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김경재 목사 1998년 3월 22일 설교

경동교회/ 당시 경동교회 협동목사

대리직과 그리스도의 법 
 

이사야 53장 4-5절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갈라디아서 6장 2-5절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행실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합니다.

마가복음 15장 21-22절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 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 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골고다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산천에 새 봄이 왔습니다. 그런데 봄의 생기를 사회 전반에서 감지하기 어렵고, 경제난 고통을 더욱 실감해가고 있습니다. 정작 명예퇴직, 조기퇴직,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경영하던 사업을 부도내고 파산당하여 겪는 심리적, 정신적, 영적 충격과 고통은 정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순절 기간을 지키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대리수난과 대속적 죽음이라는 십자가 사건을 향하여 사순절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 아침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가장 신비롭고 이해하기 힘들며, 그러나 그것이 곧 그리스도교 구원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메시지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위해 대리 고난과 죽음을 맛보심으로서 인간을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셨다"는 이 대속신앙 메시지가 오늘 우리가 겪는 현실적 삶의 문제와 어떤 관계성이 있는가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이 올 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이사야 53장 고난의 노래를 다 시 읽고 주목합니다. 이사야라는 선지자 입을 통해 약 2500년전 예언 선포한 오 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고난의 대리직과 삶의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요즘처 럼 이 성경의 말씀이 바로 생명의 실상과 적나라한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는 것을 느끼게 되는 적이 드문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만약 하나님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사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새순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공명능력을 지녔다면, 저 옛날 고난의 종의 노 래는 20세기가 저무는 한국의 오늘을 위해 주어진 노래로서 들릴 것입니다.

