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 집행위원장 김영민 목사가 16일 성명에서 감리교 내홍의 핵심을 이루는 감독선거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해 주목을 모으고 있다.
김 목사는 이 성명에서 감독선거가 감리교에 미치는 악영향을 폭 넓게 분석했으며, 특히 돈 선거로 각종 논란을 빚고 있는 감독제가 "(개인이)명예와 부귀와 영화를 맛보는 자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무엇보다 감독선거가 미치는 부작용으로 △목회자들의 리더십을 상실하게 한다 △감독선거를 치른 교회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빠진다 △목회자들 간에 위화감을 주고 평신도지도자들을 타락 시킨다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한다 △평신도 선교단체들을 타락시켰다 △맛을 잃은 소금이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등을 들었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
감독이 죽어야 감리교가 산다Ⅱ
감독선거에서 돈은 어떻게 전달되나
과연 돈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질까
선거에 막대한 헌금이 사용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돈이 건네지는 과정은 더 심각한 지경이다. 과연 돈은 어떻게 전달될까?
일부 연회에서는, 차기 감독 후보자가 현직 또는 전임 감독에게 선거수업료(?)로 1억원을 지불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잠룡 중에 한 사람이 돈 가방을 들고 찾아가서 살포대상(선거권자 명단), 돈을 쓴 내역과 선거자금 사용법을 전수받는 수업을 자행한다. 돈선거 필승비법 가운데 하나는 새벽기도회가 끝나고 선거권자들을 은밀하게 방문해서 봉투 하나를 건네고 사라지는 수법이다. 또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로 선거권자를 초청하여 강사사례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강사사례비는 천차만별이고 지급되는 액수 또한 다르다. 어떤 선거권자는 자신이 받은 사례비를 상대 후보에게까지 알려주고 경쟁을 부추겨서 몸값(?)을 키우는 인사도 있다. 심지어 후보자의 행사사진을 일방적으로 찍고서는 강매를 통해 금품을 요구하는 인사도 있다.
어떤 감독은 몇 차례의 고배를 마신 탓에 교회의 예산에 거의 절반 가까이를 감독선거비용으로 사용해서 소송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대부분 후보자들은 큰 일을 해야 한다고 교인들을 설득해서 교회의 헌금을 사용하고 있다. 판공비 내지 접대비 명목으로 사용한다. 교리와 장정에는 교회 헌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사비, 접대비, 판공비 등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감독을 지낸 어떤 이는 감독 선거 등록비를 교회 통장에서 계좌이체를 하였다가 감사에 의해 발각되어 혼쭐이 난적도 있다.
감독후보자들이 막대한 선거비용을 마련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교회건축이다. 공교롭게도 감독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교회건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나 교육관 신축 등 건축을 하려는 이유가 있다. 리베이트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업자들은 공사비와 자재비, 부가세를 활용해서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교회리모델링, 교회부동산 매매를 통해서도 선거비용을 마련한다. 최근 한 후보가 그 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 같은 천태만상이 모든 감독후보자들에 해당한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리베이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건실한 목회자들도 많다. 다만 감독선거가 이처럼 타락에 젖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감독선거가 교회에 미치는 악영향들
<첫째, 목회자들의 리더십을 상실하게 한다>
감독후보자들은 대부분 감리교회의 굴지의 교회들을 목회하는 분들이다. 평소에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던 분들이다. 하지만 선거를 치르고 감독 및 감독회장을 지내고 난 다음에 그분들은 심각하게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보아왔다.
흔히들 감독이나 감독회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일명 정치 장로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뒤에서 감독이라는 호칭은 물론 이름도 부르지 않고 ‘걔’ 혹은 ‘그 친구’ 혹은 ‘그이’라고 부른다. 선거에서 장로들에게 표를 구걸해야 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돈을 건네고 비굴하게 행동해야 하는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많은 선배님들이 이런 타락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존경할만한 분들도 있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 앞에 무릎 꿇는다. 감독선거로 인해 평생을 쌓은 목회자로서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빼앗기고 결국 모든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함께 상실되고 마는 지경에 이른다.
