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설교]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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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향린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전 11:7-12:2, 살전 2:13-3:5, 막 9:14-27)

설교문

[청년주일을 맞아]

오늘은 청년들의 신앙과 열정을 높이기 위해 우리 교단이 제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청년주일은 1953년 제38차 교단 호헌총회에서 결의되었기에 우리 교단 역사와 함께해 왔고, 올해로 벌써 72회를 맞고 있습니다. 청년주일은 특별히 청년들을 교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세워주고, 청년들의 신앙으로 교회와 이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고백하는 날이며, 우리 교단의 모든 성도가 애정을 가지고 청년 선교에 관심을 갖는 날입니다.

어느 사회이든지, 젊은이들이 생기 있게 활약해야 그 사회가 건강하고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OECD 38개 회원국의 연령 표준화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1명인데, 대한민국은 24.1명이라는 높은 비율을 보입니다. 2023년에는 27.3명으로 이전보다 8.3%나 증가했고, 2024년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나 조용하고 위기의식마저 사라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과 청년 자살률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모두 자살입니다. 매일 20-30대 청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죽음에 이릅니다. 게다가 연령대별 자살 및 자해 시도를 보면 20대가 다른 연령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2022년에는 20대가 1만487건[28.5%], 10대가 5천879건[16%], 30대가 5천266건[14.3%])

청년들의 자살과 고독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업과 취업난입니다. 취업난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게 합니다. 지금 50만이 넘는 청년들이 심각한 고립 상태에 있습니다. 간신히 일자리를 잡아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열고 들어간 청년들의 삶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저질 일자리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립니다.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64.4%가 첫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200만원 미만이고, 긴장과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는 20대 여성 자살률이 매우 심각한데, 이것은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훨씬 취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차별과 성추행, 성희롱 같은 취약한 노동조건들이 여성 청년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실로 많은 청년이 깊은 우울감에 시달립니다. 빈곤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 한명 한명을 개별적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집단적 정체성에 따르라고 하는 데다가, 무한경쟁 속에서 남보다 앞서 나가라고 강요하기에, 타인의 기대와 평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자녀들로 태어나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능력주의 분위기에서 자랐으나, 취업난과 결혼 문제에 직면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남들과 자기를 수시로 비교하며 열등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세대가 오늘날 20-30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가복음서에 보면 귀신에 사로잡혀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지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이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물속에도 던져지고, 불속에도 던져졌는데, 그런 상황이 어릴 때부터 지속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서가 쓰일 당시, 소망 없는 유대 청년들과 다음 세대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고, 예수는 기성세대들에게 "믿음 없는 세대"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실로 많은 청년과 청소년이 극심한 고립과 외로움, 고통 속에 빠져있습니다.

청년들이 이렇게 힘들기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지만, 실제로 도움을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기성세대가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또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대화하는 것조차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꼰대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대화하기 어려운 기성세대를 두고 이르는 말이 '꼰대'이지요. 더 심한 말로는 '개저씨'도 있습니다. 고(故) 노회찬 의원 같은 분은 "세상에는 지금 꼰대인 사람과 앞으로 꼰대가 될 사람,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는 농담도 하셨는데,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에서는 우리말 꼰대(kkondae)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늘 자기만 옳다고 믿고 타인은 항상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 and you are always wrong). 여기에서 특별히 나이를 언급하고 있기에 젊으면서도 자기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을 '젊은 꼰대'라 하여 '젊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청년들은 진정한 인생의 선배를 만나길 바라지만 대체로 꼰대를 만나는 일이 많기에, 기성세대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젊은이의 고단한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갑질하는 '개저씨'들로 가득하다면 청년들이 안전하게 마음 둘 곳을 찾기란 정말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꼰대들도 다 같은 꼰대가 아닙니다. EBS <지식채널e>라는 짧은 영상을 기획했던 김진혁 PD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뉴스타파로 옮겨가서 만들었던 영상이 있습니다. 제목은 "꼰대 VS 선배"인데, 거기에서 세 종류의 꼰대질을 언급합니다.

