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심광섭의 미술산책] 자본과 구원

심광섭·감신대 교수(조직신학)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Christ's Entry into Brussels in 1889>, 1888 
▲Joel Pelletier, "Chrirst's Entry into Washington in 2008" 
▲이흥덕, <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 1998 

“만일 예수께서 돈을 저축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어디에서 쇼핑하시는지 알고 싶다.”(If Jesus saves, I want to know where he shops.) 이 글은 미국의 어느 화장실 벽에 쓰여 있는 낙서다. 물은 이 글은 동사 “구원하다(to save)”를 의도적으로 오독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동사는 명사 “구원(salvation)”과 관계되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낙서는 다음과 같은 더 깊은 현실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우리는 과연 휘몰아치는 자본주의 경제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하여 차분히 결백하게 말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 경제는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우리를 에워싸 있고 우리의 존재를 점점 더욱 강하게 규정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점점 더 불어나는 자본의 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다. 이것은 경제와 산업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과 그리고 심지어 교회까지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가 가장 긍지를 느꼈던 그리스도와 우리의 희망이었던 구원에서조차 돈과 경제적인 사안이 우리의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우리의 사유방식을 꼴 짓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교리와 장정> 171단 70조 6항에 보면 연회원의 자격 중 채무의 규정이 있다. “직무수행에 방해가 될 정도의 채무가 있거나 채무보증을 한 이”는 연회원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규정이 있다[과거에는 채무가 조금이라도 있는 목사는 성품통과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은행 채무 없는 목사 있을까 싶기도 하다]. 목사의 직무를 수행 못할 정도의 채무가 어느 정도인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그 액수를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지금 교회 건축 후 심각한 채무에 시달려 교회건물이 경매에 나와 있거나 다른 교회와 통합하려하거나 아니면 채무로 심각한 재정난에 처한 교회가 한둘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교회는 교회적으로 자본의 먹이감이 된 셈이다. 물론 그 책임은 담임자와 최고 의결기관인 기획위원회에 있을 것이다. 
 
교회와 신학은 이처럼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과 시장의 지배구조에 쉽게 접속되어 있어 은은하게 아니 대놓고 한통속이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같은 엄청나게 좋은 언어들이 온정적 보수주의의 경제원리의 용어로 재수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정의는 “테러에 대한 전쟁”과 “자유시장 경제의 확산”으로 둔갑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시장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방해하는 세력, 즉 매년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아사(餓死)하고 수억명의 어린이는 기아 상태에 있다는 도전들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며 이것과 무관한 시스템 구축을 함으로써 그들만이 선택적으로 받는 구원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사회적 성공과 동일시되고 슈퍼마켓에 돈이 넘쳐나는 일이다. 오늘날 자본과 밀착된 복음은 그 어떤 이단보다 위험한 이단이지만 이 이단을 막을 방도는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대한 신학적 반성이 이러한 심각한 왜곡을 바로 보고 대안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실천과 변혁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지, 거기에 오늘의 그리스도 구원사역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다.
 
아래의 첫 그림은 벨기에의 화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의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기 몇 년 전부터 벨기에에서는 파업과 폭동이 줄을 잇고, 심지어 이름뿐인 국왕까지 나서서 노동자 계급의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연설했다. 
 
앙소르는 가면을 쓴 군중을 그린 작품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에서 꽉 들어찬 군중에 둘러싸여 모습을 찾기도 어려운 지도자를 그리스도에 비유하여 묘사한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성화의 주제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 앙소르는 행렬이 벌어지는 장소를 예루살렘이 아니라 브뤼셀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동시대 정치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야자 나뭇가지 대신 정치적 슬로건이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브뤼셀의 왕, 그리스도 만세’라고 적힌 슬로건도 언뜻 눈에 띤다. 브뤼셀 시민들은 군악대를 따라 행진하고 있고, 흰색 띠를 어깨에 두른 권력자가 녹색 연단 위에 서 있고, 붉은 현수막에는 ‘사회주의 혁명 만세’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앙소르가 그림의 암시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매우 작게 묘사된 그림 속 그리스도는 벨기에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군중 속에 에워싸여 있는 예수, 그래서 잘 눈에 띄지 않은 예수, 예수님은 군중 속에 파묻혀 있다. 주정뱅이나 부랑자들로 보이는 군중 속의 인물로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은 군중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지만 항상 바로 내 곁에 있는 분이지 않겠는가. 섬김의 지도자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섬기는 것도 모르게 섬기는 자라야 할 것이다. 어지러운 사회는 세상을 바로잡아 이끌어 갈 진정한 메시아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건만, 흥분에 들뜬 산만한 군중의 관심은 그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면서 또 다른 슈퍼맨이 만들어낸 권력과 자본의 시녀가 되어갈 뿐이다. 
 
두 번째 그림은 Joel Pelletier라는 작가의 "Chrirst's Entry into Washington in 2008"이다. 아마도 한국 주류 기독교의 예수의 예루살렘입성이 이와 같은 이미지가 아닐까? 황금 배광을 한 예수, 엄청난 군사를 이끄는 지도자. 오른쪽 귀퉁이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Long live Jesus the greatest political thinker." 
 
세 번째 그림은 이흥덕의 붓다와 예수가 서울에 입성하는 그림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브뤼셀로 그리고 워싱턴으로 마침내 서울에 입성하신다. 이번에는 붓다와 함께. 현수막에는 Wellcome to Seou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붓다와 예수의 동시 서울 입성, 기발한 상상 아닌가! 그러나 사실 이미 오래 전에 입성해 계시다. 붓다와 예수의 탄생일이 기념일이고 공휴일인 나라, 세계에서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빌고, 수많은 군중이 앞뒤로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전경의 군중들은 오른쪽 단 위에 세워진 누드의 여신을 바라보고 있다. 출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송아지를 세워놓고 광란의 밤을 보내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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