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심광섭의 미술산책] 야곱의 씨름-렘브란트의 씨름(2)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렘브란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659-60.

렘브란트는 작품,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을 통해 무엇을 만났고 어떤 메시지를 남기려 했을까? 렘브란트는 그림에서 야곱의 투쟁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다시 닫는다. 우선 두 인물이 씨름하는 장소가 없다. 어두움만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다. 그러니 자연 상대적으로 환하게 그려진 두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의 마음과 영혼의 움직임을, 내면성을 그리고자 한 것인가? 작품의 배경은 진한 갈색 톤이며 두 인물의 상반신만 그려져 있다. 렘브란트는 도상학의 전통을 따라 천사의 모습을 한 인물을 그렸지만 두 날개는 배경 색과 비슷해 잘 구별이 안 되게 했다. 천사의 흰옷을 입고 있으며 그 빛나는 몸이 배경과 대조되어 도드라진다. 천사의 얼굴은 화면의 중앙 위를 점하고 있고 야곱의 얼굴은 그 아래에 쳐져 있다. 야곱이 입은 홍갈색 옷은 천사의 날개의 색과 함께 배경 색과 유사해 배경 속으로 스며든다는 느낌이다. 
 
반면, 천사의 얼굴과 옷, 그의 자유로운 어깨, 그의 오른 손과 목 그리고 야곱의 얼굴만이 빛의 조명을 받고 다른 모든 것들은 어둠 속에 침잠한다. 빛이 화면의 여러 곳에 분산되지 않고 한 곳에 집중된다. 그리고 그 빛은 투쟁 분위기를 고조하는 빛이 전혀 아니다. 또한 빛이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에서 많이 나타나는 “작품 내재적인 빛”이 도드라진다. 외부로부턴 비추인 빛에 의해 작품의 포인트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내부에서 솟아나는 밝은 빛에 의해 조명된다. 빛은 여기서 전적으로 표현을 위해서만 봉사한다. 빛에 의한 공간적 집중과 화면의 구성은 야곱과 관계하는 천사의 이미지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천사의 모습이 이 그림에서는 특별한 형태를 갖추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독자의 상상력이 성서의 빈 여백을 색칠하여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순간일 것이다.
 
그림에서 야곱의 태도와 행동은 천사와 비교하여 지극히 소극적이다. 고갱이나 들라크루아의 작품은 물론이고 샤갈의 그림과 비교해 봐도 야곱의 태도는 매우 수동적이다. 극렬하게 저돌적으로 목숨을 다해 투쟁하는 야곱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야곱의 두 팔은 천사를 안은 채 뒤로 휘말려 사라지고 있는 반면 천사는 오른 손으로 야곱의 목을 얼싸안고 있다. 천사의 얼굴은 사랑스럽고도 슬픈 표정이다. 그러나 그 팔은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야곱의 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측은지심의 얼굴이다. 천사가 야곱을 안고 있는 모습은 전체적으로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애정서린 모습이다. 세상에 어떤 권투 선수가 저렇게 사랑어린 눈으로 끌어안고 있는 가 말이다. 그렇지만 야곱의 옆구리까지 치켜 올린 천사의 오른쪽 무릎과 야곱의 허리를 바치고 있는 천사의 왼 손은 과격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 천사는 야곱을 제압하려는 기세가 역력하다. 무릎과 왼손으로는 야곱을 과감하게 제압하려는 힘이 보이고 오른팔로는 가뿐하게 끌어안은 애정 어린 포옹에서 천사의 모호한 몸의 태도를 엿 볼 수 있다. 
 
성경 이야기에서 야곱에 대한 천사의 ‘폭력’과 ‘축복’의 서로 비대칭을 이루는 모순적 合流가 렘브란트의 그림에서는 천사의 폭력적 제압과 애정 어린 포옹의 모호한 태도로 전이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 할 수 있다. 천사의 몸에서 인상적으로 발하는 은은한 빛은 감겨진 야곱의 눈을 더욱 대조적이며 몽환적으로 비춘다. 성경의 신체적 폭력과 축복이라는 모순적 결합의 경우에서처럼 그림에서 천사의 힘 있는 제압과 애정 어린 포옹사이에서 유발되는 긴장을 해소할 해명이 필요하다. 
 