첫째는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과 같은 세대인 장노년층들의 경우입니다. 이들은 오직 정규직 일자리만 바라는 20대의 태도에 특히 문제를 제기합니다. 중소기업 혹은 3D업종엔 일자리가 많이 남아도는데도 불구하고, 20대가 편한 일자리만 바라기 때문에 취업을 못한다는 게 이들 세대의 주요 의견입니다. 더불어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일도 결코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 '좋은 경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386세대는 사회의 부당함에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20대에 불만이 많습니다. 아무리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더라도 부조리와 불합리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순응하는 요즘의 20대는, 그들이 보기에 나약하거나 혹은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칩니다. 단순히 자기 일자리만을 위해 공부하거나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부당함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나서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90년대 초중반, IMF 외환위기 이전에 대학을 다녔던 298세대는 뭔가 늘 주눅 들어 있고 눈치를 보고 열심히 적응하려 애쓰는 20대를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열심히 일하든, 부당함에 저항하든, 아니면 다른 뭘 하든 간에 좀 더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의 20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너무 다른 내용의 충고들이지만 이들 세대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태도가 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20대에 경험했던 것을 기준으로 현재의 20대를 판단하고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20대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현재의 20대에게 주어진 현실이 어떠한지를 차분히 듣고 거기에 근거해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선배 세대들은 각각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적어도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 '낙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노년층에겐 '경제성장'을 통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리란 희망이 있었고, 386세대에겐 '민주화'를 통해 '독재'로부터 벗어나리란 희망이 있었고,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실 모두를 영위한 298세대에겐 그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을 추구하는, 서구 유럽의 선진국 같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란 희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20대가 경험하는 현실이란 선배 세대가 경험한 것과 전혀 다릅니다. 대한민국은 '저성장'이란 환경에 놓여 있고, 이로 인해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더 나은 내일'은커녕 그저 '오늘보다 나쁘지만 않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제가 지난 번 설교에서 '소확행'에서 '아보하'로 넘어간 오늘의 상황을 말씀 드렸지요. 단순히 지금 현재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임금이 낮고의 문제만이 아니라, 심지어 앞으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불안감, 바로 그러한 불안감 속에서 20대를 맞이한 '첫 세대'인 셈입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처음으로 자기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속 성장 속에서 20대를 보냈던 대부분의 선배 세대는 적어도 20대에 이처럼 '불안한 미래' 속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나름대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고, 실제로 각 세대 나름의 무언가를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부분이 각 세대가 지니는 '자부심'이자 '자존감'이 되었습니다.

반면 현재의 20대에겐 그러한 '자존감'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자기 세대 나름의 새로운 무언가를 이뤄내기는커녕 선배 세대가 기존에 만들어 놓은 구조에 '편입'되기 위해, 그 구조로부터 미끄러져 추락하지 않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서'나 또는 '힐링 도서'를 쥐어 주면서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젊은이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것이고, 그런 꼰대들의 눈에는 젊은 청년들이 모두 철부지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김진혁 피디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 성향과 이념 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인 청년의 고민과 교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말씀드렸다면,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어떨까요?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가 청년들의 삶이나 청년들의 신앙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청년들이 교회에 나와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인데,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기존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더 보태지는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2017년에 교단 신도위원회에서 청년 신앙교재를 만들면서 청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오늘날 교회 청년들의 고민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첫째는 일반적인 교회에서 청년들이 흔히 하는 말인데,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상도 바쁘고 힘들고 지치는데, 교회가 청년에게 너무 많은 봉사를 요구한다는 것이지요.

