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폭력만큼 무서운 것이 있을까? 신의 이름으로, 평화의 이름으로 빼어 든 칼에 희생된 수많은 생명을 생각할 때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신간 「종교의 두 얼굴」은 기독교 역시 평화와 폭력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나, 구약 시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평화 운동’이 계속돼 왔으며, 21세기 기독교 역시 평화에의 추구를 멈추지 않아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 박충구 교수(감신대 기독교윤리학)는 특히,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편들고 상대편의 몰살을 요구하는 야훼 하나님의 기록이 성전(聖戰)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스라엘 민족의 광포함을 요구한 하나님이 샬롬(평화, 화평)의 계약을 요구하신 하나님인지, 혹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해방 전쟁을 야훼 신앙에 편입시킨 것인지”는 신학적으로 따져 볼 문제라는 것이다. 또 전쟁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성서 전반에 걸친 평화사상과도 병립하기 어렵다며, 구약성서의 전쟁 이야기는 “군사주의적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진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는다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길레트(George Gillett)의 해석을 소개한다.
또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지했던 때에는 눈을 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 회개할 것을 명하십니다’라고 한 것을 언급하며, “구약성서의 … 전쟁과 승리에 대한 기록은 평화를 위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 무지한 시대의 기록이라고 봐야 한다. 야훼 전쟁에 대한 기록은, 보편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주의와 결부된 민족신(henotheistic God)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러한 민족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예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세기 들어서는 정당전쟁론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독일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 신학적 관점에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었는데, 2차 대전 이전에는 전통적인 루터의 관점, 즉 국가권력과 교회의 분리주의 입장과 국가권력에는 신적으로 위임된 권한이 있다는 관점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는 결국 정당한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국가권력을 인정, 전당전쟁론을 계승하는 것으로, 기독교 평화주의 전통과는 대치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루터교회의 습성은 결국 권력을 가진 편을 하나님의 편으로 이해하고, 약자를 통치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정치윤리를 계승했다”며, 이러한 전통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2차 대전 이후 독일 교회들이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재세례파, 퀘이커, 미국 가톨릭의 평화운동과 더불어 최근의 세계교회협의회(WCC)의 평화운동을 소개한다.
그는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평화의 길은, 핵전쟁으로 인한 공멸과 자멸을 초래할 수 있는 정당전쟁론이 아니라 비폭력 평화주의의 길 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