 곧 교회가 민중을 배반한 것의 상징이 아닐까?
역사의 예수가 인간화를 위해서 세우려한 하느님나라는 도대체 그 실체가 어떤 것일까? 송선생님은 여기에 대해서는 조직신학자와 성서신학자로서 별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필자가 몇 가지를 부언하고 싶다.
오늘 아침 배달된 한계레 신문 17면에 보면 “삼성도 부러워할 대부업체 수익률”이란 기사가 실려 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생지옥 같은 나라인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나와 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사실상 IMF와 세계은행 등 거대 고리대금업자들의 천국이 아닌가? 한국의 사설대부업체들은 1천만 원을 1년 동안 꾸어주고는 이자로 최소한 2백만 원을 받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법에서는 대부업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39%까지 받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로 일본계 대부업자들인 산와 머니나 러시앤캐시는 일본에서 1-3%에 돈을 빌려다가 한국의 가난한 자들에게서 22-39%까지 이자를 받는다. 지난해 산와 머니는 약 1조 2천억을 빌려주고 4552억 원의 이자를 가난한 주머니에서 털어갔다. 이런 대부업체들이 한국에는 약 1만여 개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러시앤캐시처럼 돈을 잘 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가난한 서민들에게서 막대한 돈을 착취해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민들이 빌린 가계부채는 이미 1천조에 달했고 그 이자만 해도 매년 약7-80조에 달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가난해서 돈을 꾸어야 살 수 있는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매년 대충 잡아서 약 100조원에 달하는 돈이 부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렇게 가다가는 한국의 서민경제는 멀지 않아 파탄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은행도 파산하고 대부업자들도 망하게 되는 생지옥의 날이 곧 닥칠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가 금년도 복지기금으로 29조인가를 쓴다고 하는데 이러한 왜곡된 금융구조를 그대로 놓아둔 채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작금에 와서 경제사정이 점점 더 나빠지니까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서민들은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친 부자들의 정당(親富者 政黨=business friendly)이니 대기업이 잘되는 것(경기 띄우는 것)이나 신경 쓰고 서민들의 복지문제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NLL인가를 놓고 죽은 노무현 다시 죽이기에 골몰하면 그만이다. 민주당도 새누리당의 NLL 장단에 놀아나 강남 스타일의 춤이나 추고 있다. 국민(서민)의 49%의 지지를 받았던 국회의원 문재인도 하는 일 없이 소일하니 존재감이 점점 더 떨어진다. 새 정치 하겠다던 안철수는 요즘 주식이 올라서 몇 백억의 재산이 불어났다는 소문만 들린다. 이런 판국에 점령군으로 들어앉은 미군은 매년 1조원에 가까운 방위비를 더 내라고 한국정부를 윽박지른다. 주일미군은 매년 방위비를 줄여간다는데 주한미군은 쓰다 남은 7천억이나 되는 돈은 내놓지도 않고 더 내라고 하니 대한민국 나라은 미국의 봉이다. “정치가란 강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북한에 몇 십억 원 준 것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면서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구실로 앞으로 5년간 240조 5천억을 미국에 퍼주고 신무기를 사오겠다고 한다. 그 돈의 10/1만 북한에 퍼주면 북한 핵을 사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에서는 정치가나 부자들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것은 실망만을 가져올 뿐이다.
