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시민이 보는 에너지 위기와 그 대응
▲유미호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베리타스 DB |
개미와 베짱이가 있다. 개미는 늘 전기가 부족해 불편하다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베짱이는 “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니?”하고 묻는다. 개미가 “발전소 짓는 일을 서둘러야지.” 한다. 그러자 노래하던 베짱이는 "절전하면 됐지. 뭘 그리 열심이니?"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경험을 떠올리는 이들은 대개 개미가 ‘옳다’고 할 지 모르겠다. 지난 해 인도의 블랙아웃은 전 지구 인구의 9%에 해당하는 6억7천만 명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는 2011년 9월 사상 초유의 순환정전을 겪고, 올 여름도 블랙아웃을 염려하며 냉방기 가동 중지, 실내조명 소등, 사용하지 않는 사무기기 전원 차단 등으로 인한 힘겨워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욕심껏 에너지를 사용한 탓에, 지금 지구는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그 미래가 암울하다. 19세기 중반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가장 더웠던 10년 가운데 9년이 2000년 이후에 몰려 있을 만큼 유례없는 더위가 계속되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기후 재난의 빈도 또한 잦아지고, 그로 인해 수천의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난민이 되었다. 이번 세기 안에 지구 온도가 평균 1~5℃ 올라가(우리나라는 3~5.9℃), 해수면 상승은 앞으로 50년 안에 인구가 밀집된 지역들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한다. 이미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발루 국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뉴질랜드로 이주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는 방사능 오염 문제가 우리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이래도 부족함이 주는 ‘불편’을 덜기 위해 계속 지어야 될까? 물론 아직도 지구 상에는 13억 명이나 되는 이들이 필요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해 ‘생존’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해가 지고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등유램프를 쓰다가 화재나 호흡기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매년 150만 명이다. 그 가운데 65%는 아이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너지빈곤가구(소득의 10% 이상을 광열비-전기, 난방비-에 지출)가 120만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야기 속 개미처럼 2027년까지 석탄 화력발전소를 12기 추가 건설하고 2030년까지 전력 중 원자력 비중을 59%까지 확대하려는 것이 맞장구를 쳐야 하나?
지난 8년간 초고압 송전탑(765kV) 건설과 씨름하며 흘려온 밀양 주민들의 눈물과, 지금도 그곳을 향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발걸음과 종교인들의 기도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달리 답한다.
발전소 건설에 무관심한 베짱이를 ‘게으르다’고 핀잔을 줄 수만은 없다. 베짱이가 노래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데는 나름의 이유와 역할이 있을 거다. 여름내 노래를 부르는 베짱이는 본래 그렇게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북미 서남부 지역 인디언들도 ‘피리 부는 베짱이’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노래를 불러준 덕분에 곡물들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그 부족함에 있지 않다. 문제는 에너지에 대한 탐욕에 있다. 앞서 보듯, 더 많은 소비를 향해 달려온 우리의 욕심이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가게 될 지구를 큰 위협에 빠뜨렸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의 저자가 말하듯 지구시민이 쓰는 에너지 중 80%를 20명이 쓰고 있고, 80명이 나머지 20%를 나누어 쓰고 있다고는 하나, 중요한 건 ‘나’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는 에너지가 발전소 건설을 합리화해주고 누군가에겐 기후붕괴와 방사능으로 인한 죽음과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 그 정도가 거의 절망적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 상에는 이 같은 절망에 맞서 싸우며 ‘희망을 노래하는 베짱이’와 같은 ‘지구 시민’들이 있다. 향후 50년을 이대로 더 바라거나 쓸 경우 지구가 무너질 것을 알기에 ‘성장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기대치를 낮추는 이들이다. 이들은 원하고 필요한 것을 계속 부추기는 것에 맞서, 개인의 풍요가 아닌 다수의 기본적 필요가 채워지는 지구시민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원전과 그 폐기물의 위험성을 알고 불편을 즐겨 원전 증설을 막아낸 수많은 독일 시민들이 그러했다.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대도시로 송전될 전기를 초고압 송전탑에 맞서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밀양 주민들과, 잇따른 비리와 잦은 고장 탓에 신뢰를 잃고 또 수명을 다한 원전에 맞서고 있는 이들 모두가 지구시민으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태양광발전을 통한 수익을 에너지빈곤층과 나누거나 태양광 랜턴을 보급해 아이들에게 공부할 기회는 물론 건강한 삶을 누리게 돕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지구가 처한 절망적 위기를 두려워하는 대신, 지키고 돌봐야 할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오히려 자유함을 얻는다. 그 동안 욕심껏 에너지를 소비해온 것을 날마다 회개하면서 그 사용을 줄여, 이웃과 자연의 고통을 덜어내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아주 불편한 진실’에 맞선 ‘조금 불편한 삶’을 사는 베짱이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다함께 부를 그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