근대인간들은 근대적 세계관의 기초를 이루었던 생각 곧 최소단위 집합체로서 만물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더 이상 작게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기초 단위 원자로 구성되어 있듯이, 인간 사회도 개인 인격체라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개개 인격체의 집합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개인의 인격체는 환원불가, 대치불가, 침해불가한 절대존재요 절대단위이고, 개인의 자기정체성은 국가 권력으로도 파괴하거나 침해할 수 없으며, 국가의 의무는 이러한 엄숙한 개 인인격체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주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근 대 주체적 인격체로서 신성한 개인주의적 인간관은 인권의 신장과 자유사상 함 양에 큰 공헌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단자적이고 개인주의 적이기 때문에 생명이란 연대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것이고, 우주적인 것이고, 전 체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점차로 망각시켜 갔습니다. 그 결과 생명의 대리직 사상 은 수수께끼가 되어가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결행하신 대속적 속량 신앙은 점점 현대인들에게 난해한 교리가 되던지 차가운 법률적 관계로 파악하 는 것이 중요 이해 틀이 되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는 현대 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예수라는 분이 훌륭하고 위대한 성자이고 성인이라 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2,000년 전에 그가 십자가에서 만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말이 도대체 어떻게 성립된다는 말이냐. 각각 자기 죄를 책 임져야 하는 것이지 어떻게 남의 죄값을 대신 치른단 말이냐. 그리스도인들은 아 담이 범죄하여 그 원죄로 인해 인류가 모두 죄권세 아래 넘어갔다고 하는데, 그 런 주체성 없는 교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고 현대인들은 항변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 생명, 하나님 이해를 자기완결적, 자기 폐쇄적, 자기 안으로서만 닫혀져 있 는 실체라고 생각한다면, 현대인의 그런 항변은 정당한 것입니다. 심지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과 민족의 고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 이냐. 도리어 고금리와 불로소득의 재산을 가지고 맘껏 즐기고, 누가복음의 저 부자처럼 "내 영혼아 안심하고 즐기라. 금괴를 더 깊은 곳에 안전하게 저장하고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국내 은행이 불안하니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여 두고 맘껏 열락하자"라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엔 적지 않게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삶과 생명현실을 그렇게 단자적으로, 자기 폐쇄적으로 안으로 대문이 걸려있는 집처럼 그렇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생명은 주체로서 책임적 단위생명체이면서도 동시에 언제나 전체, 공동체,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관련된 우주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의인 다섯만 있으면 전체 소돔 고모라 성읍사람이 살 수 있고, 야곱 한 사람이 선택받고 축복 받음으로 전체 이스라엘의 생명이 숨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적 생명관은 생명은 개인적이면서 전체적이라는 것입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생명은 피조물적이지만, 창조주와 불가분리적이고, 인간 성은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신성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것입니 다. 삼라만물은 유기체처럼 서로 관계되어 있는 그물망 속에서 창조되고 지탱되 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전체 피조물의 생명 속에 빛처럼, 지구의 중력처럼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의 실존 생명은 전체 생명과 사회와 우주자연 속에 빚지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은 사실 나의 삶이면서 그 누군가를 대신하는 대리직 입 니다. 나는 너를 대신하고, 너는 나를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치워야 할 생활 쓰레기를 환경미화원이 이른아침 치워주고, 내가 치료시켜야 할 가족 환자 의 환부를 의사나 간호사가 치료하고 있습니다. 내가 운반해다 써야 할 농산물을 트럭화물 운전자가 운반해주고 있으며, 내가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는 일차농수산 목축업에 종사해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독립운동 기간에, 한국동란중에, 민주화운동기간중에 적어도 나 자신이거나 내 가족중 한 사람쯤 고난당하고 희생당해야 할 내 몫을 그 누군가가 대신 대리로 짊어져 주 었기에 나는 여기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직당하고, 부도 내게 되어 기업이 파산되었거나,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직장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곁에 많이 있습니다. 가족이 붕괴되는 아픔을 겪으며, 어린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거나 떼어 길러야 하는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그 고통은 당신의 허물과 악함과 죄 때문만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 승복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그 사람들이 대신 받 고, 우리가 상처받고 찔려야 할 그 아픔을 그들이 대신 받고 있다고 예언자 이사 야처럼 큰 눈으로 그렇게 말해도 조금도 잘못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 가지 종류의 고난과 인생의 짐이 있음을 말합니다. 첫째는, 깊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짊어지는 고난의 짐입니다. 오늘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고난의 종"이 받는 고통이 바로 그런 성격의 것입니 다. 둘째는, 동시대적으로 현존하기 때문에 받게되는 고난과 비극이 있습니다. 오 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 형틀지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그날 예 루살렘으로 모처럼 상경했다가 예수를 형장으로 끌고가는 군대행렬과 마주치게 되었고, 신체적으로 지친 예수가 자꾸 넘어지니까, 로마병사는 지나가는 시골사 람 시몬을 우격다짐으로 잡아다가 형장까지 십자가를 운반하라고 명령한 것입니 다. 그처럼 오늘 우리사회 대부분 농촌, 어촌, 노동자의 고난은 구레네 시몬의 그 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대리 십자가 지기가 주님의 고난을 덜어드린 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기 위하여 각각 짊어져야 할 자기 짐을 질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남의 짐을 지는 경우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본문 말씀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역사적 시련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살아 가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직 좋은 직업이 있고, 별 쪼들림이 없 고, 자녀들이 다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고, 사회적 신분이 자랑할 만 하더라도, 가 만히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 속으로만 자랑하고 감사를 느낄 일이로되, 남 에게 자랑할 것은 없는 것이라는 사도 바울이 말씀이 진실임을 깨닫습니다.

청빈의 탁발승 성 프랜시스는 그가 회심한 후에, 식사 때마다 혹시나 내가 가 난한 형제의 식량을 빼앗아 먹는 것이 아닌가 성찰하였다고 합니다. 산상수훈을 읽고 깊이 회심을 경험한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인생 말년이지만, 그가 소유한 토지와 별장들과 부들이 자기 것이 아니고, 러시아의 가난한 농부들의 것 임을 보게되고, 그것을 가난한 형제들에게 양도하고 청빈의 심령으로 집문을 나 섰던 것이고, 야스야나폴라냐의 역전에서 깨끗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늘 생각하면서 감사와 찬송의 삶 을 살아갈 뿐 아니라, 더 한발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이웃형제의 짐을 덜어서 함 께 짊어지는 삶을 살아가려는 삶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삶은 대리 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피조물과 인간의 비극에 너무나 깊이 동병 상린 하셔서 역사와 시간 속에 침투해 관여하시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 음 속에서 피조물의 짐을 대신 져주는 하나님의 대리행위가 십자가 사건 안에서 일어났다고 우리는 심령의 눈으로 보게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하는 형제자매들은 좌절하지 말고 다시 재기하는 용기와 인내와 어 떤 형편에서도 적응하는 믿음의 참 용기를 발휘할 때입니다. 비교적 큰 시련없이 이 어려운 때를 지나는 형제자매들은, 삶이란 대리직이라는 것을 깊이 성찰하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형제자매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져 줌으로서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도를 이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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