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27)
▲아르가 강과 라라소아냐 마을 산티아고라라소아냐. |
▲라라소아냐 마을의 성 니콜라스 예배당 종탑. |
라라소아냐 다리 밑 냇가에서 두 시간을 혼자 기다린 세빈이를 만난 마음은 복잡한 감정의 뒤엉킴이었다. “세빈아, 일단 알베르게에 가 보자.” 아르가 강 다리를 건너자 낡은 교회-성 니콜라스 예배당(13C경)-가, 오래된 친구들이 서로 다정하고 반가운 대화를 나누듯이 주변의 건물들과 정겹게 어울리고 있다. 높지 않은 종탑 벽에는 영혼의 깊은 곳까지도 흔들어 버릴 듯한 땡그렁 소리를 품고 있을 육중한 쌍둥이 종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종소리를 울려 다오!
하늘을 가르고 마음을 꿰뚫어
흔들고 휘저을 깨달음의 쇳소리
한 번 아니고 두 번 아니고
내 마음 밝고 빛나는 영원의 소리와 춤추며
고단하고 지친 어둠의 그늘
그렁그렁한 종소리 퍼질수록
놀라운 은총 끊임없이 부어지는 마음의 여행
종소리를 울려 다오!
종탑을 등지고 돌아 라라소아냐 알베르게로 가보았다. 알베르게 리셉션에 들어가서 관리인에게 형편과 사정을 얼굴 표정으로 전달했다. 정말 뚱뚱한 중년 부인인 알베르게 관리인은 단호하게 침대가 없음을 천명한다. ‘아까 이 아이가 먼저 왔었고, 우리가 이제 도착했으니 제발 침대를 내 놓으라’고 처절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뚱뚱한 관리인의 냉정한 어투를 보아하니, 우리가 전혀 못 알아 듣는 속사포 스페인어로 ‘침대 없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내 마음도 주저 앉았다.
그 때 관리인이 잠시만 기다리라는 시늉을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짧은 영어로 그녀와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한 치의 흔들림없이 끊임없이 스페인어로 주절거린다. “숙소가 있는데, 그 곳 이름은 일 펜시온 펠레그리뇨이다. 그 곳에 가 보라”는 것이다. 무턱대고 숙소 이름만 가르쳐 줄 뿐이어서, “어디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다시 그녀의 유창한 스페인어가 쏟아져 나온다. “왔던 길로 뒤돌아 쭉 가서 도로 마지막에 이르면, 그 곳 왼편에 있는 건물이 일 펜시온 펠레그리뇨이다” 나는 스페인어로 하나, 둘, 셋도 잘 모르는데, 이 정도 알아들었으면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라라소아냐 공립 알베르게 |
▲상점 카사 엘리타 |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거운 짐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그녀가 가르쳐 준 ‘펜시온’을 찾아 나섰다. 멀다. 오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한없이 멀다. 라라소아냐 알베르게에서 하룻밤 지내기 위해 수비리를 지나 28킬로미터 절룩이며 걸어온 길이 허사였다. 처음 뜻했던 곳에서 지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실망이 한아름이다.
이윽고 다다른 일 펜시오 펠레그리뇨의 주인장이 나왔다. “건물은 지하층과 1층, 2층이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 있고, 주방이 있긴 하지만 사용할 수는 없다. 건물 뒤에 정말 넓고 환상적인 가르덴(정원)이 있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함께 머물 만한 공간은 지하층 밖에 없는데 괜찮냐?” 하면서, 자신의 숙소를 소개한다. 저녁식사도 없다. 아침식사도 안 된다. 물도 끓일 수 없다. 아무 것도 해 먹을 수 없다. 지치고 배고픈데 ‘가르덴’은 무엇에 쓸 것인가? 해는 떨어지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하룻밤 사용료 1인당 15유로. 아마도 까미노 여정 중에서 우리가 이용한 가장 비싼 숙소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라라소아냐 공립 알베르게 5유로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지하층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통로에 있는 샤워실에서 하루 동안 삶의 힘겨운 피로감을 따끈한 물로 씻어 낸다. 새 힘을 얻는다. 여섯 명이 잘 수 있도록 이층 침대 세 개가 있는 방이었지만, 이 방 손님은 우리 셋 뿐이다.
각자 침대를 차지하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 밖에 나이 지긋한 70대 초반쯤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찾으며 두리번 거린다. 그 할머니는 오른팔 깁스를 하고 있었다. “뭘 좀 도와 드릴까요?” 하였더니, “두꺼운 실을 가위로 잘라달라”고 한다. 이 할머니는 벨기에 분인데, 역시 순례길을 나선 중이었지만 이틀 전에 라라소아냐 (우리가 묵고자 뜻했던) 알베르게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오른팔 골절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 때 알베르게에서 자신이 다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면서 진료받는 과정을 도와 준 사람이 한국인 아가씨였는데, 너무나 감사하다고 한국인인 나한테까지 다시 인사를 한다. 이 곳에서 하루 안정을 취한 후, 내일 벨기에로 돌아갈 것이지만, 내년에 다시 까미노에 오겠다고 장담을 한다. 용감한 할머니다.
▲숙소 일 펜시온 펠레그리뇨 |
그런데 마침 이층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 세빈이가 바이올린을 메고 배낭 짊어지고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하니 ‘내가 벨기에 돌아가서도 너를 기억하겠다’면서 깜짝 놀란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자기를 기억하며 바이올린 한 곡을 연주해 달라는 것이다. 혹시 성함이 어찌되시는지 물었더니, ‘밀루’라고 한다. 세빈이는 흔쾌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한다. “아빠. 처음보는 사람을 매일같이 기억하겠다고 할 만큼 친근하게 대하는 것 보니, 외국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한가 봐요.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 연주해 달라고 하는 것도 참 대단해요.” 이 후에 세빈이는 밀루를 기억하며 이 약속을 지킨다.
이제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주일 대부분 상점들이 모두 닫혀 있어서 문을 연 곳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동네 어귀 ‘카사 엘리타’에 불이 켜져 있다. 간이 수퍼마켓이면서 손님이 고른 즉석음식들을 주인이 조리해 주고 식탁까지 서비스 해 주는 곳이었다. 페퍼로니 피자 한 판과 콜라를 주문하고 테이블에서 기다리다 보니, 여기저기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함께 걸으며 만나고 지나쳤던 순례자들이다. 서로에게 함박 웃음으로 연신 “하이!”를 외친다. 상점에서 일을 하는 아가씨가 아마도 어머니의 일을 돕는 듯 보이는데,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피자위에 놓인 동그랗고 빨간 페퍼로니들이 전자레인지에 데워져 한껏 먹음직스럽다. 한 입 베어 물으니 온갖 근심이 사라진다. 탁탁 쏘는 콜라의 차갑고 강렬한 자극이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어갈 때마다 고단함도 하나씩 지워진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주위는 이제 어두워졌다. 아내가 아침에는 몇 시에 문을 여는지 묻는다. 아침 6시 30분. 간단하게 요기하고 나서기엔 괜찮은 시간이다. 물과 빵을 조금 사는 동안 카운터 뒤쪽 벽에 걸린 사진 몇 장이 눈에 띈다. 산티아고 길을 다룬 영화 ‘더 웨이’의 삽화이다. 오! 이 상점이 영화 ‘더 웨이’ 촬영 장소 중 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무대에서 저물어 가는 하루를 함께 보낸다.(사진제공= 이대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