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규태 칼럼]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손규태·성공회대 명예교수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베리타스 DB
서론적 고찰
 
필자는 약 50여 년 동안 개신교신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신구약성서를 연구하여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즉 신약성서에 나타난 핵심적 내용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의도했고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선포한 핵심 내용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마가 1:15). 
 
따라서 그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전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는 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세상”(die noch nicht erlöste Welt)에 건설하는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신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죄악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고 희망이다.
 
 따라서 필자는 지상에 이 하나님 나라실현은 특정 종교집단, 즉 그리스도교 교회만이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목표며 과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공동으로 지향해야 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하나님 나라 이상은 비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집단인 교회나 그리스도인들만의 독점적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그리스도교라고 하는 특정한 종교나 교회라는 틀에서만 논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인류와 더불어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일(opus Dei)이고 하나님의 사업(missio Dei)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보편적 세계통치의 내용이고 목표며 동시에 전체 인류들이 보편적으로 꿈꾸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지상의 하나님의 나라 말하자면 모든 인류가 꿈꾸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이상은 필자의 결론으로서는 서구의 계몽주의 사상 이후 등장한 정치철학적 개념인 “공공성”(公共性)이라는 개념에서 서로 만나고 수렴된다. 즉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공공성이라는 세속적 개념을 통해서 가장 바르게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으며, 동시에 공공성이라는 계몽주의적 개념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에서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동안 이 하나님이 이 땅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나라의 개념을 우리가 오늘날 말하고 있는 중요한 정치철학의 개념인 공공성 개념과 결합시켜서 정치 신학적으로 고찰해 왔다. 왜냐하면 이 공공성이라는 철학적 개념과 하나님의 세계통치를 말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모두 공통적으로 (세계)통치라고 하는 정치적 목표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 특정 국가나 종교가 독점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공적 성격을 띤 개념이고 따라서 이 세계에서 인간들 사이의 제반 관계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관계에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공공성
 
그러면 우선 하나님 나라 개념부터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시작하자:
 
1. 하나님은 세계, 하늘과 땅의 장조자요(창 1:1), 따라서 세계는 그에게 속해 있고 그가 지배한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거기에 살고 있는 그 모든 것도 주의 것이다.”(시 24:1) 그리고 인간은 그의 동역자(Cocreator)며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한다. 따라서 이 땅(세상)은 하나님의 것이어서 인간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거나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는 공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 후 하나님의 땅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처리함으로써 하나님이 통치하는 공적 세계를 사유화하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적 영역을 사유하고  하나님의 공적 통치를 인간의 사적 통치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성서는 죄라고 했다.
 
2. 하나님은 만물의 해방자이시다. 특별히 출애굽기는 이러한 인간의 타락과 죄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타락 이후 인류사는 인간억압의 지배, 인간의 노예화의 역사로 이어진다. 인간의 역사는 내적으로는 전제군주의 통치 외적으로는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인간의 권력욕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의 과정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인간해방의 역사로 이어진다.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제국들의 신들 예를 들면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의 신들처럼 제왕과 군주의 신으로서 화려한 신전에 은거하지 않고 높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엑 율법을 주고 광야에서 그와 만나며 홍해에서 도망치는 희브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억눌리는 민중의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은 백성들의 하나님이지 특정 권력자의 족점물이 아니다. 그는 예언자들을 보내서 가난한 자들을 억압당하고 착취하는 이스라엘의 제왕들과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신음하는 민중을 대변한다. 이 하나님은 민중들의 정의와 그들의 사회적 평화를 위해서 싸운다. 오늘날 강자들과 부자들이 자의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용인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시장경제체제에서 다수의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투쟁하도록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고 그 일에 동참하도록 요청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탐욕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억압과 착취를 통하여 그들을 노예화하고 여기에 대항하는 하나님 나라의 지배는 고통당하는 인간들의 정치적 해방과 함께 사회적 평화를 지향한다. 
 
4.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막 1:15)고 선언한  그의 첫 설교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라.”는 그의 기도문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고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동역자로서 부름 받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원리
 
예수는 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20장 제자들의 관계윤리의 항목과 포도원농부의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해주고 있다.
 
1) 하나님 나라의 정치(통치)원리:  기존의 지배질서 즉 힘 있는 자들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히려 약한 자들을 섬겨야 한다. 즉 그것은 지배방식의 전도(顚倒)이다.  말하자면 섬기는 자가 높은 자요 봉사하는 자가 곧 큰 자가 된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 예수의 도래를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야에 주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다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낮은 계곡은 메우고, 높은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40:3-4). 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서 낮은 자는 높아지고 높은 자는 낮아짐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세계가 이루어진다.
 
2)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 율법(성과)원리가 제거되고 은총(복음)의 원리가 지배한다. 포도밭에서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여 8시간 일한 사람이나 저녁 때 나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모두 동일한 노임(한 데나리온)을 받는다.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원리에서는 자본주의의 성과원리(가톨릭교회의 공로원리)가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의 원리(종교개혁의 은총원리)가 지배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통한 업적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를 통한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은 공로(업적)가가 적거나 약해도 모두가 같이 평등한 삶을 누린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부정적) 정의
 
따라서 종합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전통적 종말론적 신학이 말하듯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아니다.
 
1) 구약성서와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피안적인 것이 아니고 차안적이다.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으로 세상을 초월해 있는 어떤 알 수 없는 공간에 있는 하늘나라가 아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역사가 마감되고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게 될 전혀 새로운 세상이 아니다.  그 나라는 초시간적이고 초역사적실체가 아니다.
 