<둘째, 감독선거를 치른 교회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빠진다>
감독선거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대느라고 교회는 휘청거린다. 선거에 참여한 목사와 장로들을 고소하고 그로인하여 결국 교회가 분열되는 큰 아픔을 겪기도 한다. 결국 이런 폐해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양식 있는 평신도들이 감독선거의 병폐를 알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냉가슴을 앓다가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막대한 헌금을 지불하여 빚에 시달리는 교회들도 한 둘이 아니다. 선거에 자금을 대기 위해 무리하게 건축을 하고 감독 임기가 끝나고 은퇴하면 그 빚은 고스란히 그 교회 성도들의 무거운 짐이 되고 만다.
감독선거에 출마하는 자들의 교회는 심각한 목회적 누수현상에 빠진다. 감독선거는 선거권자들을 일일이 만나서 표를 요청해야 하는 구조다. 정상적인 목회를 하면서 감독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거를 위해 목회를 스톱해야 하는 실정이다. 양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 목회인데 그것보다 선거에 우선순위를 두고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실정이니 교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주위에 감독을 지낸 이들의 교회를 살펴보라. 얼마나 큰 휴유증을 앓고 있는가! 교회는 빚에 허덕이고 있는데 명예를 따라가는 담임목회자를 바라보고 있는 교인들은 어떻게 하나?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교회들이 엄청난 빚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감독 출마하는 담임목사 때문에 그 고통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셋째, 목회자들 간에 위화감을 주고 평신도지도자들을 타락 시킨다>
대체로 감독선거에 출마하는 피선거권자들의 교회는 그 규모가 커야한다. 왜냐하면 막대한 선거자금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실탄이 없으면 출마하지 마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회자된다. 숫자가 많은 교회와 숫자가 적은 교회 간에 위화감이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또한 감독이 되면 그 특권과 명예와 금권을 쥐게 된다.
개체교회의 장로들은 양무리에 본이 되어야 할 사명을 떠나 선거판에 뛰어 들게 하고 있다. 어느 시골에서 평범하게 농사짓는 장로를 브로커 장로가 농사보다 더 수입이 많은 것이 있다고 하여 선거판에 뛰어들게 하였다고 한다. 감독선거는 교회의 건강한 평신도리더십을 해치고 있다.
<넷째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 한다>
감독선거에 쓰여 지는 비용은 마땅히 선교에 쓰여 져야 하는 헌금이다. 선교에 쓰여야 할 선교비가 금권선거에 선거비로 둔갑하는 비통한 현실이다. 어느 분이 감독에 출마할 때 가장 먼저 선교사에게 지원되는 후원금을 끊고 소환하는 것을 목격한 바가 있다.
또한 그 비용이 국내 선교 비용에 쓰여 진다면 많은 비전교회들이 자립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많은 헌금들이 선거에 허비되기 때문에 지금 비전교회들은 큰 아픔들을 겪고 있다. 더 이상 목회를 그만두려는 목회자들도 생기고 있다. 자녀교육비가 없어서 절망하고 경제적으로는 파산직전에 놓여 있다. 이미 그들의 가슴이 멍이 들어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다.
학연은 뿌리 깊은 갈등으로 치닫게 한다. 각 지방에서 각 연회에서 3학교 동문회는 직간접으로 선거에 관여하게 되고 학교별 동문회는 파벌로 나뉘어져 반목과 불신 갈등과 분쟁을 일삼게 하는 장이 바로 감독선거이다. 서로 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선교에 힘써야 할 교단의 목회자들이 이런 선거 때문에 분열하고 반목하고 파벌을 형성하기 때문에 막상 일을 할 때에 분열함으로써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게 된다. 이것은 감리교가 발전하고 선교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평신도 선교단체들을 타락시켰다>
평신도 단체들도 금권선거에서 예외가 아니다. 평신도 단체의 수련회나 각종 대회는 돈을 끌어들이는 행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감독선거에 출마하려는 잠룡들에게 자의반 타의반 각종 광고비와 헌금을 공공연하게 요구한다. 평신도들에게 잘못보이면 국물도 없다는 협박성 발언이 과언이 아니다. 엄청난 광고비와 헌금이 모아지는데 지금까지 얼마가 수입인지 얼마가 지출인지 그리고 어떤 내역으로 사용하였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몇몇 집행부의 임원들에게 감독선거제도는 좋은 먹잇감이 된지 오래다.
