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충범의 물에서(1)] 어설픈 첫 걸음마

이충범·협성대 교수(역사신학)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긴급상황입니다. 불쌍한 초보를 도와주세요. 20와트짜리 수중펌프를 빵빵 돌려서 보름이상 물잡이를 했고 그동안 물잡이용 물고기가 잘 살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금붕어 기를 때 산소가 부족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데 혹시 산소부족은 아니겠죠?” 
이미 시간은 새벽 1시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수조를 구해 세팅하고 근 보름 간 물잡이(물속에 발생하는 유독 암모니아를 분해하는 유용 박테리아를 증식시키는 기간)를 했습니다. 지루한 물잡이가 끝나자마자 작은 납자루아(亞)과인 흰줄납줄개와 떡납줄갱이 치어 각 5~6마리씩 구해서 드디어 어항에 입수했지요. 그리고 그 날 앙증맞은 녀석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구경을 하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참을 잤습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눈이 잠시 떠졌는데 또 녀석들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녀석들이 잘 있나 싶어 수조 앞에 갔더니 그만 모든 녀석들이 물 표면에 떠올라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부랴부랴 컴퓨터를 열고 동호회에 접속을 한 것입니다. 손에 땀이 흐르는 기다림의 시간, 이미 시간은 새벽 1시. 그 누군가 접속할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기적 같이 댓글 올라오는 알림음이 울렸고 저는 쏜살 같이 모니터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한밤중에 모든 물고기들이 이렇게 수면에서 뻐끔거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누구인지도 모르는 한 동호회 회원과 댓글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제 설명을 모두 들으신 그 분은 내게 급히 수조의 물을 갈아주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수족관에서 구매하여 설치해야할 물품들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마 물생활(동호회원들은 물고기나 수초 키우기를 물생활 혹은 물질이라고 합니다)을 해보신 분이면 잘 아실 것입니다. 초보자가 수조의 물을 환수하는데 얼마나 어수룩한지를. 
대화가 끝나자마자 2자 가까이 되는 수조물의 환수를 시작하였습니다. 거실 바닥엔 흥건하게 물이 고이고 잠옷은 다 젖어서 야한 수영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성스럽게 세팅해놓은 수조 안 구조물들은 다 엉망이 되었고 물고기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환수를 얼추 다 끝내고 나니 시계는 벌써 새벽 3시, 다행이 환수 이후에 물고기들은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달밤에 체조가 아니라 노가다를 뛰고 난 후 허탈해진 저는 다시 책상의자에 몸을 누였습니다. 그런데 동호회 카페엔 제게 조언을 준 그 분이 아직도 접속을 끊지 않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대화를 시도하자 그 분은 제게 환수이후 상황을 물었습니다. 아마 그도 제 수조의 상황이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제 대답을 들은 그 분은 그제야 다행이라며 컴퓨터에서 나갔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저 같은 왕초보를 위해 잠도 마다하고 밤새 함께 해준 그 분에게 메일과 쪽지를 보내서 앞으로 저의 물생활의 멘토로 삼겠다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꼭 식사라도 대접하겠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저의 식사제안을 완곡히 거절하던 그가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물질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저는 여러 의미(?)로 물고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그냥 좋다가 아니라 약간의 집착이 시작된 것은 분명 대대적인 강 사업을 시작한 대통령 시절부터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강바닥을 다 뒤집고 파헤친다는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그 사업을 앞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환경단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를 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의 눈을 가장 강렬하게 잡아 챈 것은 우리민물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들은 저같이 무심한 사람들을 향해 “잡어(雜魚)”들에게 눈길을 주어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어본 그들의 하소연은 정말 타당했고 애처로웠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우리 민물고기들을 보호하는데 이 한 몸 뭔가는 해야겠다고 굳게, 굳게 다짐을 하며 그 좋아하던 민물고기 매운탕을 단칼에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네티즌 투표에 열심히 반대표를 눌러대면서, 민물고기 보호를 위한 활동가들의 주장에 동조서명을 해가면서 저의 “나홀로 투쟁”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민물고기를 기른다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집에는 6개의 수조 속에서 산소공급기와 여과기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저는 어린 시절 많은 동물들을 길러본 경험이 있습니다. 많게는 한번에 6마리까지 길러본 개부터 시작해서 수십 쌍의 잉꼬, 십자매, 문조, 땅닭, 메추라기, 공작비둘기, 꿩, 금계와 같은 중소형 조류들도 키워봤었지요.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내 손에만 오면 거대한 장닭으로 자라났습니다. 초등학생이 조류번식에 성공하여 동네 애완동물가게와 거래를 했을 정도면 저의 동물 키우는 솜씨도 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물고기 사육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대학에 와서야 이모부님이 당신의 개인병원에 놓아두던 커다란 큐브 수조를 주셔서 대형금붕어를 키워본 적이 있는데 이때 저는 절대로 평생 물고기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기포기 하나 꼽아두면 무럭무럭 잘 자라는 금붕어들인데도 당시엔 물갈이 한번 할 때 마다 곡(哭)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이 저 이상으로 호기심 많으신 선친께서 보약인줄 아시고 이상야릇한 약품을 저와 상의 없이 물에 타 주셔서 손바닥만 한 형형색색의 금붕어 떼는 하루 밤 사이에 요단강을 건넜고, 저는 화가 난 척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날로 저의 물생활을 접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마음으로 응원하면 되지 뭘 나까지 물고기를 키워?” “그걸 꼭 잡아서 키워야만 하나? 자연상태 그대로 좀 놔두면 안되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물고기 키우기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던 저는 한 관상어 전문가의 글 하나로 저의 생각을 확 바꾸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엔 무려 212종의 민물고기가 삽니다.(212종 중 여러분이 구별할 수 있는 종이 몇 종이며 이름을 아는 물고기가 몇인지 잠시 확인해보시길) 그 중에서 자그마치 61종이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고유종입니다. 한마디로 지구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고, 우리 하천에서 사라지면 지구의 역사에서 사라질 물고기라는 말입니다. 
