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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섭의 미술산책] 無心의 십자가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루오, <서로 사랑하라> 1927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동아시아 미학의 개념인 ‘풍류(風流)’로써 표현할 수 있을까? 국문학자 신은경은 풍류(風流)를 風流性과 風流心으로 구분해 풍류심의 미적 구현으로서 ‘흥(興)’, ‘한(恨)’, ‘무심(無心)’의 美로 구별한다.[신은경, 『風流.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87-90.] 
 
예수는 돈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중의 새를 보라”(마 6:26) 말씀 하셨고, 입는 것에 대해서도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마 6:28)고 말씀하실 뿐이다. 지극히 담백(淡白)하고 무사[無邪(私)]한 여세무쟁(與世無爭)의 마음상태를 드러낸다. 예수는 놀이에로의 초대를 거부하는 자들과 대면하기도 했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마 11:17f.)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삶의 춤을 로마권력과 유대인의 증오의 벽 앞에서 멈추지 않고 無心코 계속 절로절로 추었다.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의 마지막 말은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막 14:36)이며, 십자가 위에서의 마지막 말은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46)이다. 예수는 고통으로 인한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하나님과 一體가 되었다.
 
이를 받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라고 화답한다. 
 
동아시아의 미학에서 “無心의 세계란 物我一體화된 세계, 있는 그대로의 사물 현상 속에 주체가 용해되어 주체와 객체를 둘로 갈라낼 수 없는 상태로 표현된다. 대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림(沒我)으로써, 대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참으로 새롭게 알게되는 경지, 즉 ‘以物觀物的’ 태도에 기반하여, ‘我’를 소제(消除)하는 무조작∙무인위(無造作∙無人爲)의 경지, 사물의 원래모습의 자족함을 긍정하여 我가 어느새 物의 본모습과 하나가 되는 경지, 사물∙대상 속으로 뛰어들어가 내면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스스로가 그것의 생명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경지로 언술화되는 것이다.”[신은경, <풍류>, 413] 
 
無心의 세계가 物我一體화된 세계라면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나를 버리고(沒我) 십자가의 사건에 내가 용해되어 나 자신과 십자가가 둘로 갈라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무심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로써 십자가의 진리를 관통함으로써(以十字架觀十字架) 我가 어느새 物(십자가)의 본모습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한자의 ‘觀’은 단순히 육안으로 보는 ‘見’이나 ‘視’가 아니라 내면의 깊이를 헤아리는 눈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혜안(慧眼)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십자가의 ‘無心’의 美感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풍류의 무심(초탈감)이 주로 自然을 대할 때 나타나는 미감이라면, 예수의 무심은 하나님 사랑의 무심, 하나님의 거두는 창조를 대할 때 나타나는 무심이며, 그리스도인 바울의 무심은 십자가 앞에 직면한 무심, 無心의 십자가이며 십자가의 無心일 것이다. 나는 조르주 루오의 한 십자가 책형을 보면서 ‘無心의 십자가’와 생각과 감정을 이입하여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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