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민중’ 하위주체에 “지식인, 원점화 노력 기울여야”

민중신학회 4월 월례세미나서 ‘하위주체’ 담론 다뤄

▲한국민중신학회 월례세미나가 지난 7일 서울 서대문 소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진 왼쪽부터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민중신학 1세대),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 담임), 최순양 박사(이화여대 강사), 정경일 박사(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사진=이인기 기자

한국민중신학회가 지난 7일 서울 서대문 소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월례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는 최순양 박사(이화여대 강사)가 맡았고 20여 명의 민중신학자, 운동가 및 대학원생들이 두 시간여에 걸쳐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발제문은 “스피박의 서발턴(하위주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이며 발제자는 스피박의 하위주체 개념을 “자신의 목소리를 학문적으로 형상화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사회 정치적 구조를 이루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등-”로 소개했다. 
스피박에 따르면, 지식인들은 이러한 하위주체의 경험을 재현 혹은 대변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자신들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그들의 관점을 원점화(unlearn)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발제자는 스피박의 견해에 근거해 한국민중신학이 하위주체를 대변하는 과정에 이와 동일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의 주장(『중진국에서의 민중신학하기』 내용 中)은 하위주체를 개념화, 의식화, 역사화하려는 시도의 정당화인데 그것이 결국 지식인의 재해석에 해당하는 것이다. 권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민중의 상태를 분석하고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능태로서의’ 민중을 부각시키고, 그 방향으로 민중을 이끌어가는 것이 보다 더 실천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발제자는 권 교수의 주장에 대해 “[하위주체]에게 대안과 목적을 제시하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지, 스스로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를 찾고 만나가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적 담론에서 지금까지 제시해온 것처럼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혹은 문제의식을 발견하지 못한 ‘실재적 민중’들에게, ‘공통’의 목적의식과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혹은 그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만이, ‘유기적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좀더 면밀히 고민해봐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 지점에서 발제자는 지식인으로서 하위주체의 경험을 결국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라는 반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발제자의 반성은 민중신학이 하위주체의 경험을 대변 혹은 재현하는 과정에 대해 자조적이거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비록 그 과정이 재해석일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하위주체의 경험을 공감하려는 노력을 했을 때 그 노력은 “원점화”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제자는 가정 불화로 집을 나온 여성들의 쉼터인 교회에 시무하며 그들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원점화의 노력은 민중신학 1세대인 서광선, 현영학, 서남동, 변선환 박사들이 해직당한 경험과 2세대인 권진관, 강원돈 박사 등의 현장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발제자는 “‘나’의 관점, 혹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허상 속에서 하위주체를 묶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관점이 개입되기 이전의 상황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라고 결론지었다.
 
비록 신학담론을 소통하는 자리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예수가 팔레스타인의 하위주체와 함께 살며 하위주체로 스스로를 원점화하는 과정의 절대적 모범이었다는 사실이 민중신학자들의 의식 속에는 원뿌리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날 월례발표회에는 민중신학의 1세대 서광선 박사, 2세대 권진관, 강원돈 박사, 그리고 차세대 신진학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미얀마에서 유학온 소 쉬 쇼(Saw Shee Sho) 박사가 성공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참석했는데 미얀마의 민중신학(Lu Du theology)에 대해 선구자적 포부를 품고 있었다. 그의 학위논문은 “미얀마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고통의 루두 신학: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Lu Du Theology of Suffering for Justice and Peace in Myanmar: Towards Building a New Society)이다. 민중신학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국경을 넘어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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