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 ⓒ베리타스 DB |
국가조찬기도회는 197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도 있었고, 전두환 정권 아래서도 한국교회의 내 노라 하는 저명한 목사님들이 설교를 했습니다. 노태우 시대, 김영삼 시대,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국가조찬기도회에 어떤 목사님들이 한국 개신교를 대표해서 설교를 했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습니다. 내 기억에 뚜렷하게 생각나는 국가 조찬기도회 설교로는 박정희 유신 정권 초기에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총리의 것입니다. 로마서 13장을 읽고, 바울 사도 역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임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개혁개정판).”고 했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따라서 유신정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요지로 말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국의 개신교를 대표해서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일이겠습니까? 옛날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지자 노릇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야웨 하나님께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습니까?”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어찌하여 이 몸이 모태에서 나와서/이처럼 고난과 고통을 겪고/나의 생애를 마치는 날까지/이러한 수모를 받는가?”하고 탄식했습니다. (예레미야서 20:18). 김삼환 목사의 명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감히 설교하라는 청탁을 받을 리 없겠지만, 나에게 이런 책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떨리고, “왜 내가?” 안하겠다고 고사하기도, 하겠다고 나서기에도 난처했을 것 같습니다. 몇 만 명이 모이는 부활절 새벽 기도회에서 설교하라고 해도 무섭고 떨릴 터인데, 그리고 2,30명 겨우 모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하는 기도회에서 설교하라고 해도 떨리는 판인데, 감히 일국의 대통령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것이라고 상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있었을까? 내가 아는 성경지식을 살펴보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던 이야기를 상상했지만, 대통령을 마귀와 같다고 하기엔 너무한 것 같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가 12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서학자들과 논쟁을 했다는 간단한 기록이 있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의 유태 종교지도자들과 수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형을 받을 때 역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국가조찬기도회 같은 것도 없었거니와 로마 지배자 앞에서 설교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구약성서를 참고해 보았습니다. 선지자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엘리아,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등이 왕 앞에서 설교할 기회나 대화를 한 기회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생각나는 선지자은 저 유명한 다윗 왕 앞에서 설교한 선지자 나단의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민중의인기가 최고조로 달한 다윗 왕이 그의 권력을 이용하여 휘하 장군의 아내를 가로채고 장군을 최 일선에 내 보내어 죽게 한 비리가 있었습니다. 부도덕한 왕 앞에서 선지자 나단은 설교를 했습니다. 아무리 선지자라 해도 감히 직설적으로 “임금님, 당신은 남의 아내를 도둑질 했습니다.”라고는 말 못했습니다. 옛날이야기처럼, 한 부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손님 대접하기 위해 자기 소유의 그 많은 양은 잡지 않고, 부자 집에서 일하는 노예와 그 집 아이들이 애지중지 기르는 양 한 마리를 잡아다가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윗 왕은 “그 부자 놈은 나쁜 놈 아닌가? 어디에 있는지 잡아다가 족치게” 노발대발, 펄쩍펼쩍 뚜이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부자가 바로 이금님이십니다.”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시청 앞에서, 대한문 앞에서, 청계천 광장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개신교 목사들과 장로님들이 모여 서서,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고, 국정원의 들어 난 비리와 대권 선거 도둑을 비난하고 가난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서 죽어 가는 힘없는 이들을 위해서 부르짖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형편입니다. 교회 마다 새벽 기도회를 열고 우리 대통령이 국민들의 원성을 들어 주기를 기도하고, “불통” 대통령이 귀를 열고 국민들의 소리를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대박”이라는 말은 참 신나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대박이 되는지 어리둥절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동안 조용하던 동해안에 북한의 로켓이 발사되지를 않나, 남쪽에는 미국 핵 잠수함이 바다 밑에서 위협하고 있지를 않나, 이래서야 언제 어떻게 통일이 대박이 되는 날이 올 것인지 기대할 만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서 대통령이 직접 이 위원회를 이끈다는 발표를 들었지만 통일부도 있고, “평통”이라는 어마 어마한 기관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 위원회가 많아서 통일이 앞당긴다면 모를까, 남한 인구 모두가 그 준비위원회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별로 기대를 걸만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은 대통령 앞에서 뭐라고 설교를 해야 될 것인지. 이런 암담한 상황 아래서 국가조찬기도회는 왜 필요한지, 왜 해야 하는지, 도대체 목사님들이 무슨 말로 기도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나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가능하면 힘든 일을 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 위로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인지. 그냥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기도, 우리 대통령에게 건강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통일이 대박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라고 해도 되지요. 그리고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파괴하려는 “종북” 세력을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시고 7.4 공동성명을 내신 것처럼 남북이 화해하는 계기를 만들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겠지요. 대통령 앞에서 말입니다.
“하나님도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주신 힘으로 된 목사도 독재를 해도 됩니다.”라고 설교하는 한국의 목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목사라면 독재자 앞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독재하는 것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설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독재자라는 신학이 신학이라면 어디서 나온 신학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기독교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동학사상에는 인심이 바로 천심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민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의 힘, 민의, 민심에서 나오는 힘, 민을 위한 힘인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나라 대통령은 그 권력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 권력은 국민들에게서 나왔고 국민들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권력의 힘으로 국민들의 투표를 선동하거나 조작해서 권력을 쟁취했다면 그 권력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고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최고 권력자 다윗왕은 선지자 나단의 설교를 듣고 곧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를 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게 어려웠다면, 적어도 정의구현사제단 천주교 신부들이 외치는 소리,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면서 드리는 기도회의 기도의 소리를 대신하고 대변하고 전달하고 소통을 말하고 회개를 말하는 설교를 할 수는 없었을까요? “대통령님, 거리에서 성당에서 교회 안에서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대통령님을 위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크고 작은 소리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기도입니다. 나라 사랑, 민족사랑, 대통령을 사랑하는 기도들입니다. 귀 기울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설교할 수는 없었을까요?
이런 식의 설교 원고는 청와대 비서진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겠지요. 여기 이 글도 검열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