<여섯째, 맛을 잃은 소금이라는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기독교는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만 이미 우리 스스로가 타락하였기에 이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외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회보다 더 타락한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소위 지난 6년간의 감리교사태로 인해 선교적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얻게 되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없다. 이미지 선교에서 실패하고 많은 가나안 성도들을 양산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를 등지고 떠난 기독인들이 20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력이 상실되면서 선교는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현재의 감독선거제도는 선교의 역기능이 되고 있다.
감독제는 명예와 부귀와 영화를 맛보는 자리다.
왜, 막대한 선거자금을 동원하고 수치를 감수하고도 감독회장과 감독선거에 나가는 것일까?
감독회장은 한 달에 회장 월급과 판공비 여비 그리고 유지재단에서 월 800만원씩 그리고 태화복지관에서 월 500만원씩 받아 그 합이 약 2500만원에 이른다.
연회예산에서 상당한 금액을 감독이 사용한다. 매년 막대한 연회 부담금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감독은 돈이 생기는 자리다. 연회 감독 같은 경우에도 판공비 여비 등 따지면 일 년에 족히 1억 이상이 된다.
총실위와 유지재단이사회 등 총회의 주요 기관과 이사회는 감독들이 다 차지하는 구조다. 감독은 권력을 누리는 수단이 되기에 감독선거가 치열하게 금권타락선거로 치닫는 원인이 된다.
일단 감독이 되어야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회의 주요직책을 감독이 임명할 수 있고 배제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총회의 각종 위원장이나 위원 자리는 단순한 감투가 아니다. 선교위원회나 교육 위원회는 총무를 선출하는데도 금품이 살포된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현실이다.
감독이 되면 각종 행사에 거마비도 일반 목사에 비해 많이 받는다. 감독이라는 직위 때문이다. 연회 시에 각 지방 감리사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감리사들은 어떤 사례도 받지 못하지만 감독은 회의를 주관하였다고 수 백 만원의 사례를 받는다.
그뿐 아니다. 감독은 한번 감독이면 영원한 감독이다.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는 분명히 감독을 지낸 이를 목사로 호칭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연회 순서지에도 ‘전임 감독’으로 표기되고 있다. 감독을 지낸 분들은 은퇴를 해도 감독으로 호칭되고 설교 사례비도 일반 목회자들과 차이가 난다고 한다.
감리교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 모두의 감리교회가 아닌가? 오늘날 감리교회는 감독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각종 특혜와 모든 권세와 명예를 독식하는 차별화된 집단이 되었다. 감독이 되지 못한 모든 목회자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열등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담금을 출연하여 그들의 특혜를 위해 모두 희생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렇게 병폐가 심각한 감독제도를 유지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악의 뿌리인 감독선거를 지속해야 할 이유는 더 이상 없다. 미치광이가 차를 몰고 있다면 치어 죽는 자들의 장례만 치르면 해결될 것인가? 그 미치광이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한 본훼퍼의 고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학교 시절 어떤 은사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장로교는 분열해서 망하고 감리교는 감독제도 때문에 망한다.”
감독이 죽어야만 감리교회가 살 수 있다면 당연히 감독제도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금권타락선거를 시행하여 왔다. 이제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해서 교회를 등지고 있는가!
인터넷 시대에 투명하지 않으면 어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위기 앞에서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할 때다!
언제까지 소모적인 감투싸움에 물질과 에너지를 허비할 것인가!
이를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감독제도를 폐지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2014년 6월16일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
집행위원장 김영민 목사