천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긴장된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에로틱한 모습으로 비추인다. 그 얼굴에서 격한 씨름을 했거나 투쟁을 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천사의 조용하고 담연(淡淵)한 태도에서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확고한 제압’과 ‘사랑스런 포옹’의 不二적 융화(融和)를 읽어낼 수 있다. 렘브란트는 천사의 날개를 통해서보다 천사의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천사의 초월적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것만 같다. 천사의 위엄은 야곱과 천사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천사의 시선은 야곱을 바라보지 않고 야곱의 어깨 혹은 어깨너머로 향한다. 야곱의 눈은 성서에서와는 달리 감겨 있다. 싸움으로 씩씩거리는 얼굴이 아니라 묵상적이고 명상적이다. 야곱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서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지극히 거룩한 행복(visio beatifica Dei)을 누리는 사람 같다. 이러한 모습은 성서의 서술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성서의 본문과 렘브란트의 그림의 또 다른 공통점은 씨름하는 천사 얼굴의 모호성이다. 천사의 부드럽고 가녀린 얼굴의 특징들은 한 여성을 생각하게 하거나 최소한 양성적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17세기 천사의 얼굴은 중성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렘브란트의 다른 천사 그림들과 비교하면 여기 그려진 천사의 얼굴은 대단히 여성적이다. 적어도 성경 본문에서 언급된 “어떤 사람(남자)”의 이미지가 여기서 강하게 상대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천사의 어깨에 걸쳐진 옷이 섹시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려는 처녀처럼 미끄러져 흐르고 천사의 다리 또한 옷이 걷혀져 있어 에로틱한 느낌을 더욱 자아낸다. 반면 천사는 힘 있는 자세와 날개로써 신적 특성을 나타낸다. 이로써 천사의 모습에는 신적인 천사의 위용과 에로틱한 매력을 풍기는 여성의 모습이 하나의 형상에 녹아 있다. 
 
한 손에 거머쥐려는 장악의 태도와 고혹적인 포옹의 긴장감 넘치는 태도를 ‘성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 Thus the entangling gesture suggests an embrace more than a fight; love-making rather than wrestling(Mieke Bal) 그러나 이것은 또한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성행위를 동일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서는 원수가 된 형제와 하나님 사이의 대립을 통해 나타난 야곱의 이중적 정체성을 적대적 관계에서 형제와 화해하는 만남으로 이행하는 혁명적 전이의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렘브란트는 작품을 통해 천사와 에로틱한 매력을 발산하는 여성의 일치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성’(sexuality) 사이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종교와 성 사이에 적대적 노선을 형성해 왔다. 하나님 사랑과 생의 쾌락은 서로 모순되며, 육체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이다. 성을 죄의식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육체비하주의 내지는 육체의 쾌락을 속물근성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죄악시하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태도는 잘라 말하건대 성경적이지 않다. 몸에 대한 서양 철학자와 기독교의 의식은 부정적이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몸은 정신의 감옥, 정신을 산란하게 하는 것, 오류의 원인, 그리고 부정한 것이다. 몸은 너무 자주 마음과 대조되고 무감각하고 죽어 있는 물건을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된 경우도 흔하고 심지어 몸뚱이로 비하되기도 한다. 금욕과 신체적인 훈련을 통해 마음과 정신이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대개 가르쳐 왔다.
 
철학자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대체로 몸을 열렬히 사랑하고 공경한다. “몸은 육체적인 대상에 비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술 작품에 비교되는 것이다”(메를로 퐁티) 예술가들은 얼마나 강렬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우리의 정신적 삶이 몸의 표현을 통해 보여지는지를 인식하면서 가장 미묘한 신념, 욕구 그리고 느낌의 뉘앙스들이 우리의 손의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 자세, 몸짓 등에서 반영되는지를 보여 왔다. 렘브란트는 에로틱한 천사와 야곱의 만남을 통해 기독교 전통에서 부정적으로 형성된 육체성에 대한 적대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체성(몸)은 하나님 사역의 종점이다.”(위르겐 몰트만) 몸의 해석학은 몸이 정신의 교회에서 파문당하고 철학의 담론에서 이단시된 고아였다는 점에서 몸에 대한 일종의 프로테스탄트적 담론이다.
 
성서의 이야기는 야곱의 신체성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다. 야곱은 신체적 경험을 철저하게 한다. 성서는 해부학적 섬세함을 드러내면서까지 신체성을 강조한다.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 32:32) 오늘날 종교에서 상실한 신체성(몸)에 대한 강조는 점증하고 있다. 성서의 이야기에서 야곱의 체험이 철저하게 신체성과 결부되어 있다면 렘브란트는 그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의 경험과 하나님 경험을 결부시켜 이전 세계의 감각적 분배를 파괴하고 감성적 혁명을 가져온 자이다. 즉, 性은 종교적 해석의 지평에서 부정적으로만 평가되거나 배제될 수 없음을... 
 
야곱의 이야기가 몸의 부상, 축복, 신체적 만남으로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야곱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보았다고 고백한다면 렘브란트가 작품에서 성의 체험까지 수용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해석의 길이다. 렘브란트는 작품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性 사이에 쌓인 높은 담을 헐고 넘어감으로써 신체성이 성서 이야기의 본질적 특징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은닉된 성서의 전혀 새로운 차원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동시에 성서에 대한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감수성은 이미 렘브란트에게서 태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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