둘째는 교회의 어른들이 자신의 신앙 기준으로 젊은이들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30대 후배 여성 목사 한 분이 여신도 전국연합회에서 했던 강연의 일부로 예를 들어 볼까 합니다. "30대 후반의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한창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는 여성이다. 현재 자기 삶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며 결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상태다. 그런데 교회 갈 때마다 이 여성은 '배우자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말들이 불편하지만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라 그냥 참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성은 엄마의 구역 식구들이 이 여성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그 기도는 '우리 박 집사님 딸이 아직도 시집을 못 갔다. 시집가게 해 달라, 가정을 이루는 축복을 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여성은 스스로 삶에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었지만, 교회 식구들만 만나면 자신이 문제가 있는 사람, 결핍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교회를 떠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기혼 여성에게 교회는 편한 곳일까? 돌이 막 지난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오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이 교회 한 권사님의 며느리다. 이 며느리가 주일에 유모차를 끌고 교회에 들어서자 안내하시는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그런데 한 분이 '애기 옷이 얇다고 담요를 덮어주라' 하신다. 이 여성은 아기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본당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분이 '애는 시원하게 키워야 한다고 너무 싸매지 말라'고 하신다. 이 여성은 담요를 들고 생각에 빠진다. '어떻게 하라는 거지'.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하러 가면 식당에서 또 다른 분이 '둘째를 언제 낳느냐고, 하나만 키우면 안 된다'고 하신다. 힘들어서 엄두가 안 난다고 대답하면 '우리 때는 일회용 기저귀도 없었다, 다 손으로 빨아서 키웠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듣기 싫어 경제적으로 빠듯하다고 대답하면 '하나님이 다 키워 주실 텐데 믿음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며느리는 교회 어른들이 다 시어머니 같다고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이 여성은 교회에서 자주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가끔 오더라도 이 여성은 아이와 함께 유아부 예배만 드리고 밥도 안 먹고 집에 서둘러 사라지곤 했다. 결혼한 여성에게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도 교회는 피곤한 곳, 오묘하게 불쾌한 느낌을 주는 곳이 된 것이다."

교회 청년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세 번째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진짜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실제로 자기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입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진정 그리스도인으로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교회에서 배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이중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요. 이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여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동시에 신앙인이 지녀야 할 삶의 방식과 태도가 사회생활과 부딪힐 때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청년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디뎌, 겨우겨우 그곳에 자기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이들입니다. 한편으로는 기대에 부풀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청년들의 고민은 깊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청년들도 이런 고민을 안고 교회로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럼,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는 젊은이들에게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기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르라고 합니다. 지나고 보면 젊음처럼 좋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어른의 말입니다. 이 말 자체는 틀림이 없습니다. 눈이 침침해지고, 몸이 삐걱거리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기조차 버거운 삶을 사는 노인들이 볼 때 젊음이란 가장 아름답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 좋은 시절을 즐기려면 선배 세대들이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새롭게 사회에 적응하고 처음 시도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소 부족하고, 실수가 있더라도 바로 그 실수와 실패, 좌절과 절망을 통해 배움이 되고 숙련된 삶의 기술을 얻을 수 있도록 믿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선배 세대가 할 일이고 교회가 할 일입니다.

김진혁 PD가 선배 세대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한 조언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20대 30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일상의 스트레스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김진혁 PD의 말대로 지금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에의 희망을 꿈꾸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세계화되고 다원화된 가치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일방적으로 퍼부어 대는 소리는 복음의 소식이 아니라 잔소리이거나 헛소리로 들리면서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코로나 19 이후에 한국은 더욱더 세속화되고 있고, 종교인들의 신앙 양상도 달라지는데, 교회가 이런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는 답답함을 유발할 뿐입니다. 교회에 나오기 싫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상 세계'의 전면화, '랜선 사회'의 일상화는 느슨한 연대로도 우리 삶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미 핵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예전처럼 온갖 다양한 집회에 참석해서 열정적으로 찬송하고 소리 높여 기도해야만 마치 신앙이 좋은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청년을 대할 때 더 개별적이고, 더욱더 안전하면서도 부드럽고 감동이 있는 손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편 교회는 진짜 그리스도교 신앙,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2010년 말에 분당에서 목회를 하던 중대형 교회의 한 목사가 65세에 자원은퇴를 하면서 다섯 가지를 참회했는데, 그중 첫째 항목의 일부는 이것이었습니다. "지도하던 젊은이들을 깨어 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마당에 인도하지 못한 것". 교회는 의욕이 왕성한 젊은이들이 참되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하여, 역사와 사회에 책임지는 주체적 신앙인이 되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고 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살며, 삶의 의미를 절절하게 묻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꼰대를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자 유일한 길은 사실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데요)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주일 하늘뜻펴기의 자리이기에 다시 전도서의 말씀을 기억하며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9세기 미국의 최고 시인이었던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를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시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쓰라린 아픔을 겪은 사람입니다. 1831년 24세에 매리 포터와 결혼했는데, 이 여성은 출산을 앞두고 떠났던 여행에서 아이를 유산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8년의 세월 동안 고통 속에 보내다가 재혼을 하였는데, 이 여성마저도 어느 날 부엌에서 화재 사고를 당해 큰 화상을 입고 이튿날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뒤 롱펠로우는 우울증에 빠졌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번역하는데, 그때까지 나온 번역 중 가장 훌륭한 번역본입니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운 어느 날 한 기자가 그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롱펠로우는 마당에 서 있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소.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지.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맛있는 열매가 달린다오. 해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이라오. 나는 나 자신을 늙은 가지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소. 나는 언제나 나를 새로운 가지라고 생각했소."

