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문화원에서 열린 ‘인생’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이어령 박사가 대담자 이재철 목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
지난 3월13일 이어령 박사가 이재철 목사와 함께 ‘인생’을 주제로 첫 대담에 나섰다. 양화진문화원이 주관한 이날 대담에서 그는 문단에 파문을 일으킨 <우상의 파괴>라는 평론에 얽힌 이야기의 실태를 풀어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 박사가 만 22세 5개월이던 1956년 5월 6일, 서울대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졸업생이었던 그는 당시 신생 언론인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라는 평론을 실어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대담자 이재철 목사는 이 박사의 <우상의 파괴>에 대해 "오늘 대담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은 (당대)‘문단의 신’으로 군림하던 원로들을 우상(偶像)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비판하는 글이었다"며 "선생님은 ‘시대 착오자들’을 파괴하는 우상 파괴자를 자임하셨고, 그 내용은 대단히 무섭다"고 말했다.
‘문단의 황제’ 소설가 김동리에게는 ‘미몽의 우상’, ‘모더니즘의 기수’를 자처한 조향에게는 ‘사기사(사기꾼)의 우상’, 농촌 문학가 이무영에게는 ‘우매의 우상’, 신진 평론가 채일수에게는 ‘영아(嬰兒)의 우상’이라고 싸잡아 비판했고, 이외에도 황순원·서정주·염상섭 등 기라성 같은 당대의 문인들도 이어령의 우상 파괴 비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같은 글을 쓴 의도를 묻자 이 박사는 "그들을(당대 문인들을)우상이라 부른 것은 그 분들을 공격하려던 게 아니라 그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같은 세대 젊은이들이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그 분들의 문학을 이상적인 문학 모델로 만들고 그들의 제자가 되어 인준을 받아서 글을 쓴다면 우리에게 젊은이란 존재하지 않고 새로운 창조는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며 "그 분들을 우상이라고 욕한 게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당시 젊은이들, 동시대인들의 출세지향적이고 추천을 받아 등단하려 그들을 섬기는 모습이, 제 눈에는 ‘텅 빈 우상 앞에 무릎을 끓고 굿하는 사람’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령 박사가 50여년 전 문단에 파문을 일으킨 <우상의 파괴>의 집필 의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화진문화원 제공
이 박사는 또 <우상의 파괴>의 화살이 비단 당대 문인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였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당시 우상 중의 우상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었다"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훌륭하시지만, 국민들이 우상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없어진 것"이라며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이고 이로써는 훌륭하셨지만, 새로운 꿈을 열어가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 창조적 모델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우상들을 파괴하고 벗어나야만 2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우상으로 비판한 문인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는 "그 분들게 감사드리는 것은 당시 제 싹수를 얼마든지 자를 수 있는 권리와 권력과 문단 형편이 있었음에도 그토록 혹독하게 욕한 사람을 감싸주셨다는 점"이라며 "이렇듯 다음세대 젊은이들의 숨구멍을 그나마 틔워준 선배님들이 오늘의 이 시대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이어령 박사는 반성할 부분으로 ‘우상’ 파괴로 시작한 자신이 아이러니칼하게도 언제부턴가 우상화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떤 분이 저에 대해 <창조의 아이콘>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셨는데 ‘아이콘(icon)’이 바로 우상 아닌가"라며 "50년 전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쓴 제게 우상이라 부르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우상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쳐도 우상으로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우상과의 싸움은 비단 기독교만의 싸움이 아니라며 "우리 자유인들은 절대 우상을 만들어선 안 되고, ‘내 언어로 짤막한 내 인생을, 지문처럼 죽으면 사라지면 한 생애를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제 최초의 언어는 ‘우상의 파괴’였지만, 지금은 창조와 생명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며 "예전에는 부수고 죽이고, 모든 것에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면, 80대가 되면서 언어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20대의 ‘불의 언어’가 ‘물의 언어’로 변화됐다"고 전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