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29일자 「한겨레」에서 ‘감사’에 대해 논하며 “허허막막한 대우주 시공간 속에서 이렇게 생명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놀랍고 고마운 기적이라고 느끼는 것”으로서의 감사를 말했다.
김 교수는 ‘감사, 그 마음의 삼중주’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인간존재에 대한 종교학자의 따뜻한 시선을 나눴다.
김 교수는 최근 한 신간서적이 현대 한국인의 심리를 ‘현세주의 및 배상주의 성향을 가지고 현실적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기복심리’라고 평가한 대목을 소개하며, “연구 결과를 수긍하면서도 씁쓸하고 슬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일말의 의심이 일어난다. 과연 그런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 ‘뽄새’ 전부이고 실상일까? 혹시 바다 수면 아래 해류는 보지 않고 출렁거리는 성난 파도만 보고 너무 비관적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일상생활은 경쟁심·적개심·탐욕·원망 등이 지배하는 그늘만 있는 게 아니다”며 “’감사’라고 표현하는 그 어떤 감정, 곧 이른 봄과 초가을 해맑은 양광 같은 ‘고마움’이라는 심정이 부정할 수 없게 우리 삶과 생활 속에 깃들어 있다는 진실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감사’의 마음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세 가지는 ‘덧셈법 감사’, ‘뺄셈법 감사’, ‘제로셈법 감사’다.
먼저 ‘덧셈법 감사’는 “어떤 소유나 사건이 나의 삶을 질량적으로 더 풍성하게 해줘서 느끼는 이유 있는 감사”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실존적 삶 속에서 자신의 에로스적 욕망(‘인간 실존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풍성하게 해주는 그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생명충동’)이 충족될 때 느끼는 감정”으로서, 예를 들어 “오래 기다리던 아기를 얻은 경우, 직장을 얻거나 입학시험에 합격하거나 투자한 주식에서 이익을 보았을 경우, 칭찬을 받았거나 타인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때” 느끼게 된다.
이에 반해 ‘뺄셈법 감사’는 “분명히 셈법으로 보면 손해요 줄어들거나 빠져나간 결손이데 감사의 맘이 드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악성암 진단을 받은 환자와 가족은 첨엔 절망하다가도 좋은 의사와 약을 만나 앞으로 5년 생명이 연장되었다는 결과를 듣고 한없이 감사한다. 평생 모은 재산이 화재로 불타 버렸는데, 불구덩이 속에서 아기와 가족 생명이 무사한 것만을 감사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로셈법 감사’에 대해 김 교수는 “감사라는 마음의 삼중주에서 가장 신비한 범주의 감사”라고 소개했다.
이름이 ‘제로셈법’인 이유는 “중학교 셈법에서 어떤 수에 제로(zero)를 곱하거나 나누는 셈법”을 은유로 하여 붙였다. “10이라는 수에 영을 곱하면 영이 되고, 영을 나누면 무한이 된다. ‘제로’는 철학에서 존재의 죽음, 곧 ‘무화’(無化)의 상징이고, 종교에서는 온전함과 영원을 상징하는 ‘텅 빈 충만’의 상징이다. … 어떤 수에 영을 곱하면 영이 되듯이, 나의 소유와 사회적 신분이 얼마나 크든 작든 죽음 앞에서는 무화된다. 그런데 삶을 나누는 셈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맘은, 유한자가 자기부정을 매개 또는 계기로 하여 영원과 무한으로 생명이 잇대어지고 승화되는 역설을 예감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이름이 ‘제로셈법’인 이유는 “중학교 셈법에서 어떤 수에 제로(zero)를 곱하거나 나누는 셈법”을 은유로 하여 붙였다. “10이라는 수에 영을 곱하면 영이 되고, 영을 나누면 무한이 된다. ‘제로’는 철학에서 존재의 죽음, 곧 ‘무화’(無化)의 상징이고, 종교에서는 온전함과 영원을 상징하는 ‘텅 빈 충만’의 상징이다. … 어떤 수에 영을 곱하면 영이 되듯이, 나의 소유와 사회적 신분이 얼마나 크든 작든 죽음 앞에서는 무화된다. 그런데 삶을 나누는 셈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맘은, 유한자가 자기부정을 매개 또는 계기로 하여 영원과 무한으로 생명이 잇대어지고 승화되는 역설을 예감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제로셈법 감사’는 재산 정도, 교육 정도, 생활 현실, 사회 신분 등과 관계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감사하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폐지를 모아 팔고 떡장수를 하여 모은 돈을 아낌없이 장학금으로 내놓는 이 땅의 할머니”라며, 그들은 “소유보다 존재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사람들”로서 우리 주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고.
마지막으로 그는 “그들은 자기 생명과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항상 경이롭고 신비하고 감사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허허막막한 대우주 시공간 속에서 이렇게 생명체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놀랍고 고마운 기적이라고 느끼는 것이다”라며 “가을걷이가 끝나고 논밭이 이제는 텅 비었다. 세 종류 셈법감사가 모두 의미 있지만, ‘제로셈법 감사’를 특히 음미할 계절”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