롱펠로우가 아내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채 쓴 시가 그 유명한 인생찬가(A Psalm of Life)입니다. 몇 구절 읽어 드리겠습니다.

슬픈 목소리로,

"인생은 다만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게 말하지 말라. ~ 중략 ~

인생은 현실! 인생은 진지한 것!

무덤이 삶의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인생이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저마다 행하는 그것이, 바로 목적이며 길이다. ~중략~

인생이란 드넓은 싸움터!

노상에서 잠이 든다 하더라도

말 못하고 쫓기는 소같이 되지 말고

싸움에 뛰어드는 영웅이 되라.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마라.

죽은 '과거'는 그대로 묻어버려라.

행동하라. 살아 있는 '현재'에 충실하라.

내 안에는 꿋꿋한 마음이, 머리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 중략 ~

자,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자!

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루고 도전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자.

롱펠로우는 "비 오는 날"(The Rainy Day)이라는 시에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고요히 머물라, 슬픈 가슴아! 한탄하지 마라,

구름 뒤엔 언제나 태양이 빛나니,

그대 운명도 다른 모든 이의 운명이니,

누구라도 내리는 비는 피할 수 없는 법,

어둡고 쓸쓸한 날들은 언제나 있는 법.

위대한 영혼이라 불린 간디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의 믿음이 너의 생각을 만든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너의 행동이 된다.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너의 가치가 된다. 그리고 그 가치가 너의 운명이 되는 것이다."("Your beliefs become your thoughts, Your thoughts become your words, Your words become your actions, Your actions become your habits, Your habits become your values, Your values become your destiny.")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전도서의 말씀대로 여러분이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이 행동으로, 결국 운명으로 될 것이니, 젊은 날을 마음껏 보내시길 바랍니다. 기성세대들이 열심히 돕겠습니다.

사랑하는 향린교우 여러분! 1953년에서 1971년까지 하버드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네이선 퓨지(Nathan Marsh Pusey)는 우리들의 젊음과 청춘을 이끌어가는 다섯 가지 요소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 흔들 수 있는 깃발, 둘째, 변하지 않는 신념, 셋째, 따를 수 있는 지도자, 넷째, 평생을 함께 할 친구, 다섯째,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 향린교회에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있을까요?

정권이 몇 번씩 오락가락하면서 바뀐다하여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깃발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고, 주님 약속에 대한 변치 않는 신념이 있으며,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우리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바로 여기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함께 삶을 나누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고,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매주 모여서 함께 승리와 다짐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의 노래가 곤궁 속에 있는 청년들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생기 넘치는 청년들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운명이 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제 우리는 정직한 믿음 안에서 우러나는 확고한 사랑을 함께 일궈나갑시다. 그럴 때에만이 신앙의 유산이 이어지고, 우리 향린교회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향린의 모든 젊은이들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기십시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파송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청년의 열정이 불타오르도록,

자유의 정신이 피어나도록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정직하게 내 믿음과 삶을 돌아보고

최선을 다하여 우리 신앙의 유산들을 후배와 후손들에게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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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 의미 밝혀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리더가 구조화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통해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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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교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 부정하는 이유는..."

연새대 김학철 교수(신학과)가 상당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소위 '창조과학'을 따르는 이유로 "(진화론이)자기 신앙의 이념 혹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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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원효의 체상용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원효의 체상용의 불교철학 사상을 비교 연구한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얼마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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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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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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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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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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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