고유종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하천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외국의 동종 물고기와 모양 및 생태적 특성이 다른 물고기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아니 구지 외국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산이 하도 많아 하천끼리 서로 연결이 모두 끊겨져 있는 우리나라의 하천엔 같은 종이라도 각 수계마다 물고기의 생김새와 색이 많이 다릅니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이 만약 수만 년간 유지된다면 이 종들은 분화되어 또 다른 종으로 진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민물고기는 서해, 남해, 동해로 흐르는 하천에 따라,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등 수계에 따라, 상류, 중류, 하류 등 하천의 고도에 따라, 물 온도에 따라, 계곡, 여울, 호수, 농수로 등 서식지에 따라, 바위, 모래, 진흙 등 하천바닥의 유형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종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하천의 환경이 인위적으로 바뀔 때 이들 물고기들은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관상어로서 물고기를 키우는 일은 무분별한 채집과 유전자 변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관상어 개발을 통해 오히려 종이 보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민물고기에 대한 대중들의 생태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바로 관상어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구지 이러한 이론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더라도 몇 개월 간 민물고기에 대하여 조사하고 사진들을 훔쳐보기 시작하자 왠지 “나도 한번 키워볼까?”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민물고기 사육은 이 초보자에게 애완동물 사육 그 이상의 그 무엇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려왔던 안식년, 그 1년을 위해 수많은 꿈을 꾸었고 장밋빛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게 돌아온 안식년은 제가 아닌 타인들의 못된 횡포가 야기한 마음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안식년 계획의 포기로 인하여 제겐 지루하고 외로운 자리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원치 않았던 기러기아빠 신세였습니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깊은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앉아 분노하는 것이 저의 하루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민물고기 사육에 관심이 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조에다 전라남도 맑은 강에서 태어난 작고 예쁜 우리 물고기를 넣고 나니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몇 시간 씩 어항 앞에 방석을 깔고 앉아 제가 심은 수초와 제가 양육하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덧 제 마음의 분노와 상처는 점점 사그라지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수초와 민물고기들은 제게 다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물고기 사육을 시작한 지 몇 주가 흐르자 저는 또 수조 안의 세계에서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자 싸움을 시작하는 녀석들은 보잘 것 없는 자기 자리가 위협받으면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우리네 모습이었습니다. 먹이를 주면 배가 터질 것 같아도 일단 다 입으로 쳐 넣는 녀석을 보면 욕심에 가득 찬 저와 제 동료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필요 없는 자리다툼, 먹이다툼을 벌이는 악동 녀석을 보면서 우리들 직장에 꼭 한둘 씩 있는 악동들의 모습도 보였고 매일 구석에 숨어서 조용히 사는 녀석을 보면 꼭 제 모습 같았습니다. 가장 놀라왔던 것은 같은 종에 같이 태어난, 그래서 모습이 거의 똑같은 녀석들이 각각 그 성격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그 흔한 우리 농수로의 물고기들의 영혼도 각각 따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수조를 보며 확인하곤 했습니다.   
 
▲하천의 하류지역 맑은 모래 속에 숨어 살면서 우스꽝스러운 얼굴과 모래분수를 내뿜는 매력적인 강주걱양태는 무분별한 모래채취와 하상공사로 인해 개체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물고기다. 얼마 전까지 나의 책상 위의 작은 수조에서 살다 시집갔으며 강주걱양태는 현재 서울시보호어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블로그 여울각시님 제공  
무엇보다도 제가 기르기 시작한 물고기와 수초들은 피조물들에 대하여 잠자고 있던 저의 사랑의 감수성을 깨워주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길옆에 흐르는 더러운 하천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물속에 누런 물고기들이 재빠르게 헤엄쳐 다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누런 물고기들을 무심하게 쳐다보며 제 갈 길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그 누런 물고기들을 작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맑고 깨끗한 수조 안에 넣어 놓고 보면 제 각각 생김새와 색이 많이 다릅니다. 위에서 바라보면 다 누렇고 긴 송사리 같아 보이는데 정작 옆에서 보면 길쭉한 녀석, 넓적한 녀석, 몸에 빛이 나는 녀석, 파스텔 톤을 갖고 있는 녀석, 몸 색깔이 붉게 변하는 녀석, 노랗게 변하는 녀석, 입이 핏빛으로 물드는 녀석, 옆줄이 파란색으로 변하는 녀석, 꼬리에 띠가 생기는 녀석 등 다양하고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계절과 수온에 따라 자신들의 모습과 색을 다양하게 변화시킵니다. 또 물속을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조금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귀엽고 재미있는 놀이들을 하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 모든 모습들을 한 마디로 줄여서 표현한다면 나는 “사랑스럽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아니, 저도 모르게 생긴 물고기에 대한 저의 이 작은 관심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엽고 사랑스러운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뭔가 소통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겐 민물고기 사육이 단순한 취미 그 이상입니다.(계속)
본 원고는 계간지 샘 38호(2014. 4. 30)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이충범의 길에서’의 후속편인 ‘이충범의 물에서’가 새롭게 연재됩니다. 총 10차례에 걸쳐 연재 예정인 이 글에 이어 이충범의 지리산 여행기도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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