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안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무관을 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둘러싸고 있다. ⓒ베리타스 |
어머니의 품에 안긴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아기가 무관을 쓴 이들에 의해 둘러싸여 경배와 찬양을 받는다. 갓을 쓴 어떤 선비가 뿔 달린 도깨비로부터 시험을 받고, 물가에서 누군가로부터 물 세례를 받는다. 전자는 동방박사의 찬양을 받고 태어난 아기 예수를, 후자는 광야에서 40일 간 사단의 시험을 받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운보 김기창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이 운보의 작품들 중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작품들을 선별해 전시했다. 성서의 예수 탄생부터 예수의 주요 행적에 이르기까지 스토리 라인에 충실히 전개되는 이번 작품들은 총 30여 점. 운보식 성화에 다름 아니다.
예수의 삶을 전통 회화 형식으로 그려냈고, 전통 한국문화를 배경으로 성서를 재해석해 (미술사에 있어)기독교 토착화를 시도한 운보의 작품들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금발머리에 오똑한 콧날로 대표되는 서양인 예수라야 예수가 아니라, 갓을 쓴 동양인 예수도 예수라는 시선의 변화를 꾀한다.
다작(多昨)한 것으로 알려진 운보의 ‘예수의 생애’는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군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고난이 예수의 고난과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30여 점으로 이뤄진 ‘예수의 생애’ 연작을 시작해 1년 반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전시회에서는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작품 외에 대표작 ‘군마도’ 등도 관람할 수 있다. 총 30 여 점이 걸렸다. ⓒ베리타스 |
한편, 전시에는 ‘예수의 생애’ 연작 외에도 운보의 대표작 ‘태양을 먹은 새’, ‘태고의 이미지’, ‘춘향 시리즈’, ‘군마도’ 등이 나온다. 청각장애가 있는 그에게 역동적으로 힘 있게 표현된 ‘군마도’ 등은 그로 하여금 소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운보는 7세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그의 어머니의 신앙을 그는 물려받았다. 이후 천주교 신자가 되어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그가 천주교 신자이기에 작품 설명의 주요 텍스트는 천주교 성경 경전으로 삼고 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믿음을 가진 신자였다. 그런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선택받은 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살이란 어린 내가 열병을 앓아 귀가 먹었겠는가. 어쨌든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기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이란 것을 절감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10월 17일부터 시작된 전시회에 관람객수는 1천 5백 여 명을 넘어섰다. 전시회는 내년 1월 19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서는 매 시간 40분씩 운보의 작품을 설명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이 밖에 운보가 생전 작품 활동에서 사용했던 유품들도 전시돼 주목을 모은 전시명은 ‘예수와 귀 먹은 양’. 성인은 9천원, 초중고교생 7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