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식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한반도에 유대인 또는 히브리인이 와서 산 흔적을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성경책과 몇가지 책을 참고해서 우선 유대민족의 유랑과 이산(離散)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대인의 이야기책은 있어도 어느 책이나 그들의 이산과 세계 유랑의 역사와 그 흔적들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책은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노아의 큰 아들 셈족이 중동지역, 곧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비옥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일찍부터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아간 유력한 부족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지방의 문명은 셈족과 기타 종족들의 혼합문명이다.
인류의 여러 인종과 민족과 부족들이 지구 여러곳에서 살면서 기후의 변동이나 전쟁으로 거주지를 옮겨갔고 바다나 산이나 평야를 생활 여건을 골라 찾아서 이동하였다. 그러나 BC 3000년 경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의 상형문자 발명으로 기록을 남기기 이전의 선사(先史) 시대의 인류의 이동 역사는 바로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간단한 칼럼은 유랑민족의 하나인 히브리민족의 어느 한 부족이 혹시 한반도에 와서 산 적이 있었는지의 호기심을 풀어보자는 한 시도이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바벨탑의 정확한 위치와 시기는 잘 알수 없지만 셈족의 여러지파가 일찍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작은 도시왕국들을 세워서 살았다. 그리고 그 작은 두강 하류 남쪽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수메르족이 일찍 문자발명과 더불어 문명을 발전시켜 우르를 수도로 하여 약 500년간 강력한 제국을 세워갔는데 BC 2360년 경에 수도 아카다(AKKADA)를점령하고 수메르 제국을 타도한 아카다 부족이 셈족의 부족들이었다. 그러나 이 아카다 왕국이 약 200년 후에 산악지대의 강폭한 한 족속인 구티(GUTI) 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이 때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일대 정치적 혼란이 시작되었고, 우르 지방의 주민들이 각지로 흩어져나갔고, 헷족(HITTITE)도 왕국을 설립했었다.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시기도 이째 즉 BC 2000~1900년 경으로 추측된다. 즉 히브리인 떠돌이인 족장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야곱이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말한 그대로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했지만 그의 동족 셈부족들 중에는 다른 곳으로 흩어져 갔을지도 모르니 그곳이 남방 이집트나 아라비아나 아니면 동쪽 중앙아시아 지역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BC 2000 년 경에 중동에는 민족 대 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실은 BC 4000년 경에 민족 대이동이 한번 있었다고 하는데, 아리안족(인도-유러피안)이 이란과 인도 쪽으로 이동하면서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 해안지대와 인도차이나 지방과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흩어져갔다고 하는데, 한반도의 주민의 얼굴형상의 두가지 중 하나인 남반도인들의 얼굴은 인도차이나와 일본인 얼굴을 닮았다고 하고, 한반도 북쪽 사람의 얼굴은 몽고인의 얼굴형상이라고 하니, 이것은 민족이동의 진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된다.
이 칼럼에서는 유대인의 이산과 유랑의 흔적을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므로, 아브라함 이후의 족장들의 후손들의 이산 역사를 살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것이 BC 1300년 경이라고 하는데,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일일이 축복했다. 이 때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축복이라기 보다 그들의 자손이 이스라엘 열두지파 사이에서 흩어져서 한 부족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므온의 후손들의 행방이 어디였을까 알수가 없다. 그들이 팔레스틴에서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존재도 없이 살다갔는지, 아니면 먼 곳 다른 지방으로 가서 행방불명이 되었는지, 그래서 그 지파 중의 잃어버린 한 지파가 된 것인지...?
거슬로 올라가서 아카다 제국을 멸망시킨 구티 제국의 우르왕조를 멸망시킨 첫번째 바벨론 제국이 BC 1836년에는 건국되었는데 함무라비(HAMURABI) 왕조는 훌륭한 법률제도를 만들고 속국 소왕국들에게 어느 정도 자치의 자유를 주고 있었는데, 헷족의 도시국가가 세력을 키워서 바벨론을 멸망시켰다(BC 1530). 그리고 헷족이 유대인의 가나인 정복으로 BC 1200년에 멸망하였다.
헷 제국의 수명은 비교적 짧았고 그대신 메소포타미아 북방에 있던 앗수르(앗시리아)가 힘을 키워서 헷 제국을 이어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와 팔레스틴과 이집트까지 패권을 행사하였다. 이 때 북방 이스라엘 왕국이 BC 734년에 망하여 왕과 귀족들은 아시리아로 잡혀갔고 그 밖의 이스라엘 10지파 사람들은 흩어져서(열왕 17:20) 역사에서 사라졌고, 남방유다 왕족이 살아남았으나 이 유5다지파의 운명은 결국에는 세계 유랑민족이 되고 만 것이었다.
