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시선] 분노의 정치학

한 지체로써 고통을 공감하며

세월호 침몰후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이 벌써 일주일째 접어들고 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 아무런 반향이 없는 시간은 이제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치고 있다. 그 분노는 파열적인 해소를 꾀하며 하나님에 대해, 동료 인간에 대해, 정부에 대해 도화선을 접속시키고 있다. 출구 없는 상황에만 집중하여 상상적인 돌파를 꾀하는 이러한 분노는 희생양을 만들어 거기에 저주를 쏟아부음으로써 자체를 정서적으로 해소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분노의 정치학은 결국 망각으로 이어진다.

우리 역사에서 거룩한 분노가 “포도처럼” 영글어 동료 인간간의 결속과 실질적인 구조개선을 이루어냈던 적도 있었지만, 절망적 사태와 희생양과 정서적 해소와 망각 그리고 다시 돌출하는 절망적 사태의 순환 속에서 정서적 효과에 기댄 분노의 사례들이 더 빈번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이 난지 21년이 지났는데 그 당시의 몽매함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그때의 ‘거룩한’ 분노가 정서적 효과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가는 가슴 속에 영근 분노만큼 진솔하고 열정적이며 거룩한 분노는 없을 것이다. 그 분노는 사회의 실질적인 구조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동료 인간으로서 느끼는 공분은 그 가족들의 분노를 정서적 효과로 희석시키지 않도록 유도될 필요가 있다. 공분은 자칫 희생양을 만드는 손쉬운 돌파구에 기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분노를 공감한다면, 그러한 절망적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혹은 그러한 사태의 처리 과정에 대해 설득력 있는 경로를 만들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 도사린 돈과 효율을 위해 인간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의식과 제도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를 거룩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의 고통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사실 우리가 함께 분노하는 이유는 우리가 희생자 가족들의 심정을 공감하는 하나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손이 아프면 온 몸이 긴장하며 그 아픔을 함께 겪지 않는가? 분노의 공감은 그 분노를 일으킨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들의 분노를 해소하고자 할 리 만무하며 누구보다 자신들이 당한 불행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강하게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들과 한 지체로써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한 지체는 고통뿐만 아니라 반성의 결실로 얻는 영광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린도전서12장26-27절)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