3)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고 즐기기만 하는 무릉도원이나 독일동화에 나오는 요지경의 세상(Schlalaffenland)과 같은 어떤 것이 아니다. 
 
4)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도움이나 협력 없이 하나님이 홀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의 뜻을 이해하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과 협동자(Syncreator)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차적 협력자들이다.
 
5)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교와 같은 특정 종교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거나 독점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상에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냈다.(요한 3:16).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종교들과 함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꿈이기 하며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 타종교인들, 인문주의자들, 유토피아주의자들은 모두 이 나라를 기대하며 이 나랄 위해서  같이 일해야 한다.
 
5) 하나님 나라는 지금 완성된 것이 아니고 이미 시작되었으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룬 것도 아니고 이루려고 달려가야 할”(빌 3:12) 인류의 목표다.

정치철학에서의 공공성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공통의 이상이고 꿈이라고 할 때 그것은 경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어떤 사적 희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공으로 가져야 할 꿈이다. 따라서 그것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공성을 띤 것이라고 할 때  오늘날 정치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공성 개념과 관련해서 논의를 좀더 발전시켜 보자.  오늘날의 논의되고 잇는 공공성 개념을 정치학사전과 칸트의 이론을 빌려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전적 의미에서 공공성이란 개념은 “뭔가 공개된 것, 사실적으로 알려진 것, 혹은 어떤 경우에도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것, 널리 알려진 것의 속성 - 혹은 드러난 것, 사실적으로 알려진 것 혹은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 안에 있는 영역을 말한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접근가능하며 잘 알려진 삶의 영역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공성 내지는 공적 영역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영역에서 그 의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다른 사전에 보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공공적인 것은 1. 누구나 듣거나 볼 수 있는 것. 2. 개인이 아니라 많은 사람 혹은 전체 대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3. 국가나 공공기관들과 관련된 사안들 등이다. 
 
그리고 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영구 평화이론”에서 인간들의 공공적 권리의 초월적 원리를 발전시키면서 공공성을 다음과 같이 소극적으로 기술한다. “다른 사람들의 공적 권리들과 관련된 행위들에서 공공성과 합치되지 않는 것들의 원리는 부당하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공공성에 합치하지 않는 어떤 사적 권리, 즉 특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공공성을 필요로 하는 모든 원리들은(그것들의 목적에 타당하기 위해서) 국가의 법과 정치와 합치된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의 통치근간이 되는 법과 법집행은 공공성과 합치되는데서 그 정당성을 가는다는 것이다. 의회에서의 법제정이나 행정부의 법집행 행위가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고 어떤 개인의 사적 권익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것은 공공성을 상실한 것이며 따라서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공공성을 결여한 재판, 예를 들면 비밀재판이나 공익에 벗어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재판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의 공적 권리가 공공성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은 곧 그 권리가 대중의 보편적 목적들, 즉 공적 관심사 말하자면 공공의 복리를 지향하는 것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전정한 정치행위란 공적 권리의 이념과 일치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부연하자면 국가의 공적 권리의 행사인 정치는 공적 견해(öffentliche Meinung) 즉 국민들의 여론에 상응해야 하고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공적 봉사(öffentlicher Dienst)를 할 때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에게서는 공공성은 “정치적 지배의 합리화의 원리다.” 따라서 정치적 지배의 합리성이란 곧 특정한 정치집단이나 정당이 대중들의 공적 권리, 공공의 관심사(여론)와 공공의 복리(봉사)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가시민의 해방과 더불어 등장한 부르주아적 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는 이러한 공공성을 일반적 법이라는 형식과 결합시켜야 했다. 말하자면 국가의 법제정과 법집행은 공공성, 즉 시민들의 공동의 관심사들과 이익들을 대변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특정한 지역민들이나 권력층이나 특정한 재벌들을 위해서 법이 제정되고 집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법이며 따라서 반미주적이며 독재가 된다.

그리스도인들과 세속적 유토피아주의자들의 협력  
 
따라서 이러한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과 계몽철학자들이나 사회철학자들이 추구하는 공공성은 모두 미래에 완성될 목표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 지상에서 인간들의 사적 탐욕과 지배욕으로부터 시작된 악을 물리치고 공공성 즉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오신 예수의 탄생 즉 강림절 사건(Adventus)과 탐욕적인 권력자들의 무제약적 폭력으로 빚어진 제반 모순들을 극복하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휴머니스트들과 유토피아주의자들의 노력과 갈망으로 추동되던 미래설계(Futurum)가 공공성의 실현이라는 공통의 출발점과 목표에서 서로 만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인류가 다 같이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초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은 이러한 이상을 공유한 세계 여러 종교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미래 세대에서 종교 간의 대화의 출발점과 목표는 이러한 공공성의 나라,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에서 아니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가장 처절한 투쟁은 사리와 사욕만을 취하려는 반공공성 세력과 모든 사람들이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세력 사이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소위 자기안보세력과  모두가 함께 정의롭고 평화스럽게 살고자 하는 공동체적 평화세력 간의 전쟁이다. 이것은 이미 로마시대  평화의 군주로 자처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의 평화(Pax Romana)와 동시대에 태어나 로마의 식민지 세력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은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 사이의 투쟁인데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건설하러 온 그리스도의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이 글은 2014년 5월 29일 성공회대학교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표문 전문을 싣는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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