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팽목항 현장 탐방기] “우는 자와 함께 울라”

▲구세군 대한본영은 사건 발생 당일인 지난 4월16일(수)부터 팽목항 현지에서 생필품 제공, 무료 급식 등의 긴급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사진=지유석 기자
▲사고현장인 팽목항과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 중인 진도체육관은 전국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생환소식이 없어 힘들어 한다. ⓒ사진=지유석 기자

사람들이 지쳐간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은 초췌하기 이를 데 없다. 진도체육관에 대기한 가족들 가운데는 링거를 맞고 누운 이들도 눈에 띤다. 5월2일로 세월호 침몰 사고는 발생 17일째를 맞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종자의 생환소식은 없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현장에서 가족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도 지쳐가기는 마찬가지다. 진도체육관이나 팽목항 상황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봉사자들은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구호에 힘쓴다. 정작 이들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실종자 가족들과 동일하다. 실종자들의 생환소식이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 봉사자는 “현장상황이 열악해도 실종자가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봉사자들 모두 힘들어 한다”고 했다. 이런 탓인지 사고 현장 분위기는 침울하기 이를 데 없다. 
 
현재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다. 시신을 확인한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려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현장에 남은 이들은 대형 전광판을 통해 뉴스를 시청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팽목항 주변엔 속절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는 가족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띤다. 
 
치유가 필요한 이들, 그러나 다가가기도 쉽지 않아 
 
▲실종자 가족들은 지쳐가고 있다. 가족들이 대기 중인 진도체육관엔 응급 링거처방을 받는 가족들도 쉽게 눈에 띤다. ⓒ사진=지유석 기자
▲한 실종자 가족이 팽목항 부두에 가족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문구를 노란 리본에 적고 있다. 팽목항 주변엔 망연자실 바다만 응시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많아졌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런 분위기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힘을 잃지 않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다. 기독교계도 이 같은 움직임에서 예외는 아니다. 
 
구세군(사령관 박종덕)은 사건 발생 첫날인 지난 4월16일(수)부터 긴급 구호활동을 계속 펼치고 있다. 한편 진도 지역 5개 교단 73개 교회가 모인 진도군교회연합회(진교련)도 부활절을 전후한 시점부터 현장으로 나가 구호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왔다. 그러나 진교련의 목회자들은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상처 입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싶은데 그들과의 접촉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한 목회자는 “지금까지의 활동은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운을 뗐다. 이 목회자는 “슬픔을 당한 유족들을 위로해주고 싶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이 워낙 예민해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현장의 구호활동을 지휘하는 조원식 목사는 현장 분위기를 감안, 구호활동 방향에 대한 재검토를 시사했다. 조 목사는 “사건 발생 초기만 해도 교회가 봉사활동에 적극 나섰다”며 “지금은 봉사자들이 많아진 상황이고, 초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에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진교련 지도자들과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팽목항에 마련된 구세군 자원봉사 캠프에서는 매일 저녁 8시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예배가 봉헌된다. 지난 4월30일(수)은 서준백 사관이 예배를 집례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진도군교회협의회(진교련)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팽목항에 캠프를 차리고 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 등에게 생필품 및 음료수 등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진교련 소속 목회자들은 실종자 가족들과 접촉이 여의치 않아 아쉬워 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런 와중에도 교계 봉사자들은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만큼은 잃지 않고 있다. 구세군의 서준백 사관은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서 사관은 “실종자 가족들은 식사를 할 때도 억지로 한다는 표시가 역력하다”면서 “현재 가족들은 생업을 내팽개친 채 이곳에 와 생환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진교련과 구세군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매일 오후 8시 구세군 자원봉사 캠프에서 예배를 드린다. 시간은 8시로 정해져 있지만 가족들의 일정에 맞춰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지난 4월30일엔 천안함 유가족들이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이로 인해 현장 예배는 오후 10시로 미뤄졌다. 구세군과 진교련은 이렇게 현장 상황에 따라 예배 시간을 조정해 진행할 방침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지금 사람들은 무척 지쳐 있다. 한 영혼을 섬기는 신앙인으로서 지쳐가는 이들을 위해 힘이 돼주고 싶어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러나 자원봉사 활동 중인 한 목회자는 섣부른 신앙적 권면에 대해 경계를 당부했다. 이 목회자는 “누구든 세월호 사건을 통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입에 올릴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막상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입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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