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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섭의 미술산책] 야곱 이야기(3): “야곱의 사닥다리”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렘브란트, <야곱의 꿈>, 동판화(etching), 10.6x7cm, 1655.
고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늘을 동경해왔다.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께 돌아가는 인간의 운명이 반영된 것처럼 지금도 우리는 언젠가는 돌아갈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고대 시대에는 높은 곳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산당과 탑으로 표현되었고, 그래서 하늘과 가까운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간 곳(출 19장), 엘리야가 바알/아세라 예언자들에 맞서 불의 제단을 벌인 곳도 산이었고(왕상 18), 예수님도 당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 높은 산에 오르셨다(마태 17). 
 
그중에서 하늘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잘 드러낸 이야기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다. 흥미롭게도 바벨탑 이야기는 창세기 28장 야곱의 사다리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꼭대기가 하늘로 뻗은 모습은 비슷하게 언급되지만(창 28:12), 바벨탑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에 하늘에 닿을 수 없었던 반면, 벧엘의 사다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야곱이 본 것처럼 천사들이 오르내렸다. 특히 하늘도 드나들 수 있는 “하늘의 문”(שער השמים Sha’ar HaShamaim)과 하나님이 사시며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בית אל Beit El)이 인상 깊다.(창 28:17)
 
즉 “신들의 게이트”라 생각한 “바빌론”에 대응하여, “하나님의 게이트”는 “가나안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축복을 가로챈 것이 드러나자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어머니 리브가의 친정 하란으로 도망간다. 집을 떠나면 개고생길. 가는 도중 ‘벧엘’에서 잠을 자다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새로운 생각은 야곱이 이미 정해진 성소(聖所)에서 자다가 신성한 것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는 장소가 곧 성소가 된다는 사실이다. ‘벧엘’의 옛 이름은 ‘루스’였다. 
 
렘브란트의 이 그림은 유대인 학자 Menasseh ben Israel이 펴낸 스페인 책 <영광스러운 돌 혹은 느부갓네살의 석상에 대하여>그려진 네 가지 삽화 중 하나이다. 다니엘 2장 31-35절에 묘사된 대로 왕은 큰 신상이 날아온 돌에 의해 부서뜨려지는 것을 생생하게 본다. 유대인 학자 므나세에 의하면 이 돌은 야곱이 잠을 잘 때 베고 잔 돌이다. 하여 야곱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한 중앙에서 돌을 베고 잠들어 있다. 그리고 이 돌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돌은 새 이스라엘이 세워질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에칭의 처음 프린트에서는 사다리가 야곱이 누워있는 곳에서 끝나지만, 둘째 이후의 프린트에서는 땅에 이어지는 것으로 그렸다. 사닥다리의 중앙은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그곳에 야곱이 누워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의 상상력은 한(限)이 없고 하늘의 구름처럼 둥실둥실하며 대기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바늘구멍만한 틈새에도 어느새 스며든다.
 
그림에서 우측의 천사는 오른 손을 뻗어 사닥다리를 잡고 하늘로 오른다. 야곱의 변신이기도 한 것 같다. 화가는 사다리에 오르내리는 천사를 그리려고 한 것 같다. 위쪽 좌측에 또 세 명의 천사가 보인다. 렘브란트는 귀엽게 꼬마천사를 그렸다. 맨 위의 천사는 아래 천사의 얼굴을 감싸면서 곤하게 잠자는 야곱을 측은히 드려다 본다. 다른 천사는 야곱에게 안수하며 축복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빛줄기가 되어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의 세계 안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비로소 두려움을 극복하고 축복을 믿고 자신이 베개로 삼았던 돌을 세워 기둥을 만들고 기름을 붓는다. 하찮은 돌 같은 내가 단(檀, 기둥)이 되어 신의 현존의 상징, 곧 하나님의 집이 되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창 28:22)이 되다니, 하나님의 창조에 버금갈만한 얼마나 놀라운 창조적 사건인가! 
 
야곱은 가장 힘든 순간에 主님을 가장 가까이서, 主客이 분열되기 이전의 상태인 무의식, 곧 꿈속에서 만난 것이다. 그러나 이 만남은 한갓 밤의 꿈(夢)에 불과한 것인가? 이 만남은 한참 후에 얍복 나루에서 한바탕 거하게 치룰 천사, 아니 하나님과의 씨름의 전조에 불과한 것인가?
 
일생은 가슴에 횃불 하나 심어
순교하듯 일하고
사랑하는 이의 몸속에 가을 무덤을 파는 것
가라앉는 밤바다에
온몸으로 저무는 것이다
-신현림, “유배된 시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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