갈데아인들이 신바벨론제국을 건국한 후로(BC 625)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갔었는데 페르샤에게 멸망당하여(BC 539) 유대인들이 최종적으로 바벨론에서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족은 돌아왔으나 돌아오지 않고 남아서 살던 유대인들도 있었으니, 그들이 언제까지 거기에서만 남아 살았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의 유랑과 이산의역사를 간단히 살핀 것이고 신약시대 즉 희랍로마시대의 그들의 유랑의 역사도 간단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기원 70년에 유대인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함락하여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의 넓은 지역 여러곳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136년 하드리단 황제 때 유대인들의 항쟁으로 예루살렘이 완전히 이교도시가 되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에 남아 살아갈 수 없게 되어서 그 때부터 1945년 경까지 무려 1800 여년 동안 세계유랑민족이 되었다. 그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이제 성전 제사종교를 버리고 모세의 계명과 토라(모세5경)의 종교와 도덕과 유대인 사회 공동체 생활의 교육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동족보존책으로 살아남았다. 어느 한 유대인이라도 납치되어 가면 일주일 이내에 피랍된 유대인을 반드시 구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유대인 성엔 120명 이상이 모여 살면 반드시 회당을 지었고, 그리고 아동 10명 이상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학교를 세워서 유대인 종교와 민족 교육을 독자적으로 하여 민족의 생명을 유지해왔다.
북방 이스라엘의 10지파가 역사에서 사라졌고 시므온의 자손들이 흔적도 없게 흩어져서 잃어버린 한 지파가 되었고 유다의 부족은 로마제국 치하에서 이산되었다.
한국에 온 초대 서양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인의 풍속들과 인상을 보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한 지파가 한반도에 왔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이 의문을 풀어줄만한 어떤 것들이 히브리인들과 한 민족의 생활습관이나 제도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까?
첫째로 혼인잔치의 풍습을 보면 한국에서는 신랑이 신부집을 찾아가서 혼례를 치르는데, 신랑이 신부집 가까이 왔을 때 신랑의 들러리들이 신랑이 온다 길을 열어라,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신랑을 보려는 사람들이 길을 메우고 야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유대나라에서도 신랑이 신부집에 가까이와서 소리를 치면 신부가 신랑을 맞으러 나온다. 밤이면 등불을 켜고 신부가 나온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말하기를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으려고 서서 기다린다고 말한대로 유대인의 혼인잔치가 한국과 비슷하다.
다음으로 상가의 풍속인데 한국인들은 부모나 형제가 죽으면 큰 소리로 통곡한다. 이런 통곡은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들을 수 없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 여러군데서 찾아본즉 반드시 죽은 사람을 위한 통곡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 야곱이 죽었을 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인들이 70일 동안 통곡했고 요셉도 7일간 통곡했다고 했다. 그들은 때로 울어주는 사람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그렇게 우는 것을 보고 가나안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또 한국에서는 부모상 때 더욱 더 많이 통곡하고 부모의 죽음이 자식들의 불효의 죄값이라고 생각하고 굵은 베옷을 만들어 입거나 걸치고 통곡하는데, 이 습관도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마태복음 11장 21절에도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죄를 회개한다는 예수의 말이 있다. 에스더 4장 1절에도 그런 말이 있다. 7세기 이후 모하메트 종교가 중동일대를 점령하여 통치했을 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초상때 우는것을 금지했다. 또 한국 상가에서 가족들 중에는 베옷 대신 흰 무명옷을 입는데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고, 일본에서는 검은 옷을 입는다. 대체로 한민족은 고대로 흰옷을 입어서 백의민족이라고 불렸는데 유대인들도 흰 옷과 희고 긴 두루마기를 입고 살았다.
또 이조시대에 왕의 의상을 보면 긴 두루마기에 가슴띠를 띠었는데 금으로 만든 금띠를 띤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가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조 때 왕의 가슴에 금띠를 띠고 왕의 금관은 보석을 달고 있었는데, 이것은 옛날 모세가 제사장들의 가슴에 금띠를 띠게 하고 또 앞쪽에 금으로 만든 판 성직패를 붙여준 것과 유사하다. 이 시대에 제사장은 신정(神政)시대라서 제사장이 곧 왕이었다(출28:22). 사무엘도왕의 위치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모세는 아론에게 가슴받이를 달아주고 보석을 거기에 달아주었다.
그 밖에도 인사말이 또한 서로 같다. 유대인의 일상적인 인사는 샬롬 곧 안녕인데 한국인의 인사말과 같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율법과 많은 계율로써 백성을 교육하고 훈련해서 그 계율을 어기거나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가져야 했었는데, 이것을 우리 말로 표현하면 점잖은 사람 교육이었다. 초대선교사들이 한국인을 보고 첫 인상이 점잖아보여 유대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재래 한국인 가정에서 자녀들을 점잖은 사람이 되도록 훈계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신사도이다.
그리고 몸이나 집안을 깨끗하게 하는 일도 공통된다. 한국인들은 발을 씻고 손을 자주 씻고 그리고 집안의 마루나 방바닥을 자주 쓸고 닦고 해서 깨끗하게 한다. 유대인들도 집안 식구가 손님이 오면 발을 씻을 물을 주고 손도 깨끗하게 씻게 한다.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에는 밖에서 도는 유행병이 침범 못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손발을 늘 깨끗하게 씻는 습관 때문이다. 미국선교사들이 한국인 신자 가정이 방이나 마루나 어디나 깨끗하게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한반도에서 유대인 또는 히브리민족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시도는 흥미있는 일이지만 역사적 증거가 없는 것이어서 쉽게 다룰 문제는 아니지만, 근래 이것을 흥미있게 생각하고 질문을 일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를 지나친 비약적 추측으로 풀려는 사람이 쓴 어떤 책도 있는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