예수를 따른다는 한국의 교회들은 어떤가?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정치가와 국회 다음으로 세 번째 타락한 집단이 종교집단이라고 했다. 타락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종교가 가장 타락한 집단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내 노라 하는 목사 조용기는 아들과 함께 배임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매주일 거금을 내고 기독교계 방송을 사서 설교랍시고 떠들고 있다. 교회의 공적 방송인 기독교방송도 돈 없는 목사들은 설교는커녕 칼럼도 못 발표한다. 다른 기독교계통의 방송들도 돈 많은 목사들의 독차지가 되어 있다. 강남의 사랑교회 목사는 논문표절로, 수많은 목사들이 금전문제, 여성문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예수의 지상명령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한국에서는 큰 교회를 통해서 아니 큰 교회를 지향해서 세상의 탐욕과 명예와 권세를 누리려는 이들이 하느님과 예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 부산총회도 부자교회들의 한바탕 돈 잔치가 될까 걱정이다. 이렇게 예수의 하느님 나라운동을 배신하고 교권주의, 성직주의, 자본주의로 강고해진 한국교회, 특히 한국의 보수적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예수가 지향했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그 구체적 실천 가능성의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우리 동네(부천) 사는 감점순(85세)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정신질환을 앓다가 4년째 행방불명이다. 그 가난하고 등이 굽은 할머니는 그 아들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하고 오늘도 리어카를 끌고 종이상자 등 쓰레기를 모으러 다닌다. 이와는 달리 남편은 변호사고 부인은 사업을 하는 한 부부가 서울 강남에 살고 있다. 그들은 1년에 각각 약 5억 원씩 번다. 그런데 몇 년 전 세무서가 10억 가까이 버는 그들에게 종합과세를 해서 약 4억 원의 세금을 물렸다. 그러자 그들은 부부는 동체(同體)가 아니라 부부는 유벌(有別)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내서 승소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별과세로 각각 3천만 원씩의 세금을 내서 합계 6천만 원의 세금을 냈다. 그래서 그들은 4억 원을 낼 세금을 6천만 원으로 줄임으로써 약 3천 4백만 원을 되돌려 받았다. 이렇게 한국의 (헌)법은 가난한 모자는 한 몸(同體)이라고 보아서 부양의 의무를 지움으로써 가난한 할머니는 생활보호대상에서 제외되어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버는 강남의 젊은 부부는 한 몸이 아니다(有別)라고 하여 개별과세 함으로써 적은 세금만 낸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제반 법들이 다 이렇게 엉터리인 것은 그것들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법 체제에 의해서 국가가 운영되니까 그 나라에 사는 서민들은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서에 보면 부부(夫婦)는 一心同體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三綱五倫에 따라서 夫婦는 유별(有別)이라는 명제가 헌법적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三綱五倫에서 부모와 자식관계(父子有親)가 부부의 관계(夫婦有別)보다 더 상위개념으로 사용됨으로써 가난한 자식들 둔 노인은 혜택에서 제외되고 부유한 부부는 특혜를 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떼돈을 버는 부부에게는 有別의 원리가 적용되고, 행방불명된 자식을 둔 가난한 부모에게는 有親의 원리가 적용된다. 그러나 촌수로도 부자는 1촌이고 부부는 무촌이 아닌가? 참으로 가난한 자들(생활 보호자들)을 배신한 한심한 헌법정신이다. 왜 법의 원리가 이렇게 반이성적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헌법을 비롯하여 형법이나 민법 아니 세법 등은 권력자들과 돈 있는 자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의 법들은 이러한 잘못 된 법 체제를 민중들의 혁명과 투쟁을 통해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오늘날은 전 세계적가 맘몬을 섬기는 자본주의 금권통치들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다. 전 세계의 60억 인구가 몇 백 명의 자본가(은행가)들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고 그 지배의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대한민국도 몇몇 재벌들과 해외에서 들어온 자본가들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다.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자들은 정치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재벌들과 금융자본들의 하수인들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재벌들과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도 하고 법도 만든다. 따라서 오늘날 세상을 통치하는 자는 창조주 하느님이 아니라 맘몬이다. 이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예수님은 “하느님과 맘몬은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바로 맘몬을 섬기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이 사실을 역사적 예수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고, 그렇게 될 때 이 세상에는 맘몬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이 역사적 예수를 따라서 하느님 나라 일을 하시는 송 선생님의 건강과 건승을 빈다.
본 글은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신학비평> 50호에 즈음하여 해당 잡지에 실은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이를 게재합니다.
본 글은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가 <신학비평> 50호에 즈음하여 해당 잡지에 실은 글임을 밝힙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이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